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천해안, 펜션에서 나와서 근처 커피숍이다.
싸고 맛도 괜찮고, 편한 공간에서 여행 마지막 순간을 누리는 중.
재환은 <학교 없는 사회> 완독을 목표로,
나는 여행을 '기억'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들어왔다.
4박 5일이었다. 아... 벌써 5일, 마지막 날이라니.
일상의 공간, 일들로부터 유예된 지금들,
마음은 붕 떠 있는데 몸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거 같기도 하고
마음은 차분한데 몸은 붕 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특별하진 않은 데 특별해서 좀 묘한 기분이랄까...
12월 말부터 1월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한 달 여간 이렇게 압축적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
재환과의 관계에서 다르지는 않지만 새로운,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들, 사람들, 마음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새로울 게 없음에도 나한테는 꽤 새로웠다. 그 무게, 결들이...
마음의 속도보다 상황, 관계들의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상황이나 관계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채울 수 없던 마음의 틈틈에,
'우리'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과 마음 사이에 공간들이
채워지거나 연결되는 느낌 때문인 거 같다.
결혼, 결혼식을 준비하던 빠른 흐름들 속에서도
차분하게 서로를, 주변을 마주보고 있을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준,
든든함과 평화로움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꼭꼭 담아두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들은 금새 까마득해지나 보다.
재환의 가족, 친지들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의 순간들도 그렇고,
결혼식을 준비하던 과정들도, 왜 이렇게 아득한지....
과정 과정에서, 순간 순간 느꼈던 '기억'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나'와 '우리'를 아끼는 사람들의 새삼스러움을 '여기' '이렇게' '애틋하게' 로 느꼈던 순간들,
'나'를 기억하는,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들의 다양한 마음의 결과 무게들,
'나'와 '우리'를 믿어주기로 결심한, 그리고 지지해 주는 어른들에 대한 고마움과 든든함들,
그런데 결혼, 결혼식을 통한 변화는 아직 모르겠다.
한 달 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재환과 같이 살림을, 일상을 꾸리게 된다는 거
좋은 어른들을 알게 되고, 그 분들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는 거
그 정도랄까.
살림을 함께 하는 건 막상 살아봐야 아는 거니까 지금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한 거 같고
좋은 어른들을 가까이 두게 되었다는 건, '앞으로'가 중요한 거니 조금 더 긴장이 필요할 거 같고
결국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앞으로를 좀 더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변화라면 변화랄까.
일상을 함께 한다는 거, 가족이라는 무게를 더 품게 된다는 건
말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 삶으로 보여지고, 통해지는 거라는 건 좀 알 거 같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저희는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아무리 멋지고 근사한 말로 표현해도 그건 말일 뿐이고,
정말 우리가 보여줄 수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건
대단하지 않고, 별거 아닌 하루 하루 사소한 일상들을 통해서 일테니까.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인정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물리거나 지치지 않기 위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도
말 보다는 행동이 중요할 거 같다.
당연한 거지만, 무게감은 아주 다르다. 점점 더 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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