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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1
    [책]아나키즘, 그게 뭐!!(2)
    평발

[책]아나키즘, 그게 뭐!!

1. 왜 읽었나?

예전에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할 때 알던 타 학교 선배의 아이디엔 '아나키즘'이 들어가 있었다.

꽤나 냉소적이었던 이선배에게 아나키즘은 '나 신경쓰고 싶지

 

- 이호룡 지음, 서해문집

- 가격은 9500원

- 디자인은 깔끔하고 이런 저런 사진자료들이 많이 보기 좋음.

않은데엔 신경쓰지 않겠다"는 독고다이의 정신과 배째라의 마인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던지라, 개인적으론 아나키즘하면 그 선배가 떠올라 '게으른 인간들을 위한 정치적 알리바이'로 냉소해왔다.

물론 아나키스트 하기락 선생은 매우 좋아한다. 내가 하기락 선생을 알게된 것은 나름 '아나키즘'에 대한 책을 끄적일때다. 이른바 재야쪽 철학서에 간간히 등장했던 하기락 선생이 궁금했다. 이름도 특이하고 그 선생의 책도 도서관에선 찾기 어려웠다.

기억이 맞다면, 하기락 선생은 '하르트만의 자유'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그리고 하르트만의 존재론과 관련된 책을 번역했다.

그리고, 유명한 베른슈타인의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을 번역했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아나키즘 관련 서적도 번역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대구'에 위치한 출판사에서 책들이 나왔다는 것인데,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책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1999년이었나? '티셔츠혁명당'이라는 일단의 집단이 나온적도 있고, 레인보우페스티발때 흑기가 펄럭일때도 있었지만, 아나키즘은, 앞서 이야기한 선배의 영향으로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

 

최근에 도서관을 가서 눈에 띄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볼 일이 없었을 책이다. 뭐, 책의 입장에서건 나의 입장에서건 운이 좋았다고 할까?

 

이 책은 우리나라의 아나키즘 수용사다. 어떻게 아나키즘이라는 정치이념이 수입되었고, 일제시대를 거치고 분단체제를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아니키즘에 대해 보는 시각이 교정되었냐구? 미안하지만 NO.

 

일단 이 책에서 거슬리는 것.

 

- 저자는 아나키즘의 우월성을 견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감없이 보인다. 곳곳에서 '이는 아나키즘의 사상이 타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은 '아나키즘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는 식의 표현이 보이는데,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

- 그러다 보니, 일종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내가 볼때 일제시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아나키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로 흘러간 것 같은데 저자는 공상적 사회주의 대신 아나키즘을 외삽시킨다.

- 나아가, 아나키즘이든 공산주의든 모두 사회주의의 다양한 종류하고 해석하면서도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를 너무 칼로 물베듯 하거나, 혹은 공산주의자의 어떤 주장에 대해 '아나키즘의 사상을 원용'했다는 식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그러다 보니, 한국 아나키즘 역사에서 너무 주류적 입장만을 서술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 테면, 근대에 들어서 해방정국에서 1970년까지 한국 아나키즘은 곧 유림과 동일시된다. 뭐, 자료의 부족도 있겠지만 허허.

 

개인적으로 나는 저자가, 왜 아나키즘이 일제시대에선 공산주의자에 대한 테러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었고 해방후엔 구친일파 세력과 결탁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적 한계'라는 견지에서 해석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맥락속에선 언제나 아나키즘이 옹호되는 입장인지라, 일제시대때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게 테러나 일삼던 아나키스트에게 오히려 반발감만 생겨버렸다. 이게 저자의 진짜 의도는 아닐텐데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서울대 나와서 계명대로 대학원을 갔다가 서울대로 다시왔다. 계명대는 앞서 언급한 하기락선생이 제직했던 학교다. 제대로 아나키즘을 배웠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과잉 감정이입일까? 정치적 판단들에 대한 설명보다는 감정적 동의만을 강요하는 듯한 문체는 끝끝내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의 공산주의 박멸사를 보고 싶다면 함 들쳐봐도 좋겠다. (689)

 

 



 

2. 건더기들

-좌우대립의 흑백논리가 판치는 한, 좌우를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은 나올 수 없으며, 평화적 민족통일도 이룰 수 없다. 민족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 체계를 수립하고 그 속에서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을 찿아야 할 것이다.(10-11)

일견 타당하다. 그럼에도 아나키즘이 그런 통합적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버라고 본다.

 

 

- 아나키즘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0년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신문인 <한성순보>를 통해서였다. 당시 신문은 아나키즘을 포함하여 사회주의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암살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16)

 

- 1910년대까지 한국인들이 수용한 사회주의에는 공산주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주류는 아나키즘이었으며, 1920년대 초까지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대중운동의 성장으로 공산주의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회주의계는 아나키스트계와 공산주의계로 분화했다. (30-31)

 

- 아나키즘과 공산주의의 분화는 결국 조선노동공제회의 분열과 최초의 공산주의 노동단체인 노동연맹회의 창립(1922년 10월)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이 점차 조선노동공제회를 주도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은 이에 반발했다.  집행위원이던 아나키스트 고순흠은 공산주의자 신일용 일파와 연합하여 공산주의자 신백우 일파를 축출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자신 축출될 위기에 몰렸다.  이에 고순흠은 조선노동공제회를 탈퇴했고, 1922년 7월 신백우 일파의 윤덕병과 이수영을 칼로 찌른 뒤 조선노동공제회 간판과 서류를 불태웠다. (37)

 

지하철에서 책을 보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냐, 이 사람은!!

 

 

-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반공산주의적 입장 또한 민족주의자와의 연합을 매개했다.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세력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의 반공산주의적 입장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나아갔다. 그 적대감은 공산주의자와의 투쟁을 최우선시하고 당시 공산주의 세력과 대립하고 있던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게 만들었다.(51)

 

-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문예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김화산은 1927년 3월 <조선문단> 제5권 제3호에 <계급예술론의 새로운 전개>를 발표하여 공산주의 문예론을 비판하고 아나키즘에 입각한 문예론을 제시했다. ...김화산은 1927년 다시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을 발표하여 "문제의 핵심은 사회혁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에 있다"며 문학을 선전수단으로 삼는 공산주의자들의 문예론을 비판했다.(54) 

사회적 리얼리즘을 문예활동의 프로파간다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 실상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선전도구'라고 한다면 예술만을 따지는 사람들은 관념론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뭐, 요즘에도 예술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술이나 문화활동의 자율성을 주장하기 바쁜데, 솔직히 그런 자율성이 자신의 정치적 무지와 무능력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 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실제 태도는 각각 달랐다. 이론적으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했지만,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반대운동은 거의 전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아니키스트들은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반대하면서 반공산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121) 

그런데, 이유가 뭐냔 말이다. 아무래도 아니키즘의 낭만적 수용과 수용대상의 계급적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당시 아나키즘은 있는 집 자체의 취미거리 였나? 에잉... 어쨋든 저자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사상이 문제라고 하는데 글쎄다. 너무 헐렁한 알리바이가 아닐까?

 

 

- 국민문화연구소 관계자들도 아나키즘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516쿠테타 이후 모범적인 자유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계획 아래 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를 설치하고, 이를 연락소로 삼아 수산운동을 전개했다.  ... 수산운동의 목적은 유휴 노동력을 활용하여 잘사는 농촌을 건설하는 것으로, 농촌계몽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아나키스트 사회 건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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