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불온’이 무슨 뜻인가 찾아봤습니다. 다음 두 가지더군요. 온당하지 않음.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육공동체 ‘벗’에서 펴낸, 아니 시즌 1, 2로 진행된 ‘불온교사 양성 과정’은 분명 뒤에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물론 홍세화가 지적했듯이 학교라는 곳이 ‘제도교육을 통해 지배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반전된 불온성의 한계」, 홍세화. p.25)라는 말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아니, 가만 생각해보면. 4년 동안 지각 한 번 안하고, 숙제를 못하는 학생이 없는 학교. 캠퍼스에서 키스하는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는 교수와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는 학생. 쉽게 말해 순응적이고 검열 당하는데 익숙한 ‘착하다.’, ‘법 없이도 산다.’, ‘말 잘 듣는다.’는 교사를 양성(「신규교사는 어떻게 능숙한 경력 교사가 되는가」, 정용주. p.85)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교사 양성과정을 보건데. 분명 불온하다는 것은 순응하지 않음이 맞습니다.
 
이렇게 불온이 의미하는 바가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라면. 이제껏 착하고 온순하기로 으뜸인 최고 ‘범생이’였던 이들이 왜 불온해지기로 작정한 걸까요. ‘부장-교감-교장-교육청 간에 수직적인 위계가 형성되어 있고, 또 그 틀이 교단을 칡넝쿨처럼 칭칭 감아 당국의 교육정책을 일사분란하게 집행하게 하는’ ‘승진열차’(「승진의 길로 가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이상대. p.214)를 멈춰 세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입니다.
 
아쉽게도 불온교사 양성과정에는 그 이유가 뚜렷이 제시되어 있진 않습니다. 아마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교육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걸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학교 안만 봐도 끊임없이 책무성 시스템, 평가 시스템에 잘 적응한 ‘유능한 교사’(「능력주의와 책무성을 넘어 ‘체제 속의 이방인’되기」, 이형빈. p.58).를 요구하고, 모든 교사에게 학급과 학교를 경영하는 기업가로서 자기정체성을 갖도록 요구(「신규교사는 어떻게 능숙한 경력교사가 되는가」, 정용주. p.81)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불온한 교사가 되려는 이유보다는 어떻게 그렇게 될 것인가에 중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들이 현실을 연구하는 문화, 편하게 고민을 나누는 문화,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문화 …… 그런 게 없으면 계속 내 안에 갇혀서 반성만 하다 끝날 테니까요. 그럼 제도를 바꾸는 싸움도 불가능해지고요.
(「배려와 존중의 교사 문화 가꾸기」, 안정선. p.120)
 
제대로 된 교육공동체를 일구기 위해서라도 개인을 발굴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육공동체’의 공동체가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건 아니잖아요. 교사들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학생들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이해하고 왕따 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꼰대 탈출 프로젝트」, 조영선. p.166)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가치판단이 있습니다. 객관은 없고 주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란 것도 출제자의 다섯 가지 주관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니, 오히려 그게 주관식보다 더 주관적인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중립을 고집하고 강요할 게 아니라 각자의 주관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 판단을 드러내고 타인의 가치판관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발랄하게 싸우는 법」, 진웅용. pp.182-183)
 
전 교사가 되는 순간, 세 가지 싸움이 숙명적으로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자기와의 싸움, 학생과의 싸움, 제도와의 싸움이 그것예요. …(중략)… 결국 교사로 산다는 건 늘 스스로를 흔들며, 프레이리가 말했듯 스스로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진의 길로 가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이상대. pp.230-232)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의 도식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턱만 넘으면 되는 곳이 있거든요.
(「교육 불가능의 사회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이계삼. p.225)
 
불온한 교사를 양성하는 이 강좌에 참여했던 어느 한 선생님이 후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이라 해서 관리자에게 잘 대드는 법, 부장과 잘 싸우는 법을 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맞습니다.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전체를 다 읽어봐도 그런 얘기는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강의 속에 간간히 그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실은 이 선생님의 고백이 어느 면에서 보면 불온한 교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 잘 찾으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싸우는 법을 배우러 왔다던 그 선생님들을 포함해 과정에 참여했던 선생님들이  깨달은 건.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이 “요령보다는 통찰을, 섣부른 희망보다는 정직한 절망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는 겁니다. 때론 울컥하기도 하고 부끄럽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 분명하고 명확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과정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불온’해지는 것, 두려워할 필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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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9 14:03 2013/12/09 14:03

 

텔레비전이라면 좀체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곧잘 챙겨보는 몇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소소한 일상이나 혹은 곧 사라지게 될 어떤 모습들을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일상, 그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이날 방송도 그랬다. 낮에 잠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시립도서관에서 최종규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빌려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헌 책방 나들이를 하다 잠깐 텔레비전을 켰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화면에 잡힌 것이다. 반갑기 그지없다.

                                                                                                                                          

 

“고르다 보면 꼭 한권씩 눈에 띄는 책이 있거든요. 그럼 그걸 사면 소중하죠. 밥을 안 먹어도 그걸 사면 배부르고요.” ‘책갈피 사이 인생이 머무는 풍경-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다큐멘터리 3일’

 

낯선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이럴까. 돌이켜보면 꼭 일 년 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춘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낙성대며, 신림동이며, 신촌, 청계천, 서대문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나섰던 모습이 겹쳐진다. 거리상으로야 100k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래도 서울 출타는커녕 일부러라도 헌책방에 오기는 어려울 듯싶어 마음에 담아두려 부러 시간을 냈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낙성대 전철역, 그리고 [흙서점].

 

“<흙서점>은 책방이 썩 넓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밭(분야) 책을 많이 꽂아 둘 수는 없지만, 좁은 자리에 놓는다고 해도 그 밭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고 해요. 꽤나 많은 책이 들락거리기에 찾을 만한 책은 웬만큼 찾고 즐길 수 있답니다. 자리는 찾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책은 많으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p.246

 

책표지 안쪽을 보니 ‘2008.3.5 낙성대 흙서점’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꼬박 1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첫 느낌은 책의 제목 때문인지 여행 책인 양 싶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옮겼는데 적장 지은이는 낯설다. 질베르 시누에. 내 기억으론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고작 ‘Y2K’로밖에 남지 않은, 새천년, 새시기의 첫 해에 쓰였고, 우리나라엔 한 해 뒤인 2001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초판본이어서인지 책장도 조금은 누렇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에 읽었던 이가 남겨둔 밑줄을 빼면 새 책이나 다름없는데다 여느 책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손에 잘 잡힌다. 다만 파리 교외 깡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 않아 오래도록 책을 붙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자기들의 특허권 옹호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은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약값을 정해 놓고 있다. 약이 상업화되려면 시장이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주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빨리. 제약회사들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증권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게 할 시장들만 선정할 뿐이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92 '수요일-루시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네.

 

“리틀톤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미 출생 인종, 신체적 특징, 즉 눈과 머리의 색깔, 신장, 혈액형 등에 따라 난세포 또는 정액을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이 존재한다. 그밖에 제공자들의 건강 상태와 병치레 경력, 지능지수, 교육 수준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다. 벌써 그 ‘목록’들은 국립 수정 등기소의 목록처럼 인터넷 망에 올라 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145. 토요일-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하여.

 

종종 새것 보다 오래된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애주가에게 묵은 술이 깊은 맛을 주고, 1,000만 화소에서 맛볼 수 없는 기다림을 필름 카메라가 줄 때가 그렇다. 막 택배로 도착한 새 책이 내는 잉크냄새보다는 도서관에서 혹은 헌책방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윤에 쫓겨, 오로지 지배의 대상이 대어 죽어가는 자연, 산업국들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파괴,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오래된 질문들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만큼 쉽게, 깨끗이 잊힐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보거’는 머리가 세 개고 꼬리는 뱀의 꼬리를 닮은 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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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22:40 2009/05/25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