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만 봐서는 성이 ‘임’이요 직위나 직책이 ‘계장’인 어떤 한 사람이 쓴 글인 줄 알았습니다. 앞표지를 보면 오히려 갸우뚱합니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빗자루 쓰레받기를 든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 알 수가 없습니다. 뒤표지를 보니, 글쓴이조차 자신이 ‘임계장’이라 불리는 것이 의아했답니다. 성씨를 잘 못 알아서, 배차 계장이라는 직책과는 아무 상관없는 호칭, ‘임계장’.
‘임계장’은 ‘고.다.자’로도 불린답니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어서요. 그렇습니다. ‘임계장’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있으나 없으며, 필요하나 필요 없는.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임시계약직이면서 고령인 노동자 일컫는. 그 ‘임계장’은 숨겨두고만 싶었을 일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얼마만큼은 그럴 거라 생각했었던, 막상 속속들이 알고 나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그 이야기들을요.
어느 이른 새벽에 꽃봉오리를 털어 내는 그의 모습을 봤다. 대빗자루로 사정없이 털어 내자 봉오리들이 힘없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중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 맺혀 있는 봉오리까지 다 털어 냈다. 꽃봉오리들은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원망을 토해 내듯 땅에 부딪히자마자 마지막 힘을 다해 품고 있던 꽃잎들을 토해 냈다. 피지도 못하고 봉오리로 소멸하는 꽃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p.181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십 번씩 손을 씻는 이가 경비원 말고 누가 있을까? 우리의 손은 하루 종일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는 손이지만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p.87
2.
글쓴이는 자신이 지나왔던 시.공간들을 ‘경계의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학교는 다니는 것도, 직장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때.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학교, 군복대신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공장. 분명 모두가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을. 그럼에도 “설명하지 못한 채 뒤로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꾹꾹 눌러 써내려갑니다. ‘탁본’을 뜨듯이요.
‘청년’이란 곧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 가장 구석진 자리로 밀려난 이. ‘현장실습생’ 또는 ‘산업기능요원’이라 불리는 청년노동자. 그 청년노동자는 “그 누구의 삶도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따뜻한,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온기로, 그들로부터 가로채간 언어를,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담담히 돌려주고 있습니다.
열아홉 할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던 나에게. 수능을 망치고 괴로워하던 H에게. 주량을 한참 넘어 술을 마시던 친구들에게. 어쩌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어른이 되어야 했던 누군가에게도 이 거리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는 세상은 없는 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혼자 생각하며, 나는 불빛이 잦아드는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pp.85-6
몸은 차갑게 식어있는데, 가슴 속에서 자꾸만 뜨거운 게 올라와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건지, 무엇하나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버려진 전단을 줍는 일이었다. 몸을 숙여 마른 낙엽처럼 흩어져 있는, 잊히고 외면되어 왔던 누군가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 모으는 일뿐이었다. pp. 213-4
3.
두 글 모두 각자가 겪은 일들을 속속들이, 꾹꾹 눌러 써내려간 일기장입니다. 동시에 임시계약직, 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입니다. ‘갑’과 ‘을’이라는 계약관계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가 “시가 담긴 수필이고 산문”이라면 「임계장 이야기」는 덜어내거나 보태지 않은 현장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책이 주는 울림은 형식이 주는 낯설음과 어색함을 가뿐히 넘어섭니다. 보고도 믿기지 못하는 순간들과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과 낯 뜨거움을 감출 수 없다면, 함께 “여기 사람이 있다”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격식을 차리는, 이론이 넘쳐나는 글들보다도 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너끈히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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