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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8/29
    "사람이 나빠서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다"
    onscar
  2. 2005/08/09
    '유랑작가' 공선옥(2)
    onscar

"사람이 나빠서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다"

권세가 중하면 지키기 어렵고

지위가 높으면 세도는 다하기 마련이니

교만한 자리에 오름은 가득 찼다는 뜻이요

나이가 많음은 목숨이 끝나간다는 것.

권세와 지위, 녹봉과 권위, 이 넷은 도둑과 같아

밤낮으로 서로 공격해온다.

설사 좋은 집에 산다고 해도

누가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작은 일을 가지고 큰 도리를 밝히나니

집의 이야기를 빌어 나라의 일을 깨우칠 수 있도다.

주나라와 진나라는 효관과 함곡관을 터로 삼고

그 터는 같았으나

주나라는 팔백 년 간 흥하고

진나라는 이궁만 바라보고 죽었노라.

집이나 국가에 대해서 말하노니

사람이 나빠서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로다.

 

--- 백거이 '흉가' 중에서.

(출처 : <비파행> (오세주 옮김, 다산초당)

 

백거이는 두보, 이백, 한유와 더불어 '이두한백'이라 불리며 한시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인이다.

 

리얼리스트이자, 저항시인이었고, 참여시인이었으며, 민중시인인 백거이는 그러나 한국 독자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거이는 시를 다 지은 뒤 이웃 노파에게 들려주어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고쳐 쓸 정도로 철저히 쉬운 용어로 시를 지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백, 두보, 한유의 시에 대한 주석서가 수백권에 이르지만 백거이의 시에 대한 주석서가 한권도 없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한 <장한가>는 '낙양의 종이값을 올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마오쩌둥, 장쩌민도 120행이나 되는 이 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한시(아니 한자 ㅡ..ㅡ) 자체가 낯설어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순 없었지만

번역된 것만으로도 백거이 시의 '저항정신'과 '민중성'을 엿볼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의 권력에 대한 충언이

12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일정 부분 유효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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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작가' 공선옥

 

공선옥은 잔인한 작가다. 독자의 기대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니, 여지없이 부순다. 어쩌면 공선옥은 나 같은 독자에게 스스로가 자식을 미국에 조기유학 보내놓고 “대 아랍전 이후 중미전쟁에 전부 용병이 될 남반부 아이들”을 걱정하는 지식인 ‘정’과 같은 존재는 아닌지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얄팍한 기대는 내 무관심에 면죄부를 주지 위한 것임을 공선옥은 은근슬쩍 눈 감아 주고 않은 게다. 그보다 가난한 ‘유랑작가’인 그는 그럴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공선옥의 잔인함, 아니 가난한 이들의 삶의 비극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함께 살던 할머니마저 위암으로 숨져 오갈데 없는 산골 소녀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남쪽 바다, 푸른 바다>에서 가장 아프게 드러난다. 열한 살 난 영주는 어렵사리 연홍도에 사는 고모를 찾게 됐다. 그래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야무진 고모 김귀옥과 남편 김 선장, 이들 부부의 딸 주희와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는 듯 했다. 



  “일이 그렇게 되어 부렀습니다요 이. 김 선장이 말입니다. 전 해상에 태풍 루사 경계경보가 내린 밤에 말입니다, 도선 운항 시간이 끝난 밤 열두시, 신양서 데리러 오라는 연홍도 주민의 전화를 받고 연홍도에서 신양으로 건너오다가 말입니다.....”

“사곱니까?”

“배가 뒤집혀부렀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온다.

“가족들은요?”

“암만 기달려도 연홍도 아이들이 안 보이지요 이 얼마 전에 섬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간지는 모르고요 이, 그 자모님이 장애인인데, 거그다가 조카까지 책임을 져 놓아가지고....”

 


영주는 섬에 없다. 남쪽 바다 푸른 나라에 영주는 없다. 아침 햇살 속에서 꼭 다시 오라고 소리치던 아이들의 함성도 없다. 그렇다면 영주는 어디로 갔는가. 김귀옥은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가. 그때야, 영주가 소리치던 것이 생각났다.

 

“아저씨, 나는 남쪽 바다 푸른 나라에서 행복하게 잘살 거래요.”

 


그렇다면 영주는 제 고모를 따라 그 나라, 그 푸른 나라로 갔는가. 돌아서는데 문득, 바다가 검다.

 

또 공선옥은 에둘러 표현하는데 서툴다. 이미 ‘가난’은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타자화된 경험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은유적으로 표현할 만한 여유가 그에겐 없을지 모른다. 생존의 문제이지 않은가.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그래서 간이 탈나버린 거예요. 어머니요? 아버지 땜에 농약 마셔버렸어요. 제초제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희망이 없었던 거예요. 삶에 대한 희망이요. 저요? 안 죽으려면 서울로 가야죠. 아저씨, 그거 알아요? 여긴요. 죽음의 땅이에요. 왜냐면,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잖아요. 킬링필드라고 아시죠. 바로 그거라구요. 죽지 못해 사니까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여긴 맨날 그런 사람들만 산다구요.

 


가난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고 난폭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난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가정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무기는 사랑 뿐이었다. 그 사랑이 경수 부부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부자들의 사랑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 한에게는 그래서 더 눈물나는 사랑이다. 돈도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사랑이 받쳐주지 않는가. 가난한 사랑이.

 


돈 때문이든, 외로움 때문이든,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이 없어서, 사람들은 외롭다. 돈 있는데도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인숙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수몰이 되면서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도 수장이 되는 거라구.”

물부족 사태라거나, 댐건설의 필요 불필요를 따지기에 앞서, 김은 건설과 개발의 미명하에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했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걱정에 앞서 거기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도대체 돈으로 맞바꿀 수 없는 정신에 대해서. 그러나 돈 앞에서, 발전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런 정신, 삶을 에워싸고 있던 오래된 정신 같은 것은 그저 허섭스레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공선옥은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냐"며 안타까움을 표한다. 가난한  '유랑 작가' 공선옥의 존재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가난이란 죄가 더 커져갈 수록....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을 결코 원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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