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아직 괴산(2006년 9월 23일)
 
속리산엘 다녀오고 나니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여기저기서 벌초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다른 때와 달리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유난히 막혔는데 그 때문이었나 보다. 여하간, 어째 벌초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다들 남정네들인데 하나같이 자기네 조상들 벌초 다녀왔다는 이야기들뿐이다. ‘혹시 처갓집 벌초는 다녀들 오셨나요?’ 한마디하고 싶은데 그냥 꾹 참는다.
 
아무튼 남정네들이 그렇게 자기네 조상들 무덤 찾아다녔던 그 좋은 날씨 속에서 정말 걷기 좋은 길을 걸었다.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을 걷기도 했고, 걷는 내내 맑은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맑은 계곡이 함께 했다. 많은 이들이 남도지역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지만 우리 생각엔 충청도가 훨씬 나은 듯하다. 무주를 지나면서 만났던 민주지산을 품고 있는 황간, 드넓은 포도밭의 영동, 속리산 자락을 따라 걸었던 보은, 그리고 여기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연이어 펼쳐 보이고 있는 괴산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길들이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을 떠나 괴산까지 온 덕에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하루짜리 여행이었으면서도 20km가 넘게 걸었다. 이제는 한 시간에 4km 걷는 속도는 완전히 몸에 배었고, 두 시간은 걸어야 ‘힘들다’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이 생겼으니 이는 생각지 못한 성과다.
 
여행 때면 늘 그렇듯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이 넘게 버스를 타고 사담에 도착하니 9시가 코앞이다. 괴산 읍내에서 아침을 해결하지 못해 혹시나 하고 빵 한쪽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준비했는데, 역시나. 민박 간판은 여기저기 보이나 음식점은 몇 보이지 않고, 보이는 음식점들은 이른 시간인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하는 수 없다. 준비해간 빵 한 입 베어 물고 길을 나선다.
 
헌데 이런. 이렇게 높은 하늘과 맑은 계곡을 봤던 게 언제지? 게다가 시원한 가을바람까지 옷깃을 파고드는데 뱃속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좋다’라는 표현 외에 또 어떤 말이 있을까? 아직 길가에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에는 한없이 좋은 날씨와 한없이 좋은 길이다.
 
 
 
 
 
 
 
 
 
 
 
 
 
 
 
  
 
 
 
 
사담리를 출발해 그렇게 가을을 한껏 즐기며 두 시간을 넘게 걸으니 아무리 좋아도 잠시 쉬어가야 하나보다. 몸에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는 걸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등 뒤로는 땀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맺힌다. 배도 채우고 다리도 주무르며 쉬어가야겠는데 다행이 마을 입구에 정자 하나가 마중 나와 있다. 에라, 모르겠다. 땀이 배지는 않았어도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던져 놓고는 아침에 한 입 먹고 남은 빵이며 과자까지 꺼내들고 안방에 누운 것 마냥 대(大)자로 눕는다.
 
 
괴산군 관광안내도에 따르면 멧돼지와 토종돼지로 유명하다던데, 이름도 거기서 따온 듯 보이는 멧돼지휴게소를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는 샛길로 빠진다. 후평숲이 있다고 나와 있기는 해도, 그리고 왕복 2차선의 잘 닦여진 도로라고 해도,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나는 마을이 무슨 마을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수려한 풍경에, 오가는 차도 없고, 때로는 차선도 없는 시골길을 걸으니 기분 하나는 계속 죽여준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풍경을 담아내느라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길을 따라 두 시간을 넘게 걸어 화양동계곡 입구에 당도하니 2시가 가깝다. 배고픈 거야 출발할 때부터였으니 뭐 그렇다 쳐도 벌써 시간이 이리됐을까? 계획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나 지체됐다. 아무래도 방금 지나온 이름 모를 길을 걸어서일 테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던 시골풍경에, 시골길을 걸어와 아쉬움은 없다. 다만 당초 목표로 했던 송면까지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멀리 속리산국립공원 매표소가 보이는 게 화양동계곡을 지나려면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내야 할듯하다. 물론 계곡을 저만치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면 돈은 아낄 수 있겠지만. 계곡 입구 다리 옆에 붙어 있는 안내도를 보면서 대충 거리를 가늠해보니 송면까지만 해도 5km는 넘는 듯하다. 그럼 두 시간은 잡아야하는데. 바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해도 네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듯.
 
계곡 입구에서 한참을 어찌할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청주까지 나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자꾸 거슬린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드는지 발길은 계곡 쪽으로만 향하는데. 해서 계곡이 내려 보이는 식당 앞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늦은 점심에 시원한 동동주 한잔 걸치니, 음,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 열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괴산 사담리 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약 20km. 걸은 시간 5시간.
 
* 가고, 오고
괴산까지는 전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며, 괴산에서 사담까지는 다행히도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어 쉽게 갈 수 있었다. 화양동계곡에서는 일단 청주로 나간 후에 강남, 남부, 동서울 혹은 광명 등지로 가는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 잠잘 곳
사담계곡과 화양동계곡에는 민박과 음식점이 다수 있으니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우리가 걸었던 길에는 화양동계곡까지 음식점은커녕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보기 힘드니 멧돼지휴게소에서 미리미리 먹을 것을 챙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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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13:50 2009/10/05 13:50
옥천군 청산면에서 속리산 아래 서원계곡까지(2006년 8월 27일)
                                                                              
                                                                                <동학 집회가 열렸던 장내에는 장승만이 서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탔는데도 청산에 도착하니 7시가 넘어도 훌쩍 넘었다. 아직은 구름 속으로 해가 숨어 있어 아직은 괜찮지만 언제부터 목 뒤로 따가운 햇빛이 내리쬘지 몰라 서둘러 길을 나선다. 하지만 청산 면소재지를 벗어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505번 지방도로의 풍경이 자꾸만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오른편으로 보성천이 있기는 한데 강물은 흐름을 멈춘 듯 하고, 바람은 한 점 없는 데다 사람은커녕 지나는 차 하나 없다.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것이 마치 꿈속을 걷는 듯 나른하기만 하다. 큰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힘을 내보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어제는 밖에 일이 있다며 사무실에서 땡땡이를 치고는 해지기 전 옥천에 당도했다. 꽉 짜여진 일상에서 탈출하기가 맘만 먹으면 이렇게도 쉬운 것을, 이리재고 저리재고 앞뒤 생각하니 어디 쉽게 놀러 갈 수나 있을까. 혹, ‘누가 요즘 같은 때에 간도 크게 사무실을 땡땡이 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해보시라. 맘먹을 땐 오만가지 생각이 들겠지만 일단 저지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열차를 타기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소나기가 한 두 차례 온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는데, 어째 옥천역에 내리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가 좀체 그칠 줄을 모르더니 5시가 넘어서야 겨우 가늘어진다. 그 바람에 정지용 생가며, 문학관 구경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비가 온 탓인지 날마저 금세 어둑어둑해져 옥천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인근에서 하루 머물 곳을 정했다.
 
10여 년 전 홍수로 유실돼 이제는 그 자취를 볼 수 없는 한호팔경이 있었던 대성리라는 마을에서 한 숨 쉬고 나니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동네 사람 이외에는 누구 하나 올까말까한 동네 구멍가게에서 목도 축이고,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마로면 관기리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는 목덜미가 따끈따끈하고, 귀 볼 아래로 땀도 주르르 흐리니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땀을 닦으며 쉬어가야겠다. 다행이 맛 좋은 시골 밥상을 차려주는 식당이 있어 뱃속을 든든히 채우고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시골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까까머리 소년들의 공차기에 쪽잠이 방해받기는 해도 정겨운 시골 풍경 때문인지 그리 시끄럽지만은 않다. 나무아래 시원한 가을바람 속에서 그렇게 아직은 한여름의 따가움을 지니고 있는 햇살이 사그라질 때까지 그렇게 쉬다 3시가 넘어서야 다시 길을 나선다.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25번 국도는 길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고 너른 논이 산 아래까지 펼쳐져 있어 마음이 한결 풍성해진다. 하지만 여느 국도와 다를 바 없이 통행하는 차도 많고, 멀리 보이는 공사 현장에서 쏟아내는 덤프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질주하느라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탄부 임한 솔밭 공원에서는 250년 이상 된 노송 사이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장내에서는 선병국 가옥에, 동학 장내 집회 장소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며 쉬기도 하고, 마른하늘에 때 아닌 소나기를 맞기도 하니 재밌기만 하다.
 
 
<서원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선병국 가옥>
 
장내에서부터 ‘여기가 서원계곡이다’고 불리는 서원계곡은 여름철 계곡 물놀이 장소로 이름이 알려졌다기보다는 이런저런 고시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으로 더 소문이 난 듯하다. 장내 입구에서 한 동안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던 99칸 선병국 가옥이 그랬고, 서원리의 커다란 건물들이 모두 고시원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보니 장내에서부터 유난히 선남선녀들이 눈에 띄었는데 아마 그 고시생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나 해서 서울에서 서원계곡 내 민박집 여러 곳의 전화번호를 적어왔지만 마땅히 잘 만한 곳이 없어 보이는 게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일정은 숙박할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법주사까지 걷는 것으로 잡았는데, 선병국 가옥과 동학 집회 장소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어쨌든 근방에서 하루 머무르지 않으면 안 될 텐데 말이다. 해서 잘 만한 곳 여기저기에 서둘러 전화를 돌려본다. 하지만 이를 어째. 쉽사리 통화가 되는 곳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한참을 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하고, 어렵사리 통화가 된 곳들에서는 터무니없는 방에, 터무니없는 방 값을 불러 기분만 상한다. 아무리 한철 장사라고 해도 좀 너무 한다 싶다.
 
서울로 갈 요량으로 고시촌 서원리로 다시 되돌아가는 가는데, 이름 모를 동네 어귀에서 버스편을 알아보니 이미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이미 끊겨버렸다고 한다. 어찌할까 생각해봐야 답은 없고, 일단 국도와 이어지는 장내까지 내려가기로 한다. 다행히 고시촌 못 미쳐서 맘씨 좋은 고시생을 만나 보은 읍내까지 편히 나올 수 있었다. 3시간 30분이나 걸린다는 걸 차가 출발한 후에야 알게 된 남부터미널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창밖으로 어둠이 짙다.
 
* 열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옥천군 청산면에서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계곡까지 약 23km. 걸은 시간은 약 6시간.
 
* 가고, 오고
옥천까지는 영등포역에서 14시 33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로 이동했으며, 청산면까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했다. 영등포에서 옥천까지 기차요금이 8,200원인데 옥천읍에서 청산면까지 버스요금이 3,250원이니 웬만하면 열차나 고속버스가 다니는 곳에서 시작과 끝을 맺는 게 좋다. 서원계곡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맘씨 좋은 고시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하루 더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서원계곡에서 보은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몇 차례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지만 대략 저녁 6시 이전에 마지막 차가 지나는 것을 보았으니 하루 더 머물 요량이 아니라면 막차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보은에서 청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시외버스는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저녁 7시 30분이 마지막이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일찍 터미널에 도착해 대전이나 청주를 거쳐 고속버스 또는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 잠잘 곳
이번 여행은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걷기는 둘째 날 하루만 했다. 첫째 날 우리가 머문 곳은 정지용 생가 인근의 춘추민속관이라는 곳이다. 가까운 옥천 읍내에는 여관과 모텔 등 숙박할 만한 곳이 여러 있으나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해서 그곳에서 머물렀다. 속리산 아래 서원계곡에는 황토방갈로를 운영하는 곳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으니 보은읍이나 법주사 쪽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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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2 13:20 2009/08/22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