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할부로 들여놓은 책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이니 어린이명작동화니 뭐 그런 것들 말이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위인전’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이니 ‘강감찬’이니 하는 ‘장군’들 얘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암튼 대략 50권은 돼 보이는, 보통 한질이라고도 하는 이 문집을 몇 날 며칠 밤새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난히도 ‘장군’들이 많이 등장한 건. 총, 칼로 정권을 찬탈한 군인들이 자신들의 취약한 정당성을 과거 ‘국난극복’의 우상들을 내세워 어찌어찌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가난이란 게 뭔지 쬐끔은 알았던 나이였던지.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사놓은 그 책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지요. 다른 친구들은 읽고 나면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도통 감명 따위 같은 것은 눈곱만치도 생기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2.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위인전이란 걸 접하게 된 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본명은 장지락(張志樂)으로 평안북도 용천 출생.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조선 독립 운동에 몸을 던졌던 김산의 삶을 기록한. 그 역시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는지, 뭐 대단한 재미가 있으려니 싶었지요. 하지만 읽는 내내, 또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똑같이 느껴지던 전율. 그래요. 그거야 말로 ‘감명’, ‘존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3. 
선거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는 하지요. 출마예정자들이 합법적인 선거운동 기간 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이런 저런 책들을 내놓기 때문이지요. 머. 대부분이 자기들 돈 내고 하는 일이니 뭐라 욕할 순 없지만. 선거 때만 나타나 굽실굽실하는 꼬락서니들에, 선거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배지 달고 으스대는 모양새까지. 그 모든 걸 다 적어는 놓았는지 궁금하지도 하지만. 또 그 많은 책들 가운데 과연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에세이나 회고록, 대담 등은 그래도 좀 봐줄만 하지요. 자서전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닙니까.
 
4.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도 그렇게 감명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메말라졌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조금은, 아니 세상 물이 많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처럼 책을 읽는 다는 건. 그저 글자를 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 장르를 따지지 않고. 에세이를 읽기도 하고, 소설을 읽기도 하고. 천문학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여행기를 사 보기도 하고. 또 <주은래>(司馬長風 지음, 태창문화사. 1979),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까치. 1978)와 같이 헌책방에 발견한 ‘위인전’도 보면서 말입니다.
 
5.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본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반성할 수도 있고. 같은 뜻이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계획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모두가 본받아야 할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그러다 어떻게 죽어갔는가, 뭐. 그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감동’, ‘존경’, ‘감명’들과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삶을 살았던 이들을 보며 한 방울, 눈물 떨어뜨릴 수 있는 시간. 그거면 충분한 건가요. 만약 이런 기준이라면 최근에 읽었던 ‘위인전’, <주은래>와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이 두 책 가운데 한 권만 해당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네요. 아, 그렇다고 ‘주은래’의 삶이 ‘감동’, ‘존경’과 같은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주은래>를 쓴 사람이 ‘주은래’의 한쪽 모습만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요. 해서 이번 기회에 다른 이가 쓴 책들을 찾아보기로 했답니다. 반대로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는 앞에 기준들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책 역시, 쓴 사람이 시몬느를 ‘성자’의 이미지로 지나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시몬느 베이유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꼼꼼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또, 그녀가 남긴 많은 글들을 굳이 다 읽지 않더라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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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4 14:48 2010/07/14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