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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3
    [옛글]같이 있자, 같이 쉬자
    평발

[옛글]같이 있자, 같이 쉬자

 (2004년 12월 2일 작성)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소담출판사,2004.

 

 

기현상이라면 기현상이랄까, 이번 서평과 관련하여 예전에 보았던 가오리의 책을 빌리러(책 구입에 관한 한 난 여전히 고루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의 도서관에 갔다. 저자명으로 ‘가오리’하고 치니 에쿠니 가오리만이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오리들도 쑥 쏟아진다. 물론 그 중 가장 많은 책이름을 끼고 있는 이름은 단연 에쿠니 가오리다. 일단 떠오르는 대로, <반짝 반짝 빛나는>을 살펴보았다. 동성애자로 나오는 무츠키와 알콜중독자인 아내 쇼코의 이상하지만, 의외로 잔잔한 결혼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4권의 책이 대출중이다. 그렇다면,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호흡을 맞춘바 있는 츠지 히토나리와의 공동 작업물인 <사랑>을 볼까하는 생각에 클릭, 하지만 이 역시 5권의 책이 대출중이다. 순간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책들을 확인해 보았다. 열종 가까이 되는 모든 가오리의 책들이 대출중이였으며,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나 <울 준비는 되어 있다>같은 책들은 대출 예약조차 초과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붐boom'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 초입이고, 지난주에는 서울에 첫눈이 잠깐 비추기도 하였다. 게다가 연말의 핵심인 12월이 아니던가. 느닷없이 확인한 가오리 붐을 확인하면서 퍼뜩 드는 말은 계절이었다. 그건, 내가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읽게 된 동기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한참 접어들 무렵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가는 중에 눈앞에 펼쳐진 책 광고가 눈에 띄었고 당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야?”라고 물었었다.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왠지 그 친구가 하는 대답에 따라 기분이 매우 좋아질 것 같았다.

대답은 “몰라, 왜 그래?”였다. 그냥이라는 답을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을 때 ‘저 책을 꼭 사서 보리라’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가오리의 책들 중에서 가장 ‘무난한’ 편이다. 이 무난하다는 평가는 어느 정도는 ‘가오리의 책들 중에서’ 라는 단서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나처럼 경직된 사람에게, 자신을 떠난 남자의 현재 애인과 함께 사는 이야기의 <낙하하는 저녁>이나 앞서 언급한 ‘섹스리스sexless' 부부 이야기의 <반짝 반짝 빛나는>, 실연에 대한 숨 막히는 고백이 흘러넘치는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읽기에 너무 힘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결혼이야기이다. 그것도 매우 현실적인.

 

화자인 나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남편의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그의 남편에 대한 구속은 절대 절명의 서약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여자에게 절대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기 정도다.

 

 

그러나 가령,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게 되었을 때, 초콜릿을 피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32쪽)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유언이던 무언이던 어떤 약속이 없이 시작되는 관계란 없다. 어떤 존재에 대한 강한 이끌림은 가장 낮은 문턱을 제공함으로써 어서 내게로 오라고 손짓한다. 소설속의 내가 선택한 그 문턱은 초콜릿 선물에 대한 독점이다. 이로써 이 부부가 지니고 있는 하나의 현실적인 전제가 확인된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어쩌면 필수적인, 다툼을 없애지는 않는다.

 

 

남편하고도 그렇다. 남편은 어질러 놓기만 하고 치울 줄을 모르는 데다 만사에 무심하고 감정을 경시(한다고 생각한다)하는 경향이 있고, 나는 참을성이 없고 감정적이고 양보를 모른다(고 남편이 그런다). 그래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싸움거리가 끊이지 않는다.(40쪽)

 

 

감정을 경시하는 남편과 사는 감정이 풍부한 나는 남편이란 존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연애교과서로 베스트셀러에 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구체적인 사례집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감상.

 

 

이 사람은 왜 서랍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 것일까-내 멋대로 닫으면 실례가 될까,하고 생각한 것은 백만 년이나 먼 옛날 일이다. 이 사람은 왜 겨우 손만 씻으면서 온 화장실은 물바다로 만드는 것일까. 게다가 왜 젖은 손을 타월에 닦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자기 옷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사람은 대체 왜... .(55쪽)

 

 

그런데, 이런 문제는 절대 사소하지 않다. 실제로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행위는 서로를 껴안고 입맞추는 것보다 더욱 잦다. 그래서 서랍을 제대로 닫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많이 반복되는 행위이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이 아니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커다란 대의에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계기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대의가 사소한 계기들보다 작아 진다기 보다는 잊혀진다. 후회란 나중에 찾아오는 큰 이야기들 때문에 생겨난다.

 

 

그래서 일단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버려두는 것이 인정은 아니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 의해 우리에게 전파된 ‘관용’이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소극적으로나마 용납하는 행위일 때가 훨씬 많다. 해서 결혼이라는 미궁 속에 빠져든 나는 ‘화해’를 택할 수밖에 없다. ‘공존’의 약속을 버리지 않으면서.

 

 

화해란 요컨데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124쪽)

 

 

바로 이 부분이 불편한 소설들을 마구 써내는 에쿠니 가오리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쓰여 졌다는 이 소설은, 그래서 좀더 자세히 읽게 된다. 건국 이해의 최대 분열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의 수는 줄지 않는다. 도대체들 뭘 믿고. 지금의 상황이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상황’이 되기나 하냔 말이다.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남편이 내게 어리광을 피우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올바르지 않아도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게, 남편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117쪽)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이미 시쳇말이 된지 오래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찾아 해맨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가장 비슷한 종이기 때문이다.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또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 두 발로 서있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다. 네 발이 되면 그나마 나아질 지도 모른다. 걷는데 버벅 될지는 몰라도 쉴 때에는 그만 일테니 말이다.

 

‘당신의 저녁은 몇 개입니까’라는 질문은 단지 ‘몇 개’라는 답으로 내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포함된 저녁이 몇 개인지 말해 주어야 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포함된다면 저녁은 한 개이든 두 개이든 상관없지 않은가.(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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