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촛불집회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6/11
    촛불, 그리고 투표와 투표사이(2)
    평발
  2. 2008/06/03
    '안티 이명박' 그 자체다
    평발

촛불, 그리고 투표와 투표사이

 

1. 비폭력이라는 상징재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비폭력이라는 도덕의 철갑이 없었더라면 촛불의 절반 이상은 켜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집회가 일상인 이들에겐, 집회가 비일상인 이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라는 도구는 코르셋보다도 숨을 조일 것이 분명하다. 100명 정도 모인 집회는 전경버스에 가로막혀 숫제 전경을 상대로 집회를 하는 촌극을 낳고 있다. 사업주의 위법은 법적 절차의 유연함으로 하루이틀 지연되는 반면 그 피해자인 노동자의 삶은 기하급수적으로 하강한다.

 

현존하는 모든 사상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털봉숭이 영감님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법이라는 놈이 다가오는 속도에 있어 이건희와 나 사이엔 무궁화호와 KTX 의 차이보다 더 큰 갭이 존재한다.

 

그래서 근자에 촛불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비폭력이라는 상징재가 이명박보다는 노동자들을 얽매는 것은 아닐까라는 '하지 않아도 될' 우려를 하고 있는 즈음이다.

 

 

2. 최장집과 강재섭

 

결국 대안이 문제인데, 오늘 <경향>과 <프레시안>, 그리고 간접적으로 본 <찌라시 3인방>을 보다 깜짝 놀랐다. <경향>은 어제 집회에 참석한 최장집교수를 스케치한 기사를 실었는데 최교수 왈 "이제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제역할을 해야할 때다"고 했다. 뒤이어 강재섭 왈 "촛불 참가자들은 이제 집에 돌아가고 국회가 역할을 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찌라시 3인방> 역시 거리->국회의 등식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요구했다.

 

적어도 최장집교수와 강재섭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유사성의 원인은 뭘까?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한다. 최장집 교수는 그동안 정치경제적 이슈가 정당 분화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진보정당 지지는 균형잡힌 정당 제도를 바라는 일종의 '미적 태도' 이상은 아니다. 강재섭이야 당연히 국회로 이슈를 가져오고 싶을 것이다. 일단 180석에 육박하는 안정적인 의석이 있으니 뭐든 주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리라. 이런 강재섭의 꼼수는 찌라시s와 공명한다.

 

다시 대안을 생각하면, 제도적 해결방법과 비제도적 해결방법만 있는 듯이 보이는데 일종의 제3의 길이 있지 않나 싶다.

 

 

3. 투표와 투표사이

 

선거라는 것이 단 하루의 우발적이고 감성적인 결정으로 4년이나 5년간의 '지배자'를 뽑는 장치에 불과하다면 이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현행 우리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어 한번 내려진 '투표'의 결정을 번복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투표 자체는 매우 중대한 정치적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정치적 행위가 4년이나 5년의 장기적인 지속성을 가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투표와 투표사이의 정치가 중요해진다.

 

나는 진보정당이,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관심을 가져야할 공간은 바로 투표와 투표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문제라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제도와 비제도의 사이에 존재하는 준제도적(그도 그럴 것이 정당은 제도의 산물이지만 의석이 없다면, 제도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방식들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인 방법들은 찾아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국민청원제도, 각 행정사항에 대한 의견 개진 운동, 일상적인 시민발언활동 조직 등등) 그래서 최장집과 강재섭이 수렴하는 이상한 상황도 벗어나면서, '법적 테두리에서 할만큼 하고 시위를 하라는' 도덕적 상징재를 무력시켰으면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티 이명박' 그 자체다

트랙팩님의 [촛불집회를 말하다.] 에 관련된 글.

 

최근 촛불집회에 대해 이런 저런 해석들이 가해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들은 미디어들이 내놓고 있는데, 대부분 '자발성', '수평적 관계망; 네트워크?','다양성'이 언급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해석의 문제중 하나는, 현재 촛불집회의 성격이 '과거의 운동방식'(이라고 명명된) 조직화된 집회의 논리적 대척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과거 과격폭력운동의 상징으로서 '노동단체'의 투쟁은 급격히 평가절하되고 있다.

 

두번째 문제점은 그 다양성에 있다. 애국가가 불려지고 항의의 상징으로 태극기가 나오는 상황은 지금의 국가를 극복함으로서 얻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즉, '합리적이고 존중할 만한 대한민국'의 건설인 것이다. 이로써 '국가를 말하지 않기'라는 암묵적인 운동적권적 합의는 무의미해졌다.

 

나는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는 민중의 우발성을 보여주는 징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적 질서체계의 안정화로 귀결될수도 있는 사건으로 생각한다.

 

1. 우발적인 사건과 과잉된 의미

 

실제로 촛불집회에 참여를 해보면 이 집회를 통해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고시철회'와 '재협상'.

중요한 것은 이런 주장들이 현 이명박 정권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요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상 재협상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미FTA라는 미-한 자본의 요구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쇠고기 재협상 자체가 한미 FTA의 핵심적인 고리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 축산업계-미 정계 커넥션에 의해 외삽된 '추가 요구'의 성격에 더 가깝다.

 

오히려 이런 의미를 오판한 것은 이명박이었다. 그런 점에서 쇠고기 검역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오판에서 불거진 우발적인 사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급진화 요구로도 받아들이수 있는 부분이 있는걸까? 개인적으론 있다고 생각한다. 집회에서 요청되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언급과 '국민주권'에 대한 합의는 이전의 어떤 상황보다도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이런 민주주의의 심화 기획은 오히려 '건전한 대한민국'의 건설이라는 국가주의 틀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한 항의를 배제한다는 측면(최근 '다함께'의 배제는 이런 움직임을 보여준다)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2. 자본주의체제의 합리화

 

만약 이번 촛불집회의 최소공약수가 '체제내의 절차적 합리성' 부분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면, 현재 서 있는 체제 내와 외의 경계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집회 참가자 자체의 정치적 각성이라는 부분은 놀라울 정도다. 이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아니 이 부분만 주목하더라도 이번 촛불집회의 의미는 중대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절차성'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심미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오히려 검역주권으로 칭해지는 '국가의 경계'를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상이한 기획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물론 과도한 비관적 관점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정치'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 솔직히 촛불집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판단하더라도, 국가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치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벡터'의 방향성이 아니라 '벡터' 자체의 등장에 있다. 방향성은 이후의 정치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만, 각각의 시민들에게 '벡터의 성격'이 나타난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믿는다.

 

'촛불집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지금의 한계에 놓여 있다. 만약, 쇠고기의 문제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함께 FTA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안티 이명박'에 갖힌 촛불집회는 체제 내적의 자기 갱신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