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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빠서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다"

권세가 중하면 지키기 어렵고

지위가 높으면 세도는 다하기 마련이니

교만한 자리에 오름은 가득 찼다는 뜻이요

나이가 많음은 목숨이 끝나간다는 것.

권세와 지위, 녹봉과 권위, 이 넷은 도둑과 같아

밤낮으로 서로 공격해온다.

설사 좋은 집에 산다고 해도

누가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작은 일을 가지고 큰 도리를 밝히나니

집의 이야기를 빌어 나라의 일을 깨우칠 수 있도다.

주나라와 진나라는 효관과 함곡관을 터로 삼고

그 터는 같았으나

주나라는 팔백 년 간 흥하고

진나라는 이궁만 바라보고 죽었노라.

집이나 국가에 대해서 말하노니

사람이 나빠서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로다.

 

--- 백거이 '흉가' 중에서.

(출처 : <비파행> (오세주 옮김, 다산초당)

 

백거이는 두보, 이백, 한유와 더불어 '이두한백'이라 불리며 한시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인이다.

 

리얼리스트이자, 저항시인이었고, 참여시인이었으며, 민중시인인 백거이는 그러나 한국 독자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거이는 시를 다 지은 뒤 이웃 노파에게 들려주어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고쳐 쓸 정도로 철저히 쉬운 용어로 시를 지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백, 두보, 한유의 시에 대한 주석서가 수백권에 이르지만 백거이의 시에 대한 주석서가 한권도 없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한 <장한가>는 '낙양의 종이값을 올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마오쩌둥, 장쩌민도 120행이나 되는 이 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한시(아니 한자 ㅡ..ㅡ) 자체가 낯설어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순 없었지만

번역된 것만으로도 백거이 시의 '저항정신'과 '민중성'을 엿볼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의 권력에 대한 충언이

12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일정 부분 유효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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