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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4
    요즘의 고민들
    평발
  2. 2008/12/08
    주식투자를 하는 좌파?(7)
    평발
  3. 2008/11/11
    유고 알아? 모르면 말도 하지마!
    평발
  4. 2008/04/21
    좌파몰락, 같은 길-다른 길
    평발

요즘의 고민들

 1. 민주주의라는 문제

 

지난 정부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면, 그들은 웃었다. 민주화 20년, 그렇게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완성되었다고 떠들어대던 그 입으로 지금은,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말한다.

 

[쟁점] 그 때의 민주주의와 지금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차이가 날까.

           민주주의 속성 자체가 투쟁의 영역 그 자체에 있는 것일까(최근 번역된 책의 랑시에르 주장이 그렇다)

 

2. 정치/운동의 반동성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중립성 VS 정치적 옳바름의 문제. 어떻게 이들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정당운동은 정당체제를 변화시키면서 진화할 수 있을까. 정치체제와 정당체제의 외부와 내부가 어떻게 구별될까.

 

비판적 지지는 왜 지속되는가. 약한 헤게모니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3. 진보?

 

진보에 대해 진보를 언급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내놓는 대안은 상대방의 실현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나 나의 가치적실성을 주목해야 하나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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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를 하는 좌파?

이른바 경제위기다. 사실상 맑스주의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일상적인 국면 조차도 위기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모순에 의해 작동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착취를 통한 불평등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해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이른바'가 붙는다.

재미있는 것은, 몇 해전부터 인기였던 펀드니 주식이니 하는 돈벌이가 소위 자파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야 그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주변엔 처지도 안되면서 꽤나 무리를 한 사람도 있다.

나는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믿는 사람이고, 해서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노동을 통해 생산되지도 않는 가치에 대해 돈이 오간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주식과 펀드는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그런 사기에 발 붙이고 있는 좌파들은? 꽤나 유능한 경제 전문기자인 이정환은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좌파라면 주식투자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주식시장을 통한 부의 이전 또는 약탈에 저항해야 하고 불로소득의 유혹에 넘어가기보다는 노동자로서 당당히 노동의 가치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자본의 연대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폭넓은 연대를 모색해야 하고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정환의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실제로 얼마전 기륭전자 투쟁을 위해 방미투쟁단을 보내겠다고 했던 진보신당에는 노조원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스로 기륭전자의 주주라고 밝히면서, 진보신당의 투쟁이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의 이익과 반하고 있다는 항의였다. 처음엔 웃었지만, 나중엔 분노했다.

생각해보라. 주식이라는 것은 미실현된 가치에 대해 미리 값을 매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100만큼 성장할 것인데, 현재 80 정도니 향후 20만큼 추가적인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집값도 마찬가지 아닌가? 현재 1억 정도여도 장래에 1억 5천까지 뛸 수 있다고 믿음으로서 그 집을 1억 2천에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이런 기대를 '신용'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바로 이런 '신용'에 문제가 생겼기때문이며,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될 것이다'라는 체제의 자기기대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소위 좌파가 자본주의 체제의 자기 기대에 부응하는 주식과 펀드를 한다니... 몸따로 마음따로라는 말인가? 오히려 말로는 급진적이면서도 사실 집에 돌아가면, 주식현황판에 코박고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런 치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땅가지고, 주식가지고 돈을 벌지 못하는 바보들은 여전히 바보로 남고 영약하게 자본주의의 기대치를 실현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칭찬을 받는 상황이 운동판에도 만개해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를 좀더 확대시키면, 우리가 생각없이 하는 행동들이 자본주의의 자기 기대를 실현시켜 주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식과 펀드도 그렇지만, 솔직히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해 '경제위기'라고 칭해주는것 자체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기는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인데, 스스로 위기 담론에 빠져들면 그들의 나쁜 패를 받아들이게 되는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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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알아? 모르면 말도 하지마!

marishin님의 [유고슬라비아 해체하기] 에 관련된 글.

개그 콘서트 <달인>코너에서 김병만은 말한다. '뭐뭐뭐 봤어요(알아요)?, 못봤으면 말도 하지 말아요'

맞다. 모르고 말하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나에겐 아직 그런 것들이 코소보 전쟁과 911 테러다.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번역자인(사실 본업은 기자인데, 기사보다는 번역자로 기억하고 있다..^^) 마리신님의 글을 보다가 떠올랐다.

나에게 코소보 전쟁(혹은 그 언저리 이야기는)은 타리크 알리 등의 '전쟁이 끝난 후'와 함께 '자칼의 날들'을 지은 프레드릭 포사이즈의 '어벤져'를 통해 떠올린 이미지가 다다. (포사이즈의 책에 대한 요약 및 평은 이곳을 보시라. 포사이즈의 시각은 영미 중산층이상 백인들의 세계관과 이를 통해 공명되고 확대재생산된 부시행정부의 세계관을 똑같이 반복한다)

솔직히, 너무 어렵다. 밀로세비치=나쁜 놈 이라는 등식만으로 편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은 리얼한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만, 마리신님의 글에서 보듯 본 사건이 유럽내 진짜 좌파와 얼치기 좌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맞다. 적어도 내가 신뢰하는 매체와 좌파 이론가들이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본질을 꾀뚷어 보았으니까.

요즘 기분이 우울해서 1917년에 레닌이 쓴 글들을 보는데, 역시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은 그동안 뚜렷하지 않았던 결들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세계대전이 그랬고 코소보 전쟁이 그렇고, 가깝게는 이라크 전쟁(지적 설계론을 그렇게 욕하던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911과 이라크 전쟁을 두고 촘스키와 대박 싸우기도 했다)이 자칭 좌파의 실제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그거 있지 않나? 크로마토그라피라고... 종이에 사인펜으로 검은 점 하나를 찍고 물에 집적 담그지 말고, 천천히 흡수되게 하면 색깔들이 싸악~~ 분리되면서 검정색의 정체가 드러나는..^^ (맞나?)

우리에겐 어떤 사건이 소위 좌파들을 '여러' 좌파들로 분리시켜 줄까? 언뜻 생각나는 대로 보자면,

- 민민연
- 북핵
- 오바마?
- FTA

음.... 이 정도로 함 그려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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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몰락, 같은 길-다른 길

장석원,  <이탈리아좌파는 왜 의회서 사라졌나>, 레디앙

 

 

이탈리아의 총선이 지난 13~14일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에 결과에 대해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에다, 그저 언론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역대 최장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였다. 그러다, <레디앙>의 기사를 복잡한 이탈리아 좌파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1. 공산주의재건당의 몰락

 

내가 공산주의재건당의 이름을 처음알게 된 것은, 윤소영 교수의 '일반마르크수주의' 관련 책에서 였다. 그리고 사회실천연구소에서 낸 '실천'에서도 낯선 이탈리아 명사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관심 밖으로 쓱~~

 

(그러다 다시 그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사회진보연대 회원인 최원씨가 윤소영 교수의 최근작인 '일반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라는 책에 대한 논평을 보면서다. 평의회운동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줒어들었던 터였지만, 최원씨와 윤소영교수의 접점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관계로 '그대도 여전히 나는 윤소영 교수를 존경한다'는 생뚱맞은 제목의 글은 금방 눈이 갔다. )

 

이탈리아는 좌파의 세력이 일반화되어 있는 몇 안되는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몰락이라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2. 생존이 아닌 권력을

 

기고자는 공산주의재건당의 우파적 전략이 민주당의 좌파를 끌어당기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또한 공산주의재건당을 포함한 3개 정당이 연합하여 만든 선거용 프로젝트 정당 '무지개좌파당' 역시 정강 정책의 통일성을 갖추기 힘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놈의 공산주의재건당은 하원의장이 당대표를 맡고 있고, 무지개좌파당은 46명의 상원의원, 93명의 하원의원, 13명의 유럽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원내정당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미국의 민주당을 벤치마킹한 민주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세력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물론, 이들보다 왼쪽에 있는 이들도 많다. 어쨌든, 내가 볼 때 이들이 파병연장안 찬성까지 하면서 오른쪽으로 향한 것은 좌파의 생존전략이라기 보다는 권력장악을 위한 정체성 지우기의 혐의가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3. 선거제도의 영향과 비판적 지지

 

이 기사를 통해 이탈리아의 독특한 선거제도를 알았다. 지난 2005년에 개정된 것이라 하는데, 정치적 안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제1당이 340석에 미달할 경우 이를 채워주어 전체 54%의 의석을 보장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연립정부의 각종 추문에 의해 코너에 몰려 있던 비우파세력들은, 좌파가 아니라 비우파에게 몰린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다. 마음에 안들더라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결국 하나의 제도가 유권자들의 전략적 행동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표심리'와 같은 것이라고 할까.

 

4. 경제 이슈와 대안 부재

 

이번 이탈리아 선거와 우리 선거가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낮은 수준의 투표율이 80%가 넘는다니, 40%대를 달리고 있는 우리와 비교하면, 대의제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는 상당한 수준인가 보다.

 

어쨌든 그렇게 부패도 많았던 베를루스코니가 경제살리기라는 이슈만으로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점 역시 닮아 있다.

 

문제는 좌파세력의 대안이 없었냐는 거다. 있었다. 그들이 버린 정책들이 바로 그들의 대안이었다. 파병연장반대 등은 좌파의 대안이었음에도 이를 전술적으로 버림으로서 전략적으로 패배하게 된 것이다. 대안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5. 그럼, 진보신당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진보신당 때문이다.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이탈리아 상황을 보고 진보신당의 앞날이 걱정되는 건 순전히 노파심이다.

 

우선 맹목적인 연합체 구성이 걱정이다. 무지개는 다양한 색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이를 대강 합쳐놓으면 검정색이 될 뿐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노힘과 임종인까지 아우르는 대연합이라는 아이디어가 오히려 진보신당의 색깔을 무채색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한다.

 

다음으로 청산주의가 걱정이다. 민주노동당 운동은 그 자체로 역사다. 따라서 이에 대한 명증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에 대한 무조건적인 청산주의가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민주노동당의 방식은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는데, 이를 단순하게 사후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대의 배경속에서 다른 방식이 있었나를 따지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라 본다.

 

정치적 가벼움이 걱정이다. 요즘 당내 분위기 좋다는 이야길 심심찮게 듣는데, 그래서 더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에드벌룰의 풍선이 한 마을을 덮을 정도로 크다해도 그 가벼움으로 인해 날라가 버린다. 가벼운 것이 아무리 쌓여도 진중한 문제의식으로 제련되지 않으면, 소비될 것 같아 걱정이다. 어쨋든 당내 리더쉽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몇몇 그룹에서 제출되고 있는 사회운동적 정당 등은 이미 2004년, 2005년부터 많은 전사를 가지고 있는 논란들이다. 문제는 '어떤 제도정당이며, 그곳으로 어떻게 장악해 들어갈 것인가'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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