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슬픔이 흘러 당신들에게도 평화가..."

슬픔은 흘러야 한다. 한 사람의 가슴에 있는 슬픔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그 슬픔은 한 사람을 파괴한다. 미군에 의해 남편과 세 명의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한 이라크 여인처럼.
  
슬픔은 흘러야 한다. 한 사람의 가슴을 잠식한 슬픔이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스며들지 않을 때 인간은 타인을 죽일 만큼 잔인해질 수 있다. 그래서 슬픔은 강물을 이뤄, 바다가 되어 흐르고, 또 흘러야 한다.
  
 "웃지 않는 아이들, 전쟁의 어떤 모습보다 슬프고 무서워"
  
지난 2004년 3월부터 106일 동안 이라크 바그다드에 머물렀던 윤정은씨가 자신이 경험한 전쟁에 대한 기록을 묶어 <슬픔은 흘러야 한다>(즐거운 상상)를 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책은 그가 본 전쟁 속 이라크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이라크에서도 먹고 입고 자고 살아 남아야 하는 고단한 일상, 서로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이해했을 때 따뜻한 정서를 함께 느끼는 것은 똑같았다.
  
그러나 그 곳은 폭탄 소리에 잠에서 깨고, 세계에서 석유가 2번째로 많이 묻혀 있다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끊긴다. 길에서 담배와 물을 팔던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폭탄을 맞아 갈갈이 찢기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10대 소년이 무자헤딘이 되겠다며 총을 들고 집을 나가고, 어린 아이들조차 웃지 않는다. 그는 "웃지 않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전쟁의 어떤 모습보다 슬프고 무서운 장면"이라고 회고했다.
  
"아이들의 눈을 볼 때가 가장 슬프다. 전쟁을 목격하고 사막을 넘어 죽음을 본 그 영혼이 입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도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너무나 맑아 그 아이러니한 풍경에 가끔 넋을 잃는다."
  
 "전쟁이 비참한 건 사람이 죽어서만이 아니다"
  
이라크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14일 하루 동안에만 이라크 곳곳에서 10여 건의 크고 작은 테러가 발생해 180여 명이 숨지고, 570여 명이 다쳤다. 미군과 이라크군의 수니파 저항세력 토벌 작전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이날 테러를 외신들은 본격적인 내전의 시작이라고 분석했다. 사람들 마음에 쌓인 분노와 원한의 응어리가 다 풀어지기 전까지 이라크에서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전쟁이 비참한 것은 사람이 죽어서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와 신뢰가 무너져 내리고, 살아 남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절망적인 사회가 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오염된 물과 공기, 민가와 공공건물의 파괴, 약탈, 여성들에 대한 납치사건과 아이들의 유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실업난, 의약품과 식량의 부족, 수도와 전기 통신시설의 파괴,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속이고, 팔아 넘겼다. (…) 사람들의 마음과 인간관계, 사회 전반에 생긴 이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치유의 과정을 거쳐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50여 년전 3년간의 전쟁 이후 분단 국가로 긴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도 여전히 전쟁의 생채기로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전쟁의 기록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윤정은 씨에게 106일간의 이라크 체류 경험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전쟁은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그러나 더 비극적인 것은 그 죽음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숫자가 아닌데, 언론은 전쟁 속 죽음과 관련해 숫자만 보도한다. 모두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 인생의 역사와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이 죽는 전쟁에서 승패라는 것은 없다. 전쟁을 게임으로만 보는 사람들과 전쟁에서 이익을 챙기거나 잃는 권력자들이 승패를 논할 뿐이다."
  
그는 "전쟁의 기록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며,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록자는 힘과 폭력에 저항하며, 자본과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투쟁하고 기록해야 한다. 전쟁은 타인의 죽음과 피해와 이후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될 고통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힘과 돈에 의해 왜곡하거나 수단화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기존의 전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했다.
  
 
그의 가슴 속에 스며든 전쟁 속 이라크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그의 그림과 글을 통해 내 가슴에 흘러들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것을 지속적으로 뺏기 위해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이 전지구화된 경제구조를 지탱하고, 그래서 또 세계 어느 곳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무관심일 수 있다고 윤정은씨는 지적했다. 그의 책이 발원지가 돼 슬픔이 강물이 되기를 바란다.
  
살람 알레이쿰!(평화가 당신에게!) 

 

덧붙이는 말 : 이 책의 필자 윤정은은 내 친구다. 내게 이 책인 더 소중한 이유는 그가 이라크에 머무르는 106일동안 난 한국에서 함께 가슴 졸였기 때문이다. 멀리서 어렴풋이나마 전해듣는 전쟁 소식도 그토록 가슴 아픈데 그 땅에서 직접 전쟁을 경험하는 이들의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윤정은의 지적처럼 "그저 그들의 고통의 가장자리에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 우리가 해야할 최선일 것이다. 

 

윤정은이란 친구가 있어 내 삶이 조금이나마 겸손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난 참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