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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7
    사도 바울
    평발

사도 바울

김용규의 [데칼로그] 중에서,

 

'이방인들의 사도'로 불리는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리스의 실리시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나 사울이라는 히브리어 이름과 로마 시민 자격을 얻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파의 가믈리엘 선생에게 랍비교육을 받았는데(사도행전 22:3),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랍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였는데,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의 빛에 사로잡혔다(A.D. 34-35). 바울은 이 사건에 대해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빌립보서 3:12)라고 간단하게 쓰고 있는데, 누가는 이 사건에 의한 바울의 회심과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소명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사도행전 9:1, 22:5, 26:10).

회심한 바울은 그때부터 전도여행에 나섰다. 1차 전도여행은 A. D. 46~48년에 후일 '바르나바서'를 쓴 사도교부 레위인 바르나바와 함께 떠났는데, 그 후부터 누가는 그를 희브리어 이름 사울 대신 로마 이름인 바울로 부른다. 2차 전도 여행(A.D. 49-52)과 뱃길로 나선 3차 전도여행(A.D. 53~58)을 통해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카, 아테네, 고린토, 에버소 등지로 갔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곳을 떠난 다음에도 편지를 써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질문에 답했으며, 때로는 책망과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또한 바울이 방문하기를 열망했던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살렘 성전에서 체도된 바울은 카에사리아에서 2년간 수감되어 있다가 로마로 이송되었다. 그것에서 2년간 감시 아래 살다가, 베드로가 순교한 후 얼마 안되어 순교했다.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티아 거리에서 목이 베어졌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교육을 함께 받은 기독교인었던 바울의 가르침은 이후 교부신학의기초가 되었는데, 그의 신학은 그의 편지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동시에 열려있다는 점과 신이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었고, 예수를 통해 복음과 성령을 주었다는 점, 구원은 신의 선물로서 인간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후일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개혁자들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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