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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평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맞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늙으면 이래저래 괄시만 받을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늙었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의 이번 영화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상찬이 쏟아 졌다. 뭐, 굳이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소개도 보지 않고 덜컥 봐버렸다면, 오로지 코엔 형제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 저런 영화평들을 찾아보았다. 영화에 대한 주변지식은 영화를 보기전보다는 본 후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는 선입견 없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노쇠한 보안관이 지나치게 무력하게 나와 심란했고, 너무나 노련하고 완벽한 범죄자의 모습에 또 놀랐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모스'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사막에서 사냥을 하다가 돈 가방을 줒는다. 하지만, 그 가방엔 얽히고 설킨 주인'들'이 존재했던 것. 그 중 맹렬하게 모스를 쫒는 것은 안톤 시거. 바로 포스터 윗 부분의 눈깔 주인공 되겠다.

 

 그 와중에 연속된 살인을 추적하는 보안관이 있다. 토미 리 존스가 열연한 벨 아저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스는 죽어라 도망가지만 시거가 한 수, 아니 몇 수 위였고, 그를 뒤쫒는 벨은 모스도 시거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모스는 죽고, 벨은 코앞에서 시거를 놓치고 만다. 이게 끝이다.

 

 



많은 영화평에서도 지적했던 것이 보안관 벨의 무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그도 그럴것이 시거가 공기 압축통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는데, 벨은 이렇게 묻는다, "총구는 있는데 총알이 없을 수도 있나?"

 

아 참, CSI 였으면 담방 알아봤을 텐데. 시대 배경으로 보건데 1980년대 초반 정도가 아닐까 한다. 분명 영화 중간에 년도에 대한 단서가 나왔고, 내가 순간적으로 계산한 결과로는 1980년대 초반이 맞는데 .... 근거를 대라면 모르겠다. 영화를 다시 보지 않고선.

 

많은 평론가들이 벨 보안관의 쓸쓸함에 눈이 갔다면, 난 모스에게 눈이 더 많이 갔다. 왜냐하면, 무능력한 퇴역 해병이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에 짠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돈은 마약 판매에 연관된 것이었기 때문에 누가 가져도 될 돈이었다. 그리고 초반엔 모스 아저씨가 너무나 잘 헤쳐나오신단 말이다.

 

그래서 속았다. 모스가 살아남을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죽어버렸다. 풀장에 누워있는 여자와 노닥거리다, 화면이 바뀌고, 다시 돌아오니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스 아저씨. 에구구.

 

원작이 소설이고 <국경> 3부작의 하나라는데, 아무래도 멕시코 국경 지대가 배경인 듯하다.

 

그리고 3대에 걸쳐 보안관을 하는 벨 보안관이 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범죄자 시거도 있다. 벨과 시거는 한 한차례도 만나지 못한다. 물리적인 접촉뿐만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 만큼 시거에겐 벨이 안중에 없고, 벨에겐 시거가 '인식불가능한 대상'이다.

 

오로지 시거와 모스가 있을 뿐인데, 결국 절대 악인 시거가 승리한다. 왠지 인생살이 같다. 나쁜 운이 이기는 것과 닮았다는...

 

음...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말들이 있었는데, 쓰자니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하면 덧붙여야 겠다.(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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