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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운동을 찾아야 하는가, 운동에서 삶을 누려야 하는가

 

늦은 밤 이 공간에 있노라면 '삶'이 그리워진다

삶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지 알아가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나만을 위한 것도, 남들 혹은 사회를 위한 것만도 아닐지니

그것은 밤 하늘 구름 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있어도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것일 게다

 

요즘 들어 특히 쾌락이 아닌 삶의 즐거움을 알고 싶어 하는 뒤 늦은 고민은

삶의 고민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역설에 다름 아니다

 

아직도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위하여 살아가는가

여전히 나를 끊임없이 멀리하고 있는가

 

당연히 아니려고 하지만, 아니고자 하는 그 한 발을 내 딛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별 것 아닌 한 족장 차이가 '삶'이 아니라 '삶'의 지향을 바꿀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삶을 삶 자체로 추구하지 못하면, 삶에서 운동을 보상받고자 할터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오지 않았을까

 

운동을 보상받는 잔인함은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처절하다

내 스스로 그 굴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면

내 인생의 절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나지 못하고 잘 날 수 없음에 자책할지라도

잘 남을 보상 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이것을 잃지 않고 다시 한번 나의 삶을 찾아가고 싶다

망상일까 사치일까 그도 아니면 우문일까?

 

그러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나의 현답은

걸어 온 것 만큼 바라보고, 걸어온 만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운동을 포기 하지 않는 삶의 즐거음을 누릴 수 있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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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정신14호]독재의 망령이 신자유주의로 되살아 날 때! 당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윤보다인간을-현장정신에 쓴글]

 

독재의 망령이 신자유주의로 되살아 날 때!

당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87년의 추억을 간직한 선배들께 드리는 글



1.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87년의 추억이 아니라 ‘역사’

87년 사진 속․영상 속에서 보았던 낯익은 얼굴을 찾는 광고가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기성 정치인들이 아닌 87년의 함성, 87년의 거리, 바로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미디어에서 찾고 있다. 이 추억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혼란 속에서 87년 20주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 때문일까! 여러 인터뷰나 글에서 사람들은 20년 전 그날의 격정과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오늘의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세상을 이만큼이나 바꿨다는 그들의 감동이, 자꾸 멀게만 느껴지는 건 내가 87년 그 거리에 있지 않아서일까!


일반적으로 달은 밤에, 해는 낮에 볼 수 있다. 그래서 해가 져야 달이 뜬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둘이 서로 다른 운동주기를 가지고 있고 햇빛에 가려 낮에 달을 잘 볼 수 없을 뿐이다. 해와 달이 그렇듯이 독재의 시대는 가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는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은 온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87년 세대에게 고함!

87년 투쟁의 직선제 쟁취와 노동자 대투쟁을 통한 노동운동의 비약적인 질적․양적 성장은 이후 우리 사회가 한 발 전진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87년 이후의 역사도 그리 순탄하게만 달려 온 것도 아니다. 91년 열사투쟁, 97-98년 총파업투쟁과 IMF, 2003년 열사투쟁 그리고 현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치열한 생존의 역사이자, 투쟁의 역사다.


하지만 숨 가쁘게 달려 온 열정의 20년 뒤에는 87년 투쟁을 추억으로 바라보는 세력이 존재해 왔다. 그들은 ‘추억/을 밑천으로 정당으로 국회로 달려갔다. 그리고 점점 그들은 오만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했다. 혹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도 정치 안에서도 한국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역할이 그 곳에 있다고 말했던가! 이제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자신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민주화운동과 진보는 시효가 만료되었다고, 노동자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양보할 줄 모른다고, 온갖 파렴치한 언사를 쏟아 붇고 있다.


87년의 사람들 또한 이제 자신이 할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지 새로운 독재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말을 한다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해가 뜨기 전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없고, 태양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도 밤에는 볼 수 없듯이 세상이 돌아가는 하나의 ‘과학적 법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바로 ‘계급에 의한 계급에 대한 착취’다.


 그리고 착취의 모습은 87년의 선도적이고 양심적인 열정적인 시민들이 민주화에 만족할 때, 당신들이 군부독재를 몰아냈다고 환호하며 자신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서 안주하고 있을 때,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로 태어났다. 신자유주의 독재는 더 세련되고 더 교활하고, 더 악랄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민주주의를 배고픔과 착취를 분쇄하는 원칙으로 사고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세대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87년 이후의 민주화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 이외에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오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파탄 내는 비정규직법안이나 FTA 문제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전쟁기지 확장을 위해 주민을 내 모는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재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노동자 민중이 신자유주의의 반 민주성에 대해서 사고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독재가 지배하고 있는 87년 민주화체제다.


3. 당신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슬픈 자화상이다. 87년을 거리에서 보냈고, 청춘을 바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선배 그리고 동지들의 행진곡은 더 이상 메아리치지 못하고 슬픈 노래로 마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민주화 이후의 비 착취 대안사회를 구상하지 못했고, 민주화체제 이후의 착취체제로서의 자유주의를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 체제 이후에도 착취체제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민주화체제 이전․이후에도 커다란 틀에서 자유주의 체제가 지배해왔고, 87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독재가 민주화의 간판을 달고 착취를 정당화 하고 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쓰다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 여전히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사회,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아직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사회, 농어민 자녀가 서울대에 들어가는 비율이 3%인 사회, 신분이 대 물림되는 사회가 87년 민주화체제 이후 (신)자유주의 착취체제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렇다면 87년 세대와 87년 세대의 후광을 입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에 만족하고 있는가? 무엇을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는가? 왜 우리는 다시 분노할 수 없는가? 87년 세대여! 당신들은 너무 늙어 버렸는가? 87년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방송에 출현하며, 신문에 칼럼을 쓰며 87년을 회고할 정도로 오늘의 현실에 만족하는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아직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면 다시 사회변혁운동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방송국도 아니고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도 아니다. 어느 정당, 386 정치인의 후원행사 자리는 더욱 아니리라!


87년 20주년 그 첫 포문을 열었던 6월 항쟁이 다가온다. 당신이 진정한 87년 세대라면 더 이상 만족하지 마라! 다시 분노해야 하며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어도, 87년을 거리에서 보낸 당신들의 심장에 새긴 “분노와 희망”이라는 시계는 예전 그대로 이지 않은가? 87년 당신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한 한국사회가, 민중들의 피와 땀을 가로 첸 어제의 386세대 오늘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을 인정할 텐가?


이제 87년과 같지만 다르게, 다시 당신이 나서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비정규직 문제에서, 계급투쟁에서 그리고 여성문제에서, 환경과 생태, 인종주의 문제에서, 반전평화운동에서 전 사회적인 변혁운동을 신자유주의 독재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항쟁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군사독재에 맞서서 새로운 신자유주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또 다른 양식의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적을 타도하는 투쟁에서 착취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투쟁에서, 성찰하는 투쟁, 비착취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주체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난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꿈꾸는 자에게는 추억이면 족하다. 그러나 미래를 원한다면 행동하자!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싸파티스타의 구호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로 대신할 수 있으리라. 아직 아무것도 달라 진 것 없는 이 시대에 바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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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이 허광평에게]보내는 글을 읽으며

[노신이 허광평에게 ]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개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자선생도 통곡하고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자고 괜찮을 만한 길을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물을 달라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 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 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혁대로 몸을 꽁꽁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 입 물어 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선생도 대성통곡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궁지에서는 다른 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이 없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아직 그런 지경에 데이지 않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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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이 제자이자 부인이었던 허광평에게 썼다는 글이다.

선택과 궁지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치는 문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개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 진실이 혼란 스럽고 과학이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착취와 계급투쟁이라는 역사과학이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민해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를 "치명적 실수, 비과학적 오류"라는 문제는 제외하고 글이 전하는 감동을 느끼고자 한다면 새로운 시대를 '우리' 스스로 건설해 가는 주체의 정치, 구성의 정치를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고 그 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길에 놓는 발걸음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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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향기 퍼지는 오월

아카시아 향기 퍼지는 오월

:오랫만에 조문익 동지를 생각하며




아카시아 향기 퍼져나가는 오월입니다.

조문익 동지 생일도 있었네요.

이제 곧 518인데, 살아 생전에는 정신없이 뛰어 다녔을 5월을 이제 무얼 하고 계신가요?


얼마 전에는 참세상 동지로부터 예전에 찍은(찍히신)사진 한장을 받았습니다.


한 겨울 파병반대 투쟁으로 기억되는 곳에서 서 있던 동지의 모습이 새삼 새롭습니다.


이제 낯 설지도 않고, 가슴이 찡하지도 않네요.

그냥 빙그레 웃음이 나오네요.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은 아직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는 걸까! 세월이 흐르는 걸까!

둘 중 하나겠죠. 자연스러운 망각이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좋은 본능을 체득하는 것일 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이라는 삭막한 도시에서도 아카시아 향기가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집근처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제가 서울에서 살던 곳 근처 혹은 집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목에는 곧 잘 아카시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행운이라면 행운이겠죠. 어린 시절 고향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아카시아 향기는 저에겐 작은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뭔가 특별함이나 추억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1년여의 반을 지내오면서 서서히 지쳐갈 때 진한 아카시아 향기는 잠시 생각을 잊게 하거든요.


막 봄이 무르익을 무렵 퍼지는 진한 라일락 향기도 좋지만 이제 세상이 푸른 빛으로 뒤덮히기 시작할 무렵 더위가 올 것을 직감할 무렵 느끼는 아카시아 향기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가 있어요.


5월의 피 맺힌 역사, 수많은 열사, 그리고 수많은 투쟁이 있지만 지치지 않았던 우리 들의 삶의 에너지는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들, 우리가 흘려버렸던 세상이 주었던 것은 아닐까 해요.


이제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빠르게 아카시아 향기는 메말라가겠죠. 그러나 그윽하게 뿜어냈던 아카시아 향기는 대지에 사람들 가슴속에 스며들어 또 다시 1년을 버티고 다시 돌아 올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노동하는 인민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가 그렇고, 그것을 만들고자 했던 선배님들의 역사가 우리에게 돌아도듯이 말입니다.


비록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순간 또 다시 소박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에 도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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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이제 곧 518이다. 올해가 몇 주년(?)인지 가물거린다. 고대 제국의 연호처럼 ‘광주민중항쟁 OO년’을 문서, 플랜카드에 써 넣던 시절이 있었다. 518은 역사와 상징 이전에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였다.


그런데 이제 몇 주년인지조차 가물거린다. 사실 80년에 일어난 사건이니 계산하기 쉬워 잊지는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정신이 무엇인지가 가물거리는 것일 터인데 518의 정신을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 내 비록 아직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릴 연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운동의 년차가 오래될수록 이런 원론적인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멀어지고 어려워진다. ‘정신’의 내용보다는 정신을 삶 속에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어려움의 본질이다.


비록 원작을 읽지 못했고, 보는 사람마다 관점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영화 ‘오래된 정원’은 지독하게 우울하다. 광주 민중항쟁 이후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가는 더 이상 투사도, 전사도 아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은 더더군다나 없다.

원작자 황석영, 혹은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가 무엇이건 간에-그것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내가 느낀 점은, ‘우리는 왜 오늘을 살고 있는가?’ ‘어제의 정의는 유효한가?’와 같은 질문이다. 사실 영화는 그 답을 주지 못한다. 투사의 감금된 시간, 그리고 변한 세상과 애틋한 사랑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많은 암시와 풍자(?)는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의도이든 아니든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갇혀 있던 감옥에서 억눌려 있던 것은 육체일 뿐, 정신도․사회모순의 근본적인 원인도 아니다. 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망월동에 묻혀 진 것은 투쟁하는 민중들의 육신일 뿐, 역사도 진실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어떤가! 역사를 기념한다는 망월동 묘역은 그 위상에 걸맞게 단장되고, 꾸며지고 있지만 기념관으로 바뀌면서 역사마저 묻어버리고 있다. 이제 다시 맞이하는 518에, 떠나간 자들을 욕하기보다 ‘내’가 끌고 나갈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518의 이름 없는 전사들과 이름이 남겨진 전사들이 함께 살고자 했던 삶이다. 그런 삶을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지 못하기에 우리는 더 혼란스러울 뿐이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것이 총을 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총을 들고 지키고․바꾸고․만들려고 했던 세상을 우리 일상과 삶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다시 역사적 시간이 도래했을 때 광주의 민초들처럼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518을 맞이하는 우리가 혼란함과 우울함을 해결하는 길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는 나병환자 촌에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 놓은 강을 발견한다. 그 강은 나병을 치료하는 사람․ 병증이 약한 사람과 병증이 심한 사람들 사이의 분리의 강이자 계급이며, 연대를 가로 막는 강이었다. 그 강을 건넌 게바라는  진정한 ‘체 게바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그 강물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직도 그 강을 건너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의 깊이와 너비에 절망하며 목적지에서 멀어지고 있다.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강물에 밀려나고 있다. 강물을 거스르지 못하고 말이다. 체게바라가 그 강물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강 건너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 그리고 역사를 일치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된 정원에서 내가 느낀 우울함은 변하지 않은 오늘의 현실이 오래된 정원이 아닌 오래된 무덤으로 바뀌고 있는 역사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가지 못하고 역사에 밀려가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현실의 강물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나와 우리는’ 강건너 새로운 세상을 실천하는 일부이어야 한다.


도래해야 하는 삶을 미리 살아가는 것이 아마 현실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 갔던 518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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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잡기

꿈은 집착해서도, 쉽게 포기해서도 안된다.

 

뜬 구름 위에서가 아니라,

발 딛고 사는 땅위에서 현실의 무지개를 잡는 날까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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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대추 여무는 날을 다시 기다리며

 

붉은 대추 여무는 날을 다시 기다리며



-하이하바-


누가 질세라 아지랑이와 봄꽃이 피어오를 때

대추나무도 기지개를 펴겠지!


세상 어느 곳보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그 곳에서

긴 세월 붉은 석양을 바라보던 사람들

그 사람은 하나 둘 가고, 대추나무는 조용히 봄비만 흘린다


다른 새싹, 다른 잎새는 다시 봄을 노래하는데

황새울의 슬픈 대추나무는 고요하네

대추나무 꽃피기를 기다리며 1년, 2년 3년을 버텨온 사람들.


지난 겨울 눈보라가 그리도 혹독했나

이제 그들이 떠나가네, 더 이상 볼 수 없네!

다들 어디로 가나?

평화의 대추열매 영원이 맺게 하자던 수많던 사람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올해도 붉은 대추열매 따겠노라고

방방 곡곡에서 모여들어 함께 약속했던 사람들은 되돌아가고.


빗물에 젖었나 눈물에 젖었나 황새울이 촉촉하네.


옛날 바다를 메우고 나서도 이 땅이 이리 울었을까?

흐르는 안성천, 황새울 노을은 오늘도 변함없는데

왜 땅만 외로이 흐느껴야 하나!


땅을 뺏앗긴 슬픔만큼, 평화를 빼앗긴 마음이 커서일까

아니면 이제 잘려나갈 대추나무에 미안해서일까

아무도 맘 편히 뒤 돌아 보지 못 하네.


하지만 사람은 떠나고, 대추나무가 잘려도

우리는 씨앗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투쟁, 붉은 영혼과 붉은 노을

그 씨앗이 다시 피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눈물을 닦을 수 있네.


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네,

황새울을 찾았던 수많은 발걸음은 잊히지 않고

다시 씨앗이 되고, 거름이 될 테니.


이제 다시 사람들이 찾아 올 때

붉은 대추 한 나무 넘쳐 열리고

팔 벌려 오는 사람 맞아 주겠지.


평화의 붉은 대추 다시 맺을 그날까지

우리는 새로운 황새울을 만들어 가야하네

평택에서, 군산에서, 서울에서

이 땅의 모든 민중들과 함께

붉은 열매를 기다리는 고통 받는 민중이 있는 곳


그 곳에서 다시 황새울을 노래하세

우리의 사랑과 행동으로

다시 붉은 평화를 노래하세.


[끝]

2007년 4월 초 대추리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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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즐거움

아침부터 내린 눈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항상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던 남산마저 보이지 않고

온통 하얀 눈가루만 날린다.

 

동네 강아지도 아니고

앞집 꼬마도 아닌데

눈내리는 날은 그냥 막연하게 좋다.

 

이땅의 사람들이 시간만 있다면 이런 날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사색하기 참 좋은 날이기도 하다.

 

또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눈 내리는 날은 알게 해준다.

눈 치울 걱정, 눈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어질 걱정......

 

어째든 눈 내리면 문자라도 한번 더 보내고 싶고,

눈 내리는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기도 하고

편지나 카드를 써보고 싶기도 하다.

 

아날로그로 돌아가고픈 작고 가벼움 욕망이 꿈틀댄다.

그런 것이 좋다.

 

눈 내리는 날은 어릴적 시골에서 시원하게 내리는 비줄기를 바라보는 것 만큼 좋다.

 

항상 눈내린 다음, 비 내린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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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6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2003년 한 노동자가 죽었다.

쓸쓸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목을 맸다.

사람들은 그곳을 85호 크레인이라 했다.


6월 그가 크레인에 올라갔을 시간이다.

고통스러웠던 4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그는 떠나갔다.

외로움과 분노의 시간을 뒤로하고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겼지만, 많은 사람이 남지는 않았다.

역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불현듯 그가 떠올랐다.

인테넷이라는 알 수 없는 미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한 아나운서의 몇 년 전 휠라이스 운동화와 관련된 오프닝멘트가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다.

그 아나운서 또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가 떠 오른 것은 그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나서야

그와 함께하지 못한 120여일을 반성했다.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서러워했다.


야만의 자본주의와 광기의 신자유주의가 계속 될수록

고통 받는 나의 이웃이 늘어간다.


이 참혹한 세상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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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을 때, 더 화난다.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는 더 힘들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보증제도는 없는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한다. 한국에서 내놓라 하는 기업에다 외국계 자본이 지배해서 이름도 외국이름과 한국이름을 합한 유수의 기업에서 아직도 신원보증을 받는다는 것은 참 '거시기'하다.

 

이런 회사가 여전히 신입사원에게 신원보증을 받는다. 신원보증-연대보증 말로는 참 부담스럽고 무시무시하다. 신원보증만이 아니라 재산세를 얼마 이상 납부해야 보증인 자격도 생긴단다. 이런 보증서는 없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고도 또 보증인을 구하려고 이러저리 알아보고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한다니.....

 

아무튼 급하게 보증서가 필요해 소위 인감증명이라는 것을 구하러 갔다. 내가 인감증명서 쓸일이 언제 있었겠는가? 거기에 노파심 많은 부모님, 내 인감을 간혹 쓸일이 있었던 부모님 덕에 내 인감 도장은 거의 고향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감을 다시 바꿔야만 증명서를 신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감변경을 신청하는 데 이 공무원이 내 손을 달라는 것이다. 무심코 내민 손에 잉크(?)를  묻히고 지문을 뜨는게 아닌가? 순간 울컥하다가 별 수 없어 저항을 포기했다.

 

인감변경을 해야만 인감증명을 구할 수 있고 그래야 후배가 취직을 할 수 있으니, 거기에 후배가 다른 사람을 구할 시간은 더더군다니 오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이문제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을 없었다.

 

체념하고 지문을 내어줬지만, 도무지 이 놈의 나라는 무슨 지문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지....분명 본인이 가서 인감변경을 요청하는데(인감도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고)..지문을 요구하는가?

차라리 유치장에서 진술서나 신원조회라면거부하기 쉬웠겠지만 이런 경우는 무지하게 울트라 캠숑 "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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