1.
며칠 전이었지요.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인 보도연맹이 남쪽의 군.경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 3년간의 조사 끝에 확인된 민간인 학살자가 5천여 명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이지요. 그동안 소문으로만 혹은 학술적인 논의 속에서만 존재하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이제야 하나, 둘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반세기가 넘는 지난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혼곡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지만. 당시 학살을 당한 이들이나 학살에서 용케 살아남은 이들이나 또 학살자의 가족으로 제사마저 숨어 지내야만 했던 유가족들에게는 참이지 다행이다, 싶습니다.  
 
2.
그리고 또, 얼마 전이었지요. 민족문제연구소에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2001년에 120여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족됐으니 실로 8년여라는 인고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성과가 오롯이 나온 것입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되레 친일파 세력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권력자자들에 의해 와해된 이후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왜곡과 망각의 늪에 빠져있던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체험을 사회적 반성과 청산의 화두’로 던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 친일인명사전(전3권)이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한 것에 불과하니. 애초 계획했던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 도록 등 총 20 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가 하루속히, 빠짐없이 완간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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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 조선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가.'
-「아름다운 집」, 손석춘. p.13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를 강탈한 후 식민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해가던 1938년의 어느 봄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 질문으로 40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일기는 시작됩니다. 팔순에 가까운 세월을 사회주의 건설에 몸을 던진 한 사회주의자, 이진선이 걸어온 발자취인 것이지요. 허나 이 일기는 단순히 이진선이라는 한 개인의 삶을 따라 간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노동자, 민중을 주체로 세워내며 조국해방투쟁에 몸을 던진. 그리하여 남과 북, 어느 곳에서도 잊힌 혁명가들의 삶을 역사에 드러낸 것이지요. 그리고 그 혁명가의 삶이 월북 이후 아버지의 투옥과 어머니의 죽음, 전쟁 통 남쪽 군인에 의해 끝내 처형당한 아버지,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아내 여린과 아들 서돌이에 이르게 되면 마음이 미어터질 지경입니다. 삼룡형, 박헌영, 이현상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지요.
 
4. 
<반민특위>. <친일인명사전>. <이진선>.
 
그래요. 오늘 우리는 과거의 아픈 상처들을 비로소 올곧이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그저 묻어 둔다고. 그저 세월 속에 묻어 둔다고 아물지는 않다는 걸 깨닫지요. 올바르게 그 아픈 상처를 드러낸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상처들을 껴안고 어루만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와 그 상처를 왜 끄집어내는 것이냐, 그 상처는 이미 아물었다, 는 식의 신경질적, 무표정한 반응들은 접어두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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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16:36 2009/12/01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