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분명 기아 실태와 그 배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서부터 바로 우리 이웃, 북한에 이르기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던 아옌데와 상카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 소는 배를 채우는데 사람은 굶주리고 있는 현실. 2005년 기준 5초에 1명씩 죽어나가는 10세 미만 아동들에 관한 것이지요.

 
장지글러는 아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놓습니다. 학자라면, 국제 전문가라면 으레 드러내고 싶어 하는 현학이나 우쭐함은 버려둔 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급한 구호가 필요함에도 무시되는 이유, 구호가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 아니 구호가 되레 상황을 악화시키게 되는 이유, 책이 처음 나온 때로부터 10년이 훌쩍 더 지났음에도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 이유들이 쉽게 이해됩니다. 또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명쾌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이 말하고자 한 바는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해제를 쓴 우석훈이 지적했듯, 지글러는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p.16)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지, 그것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철저히 반성하고 있는 겁니다.  
 
또 지글러는 질주하는 ‘설국열차’, 신자유주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민영화(더 명확한 표현은 ‘사유화’임이 틀림없겠습니다.), 규제철폐, 거시 경제 안정, 예산감축’(p.181)으로 이해되는 다국적기업, 금융과두지배가 살인적인 세계질서를 강제하고 있으니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의 물음은. 한편으로는 ‘참회록’과 같은 ‘따뜻한 가슴’과 다른 한편으로는 실태와 해결책을 위한 ‘냉철한 머리’가 답일 수밖에 없음을 책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꼭 마지막 후기까지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이 스스로 의식을 바꾸고 다국적 자본과 그 과두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한다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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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 20:18 2014/03/23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