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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리더십 탐구] “자책” … 그날, 나올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등록 :2018-04-28 07:00수정 :2018-04-28 21:01

 

 

2017년 신년사에서 “능력 못 따르는 자책”
‘무오류의 존재’ 수령 중심이던 선대 시대
34살 김정은 무오류 버리며 더 단단해졌다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마술공연을 관람하며 함께 웃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마술공연을 관람하며 함께 웃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대중과 직접 접촉 ‘스킨십’…“부귀영화 누리게”
‘이밥(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에서
‘해당화관 철판요리, 과학자거리 고층 아파트’
중국식 경제개혁 진척, 장마당 7년새 200→469개

 

 

수령 카리스마 리더십 대신
시스템에 의한 리더십 태동
당 공식 의사결정체 부활

 

 

어찌 보면 김정은 리더십에
2018년 지금은 ‘봄’

 

 

 

2011년 12월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영결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눈발이 날린 영하의 날씨에도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아버지의 운구 차량을 호위했다.

 

7년 전 국내외 여러 전문가들은 춥고 침울했던 영결식 분위기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상징한다고 봤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대 후반으로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데다 권력승계 기간이 짧아 권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까지 20년이란 권력승계 과정을 거쳤다. 김일성 주석 생전에 탄탄한 권력 기반을 다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3년 만에 권력을 승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1년 못 간다’ 예상 빗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뒤 국내 정보기관 등에서는 ‘정치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는 1년이면 붕괴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리더십이 취약해 고모부인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이 실권을 행사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이런 예상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녔던 군대와 당, 국가의 주요 직책을 빠르게 승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됐고, 2012년 4월 노동당 제1비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추대됐다.

 

북한군 실세로 꼽혔던 리영호 총참모장은 2012년 7월 해임됐고, 수시로 군 고위 간부들이 교체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 간부 계급 강등과 복귀를 통해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군부를 장악했다.

 

 

2011년 12월 
춥고 침울했던 겨울 
20대에 닥친 권력이양 
“1년밖에 못 갈 것” 예상 깨고 
시간 갈수록 안정 기조

 

 

고모부 장성택 등
간부 140명 숙청했지만
김정일 시대의 7% 그쳐
군부 영향력 대폭 축소 
당·경제 엘리트 확대

 

 

북한 2인자로 꼽히던 장성택 행정부장은 2013년 12월 반당반혁명 혐의로 실각했다. 당시 장성택 부장 실각을 두고 ‘고모부까지 숙청하는 등 김정은 체제의 극단적 불안정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았다. 엘리트들을 처형한 것을 볼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잔인하고 인격·능력 면에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평가와 별개로 리영호, 장성택 등 실세로 꼽히는 인물들이 사라진 뒤 김정은 체제는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곧 실각할 것이란 국내외 전문가들의 전망이 빗나간 것은 김정은 리더십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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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악한 김정은’ 재평가 움직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11일 발표한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 전환과 김정은의 리더십 재평가’ 보고서에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북 정보 통제와 조작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김정은에 대한 인식은 매우 편향돼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이 매우 미숙하고 포악한 지도자라는 부정적인 인상만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140명의 간부가 숙청됐는데 이는 김정일 시대 때에 비하면 7%에 불과한 숫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당과 경제 엘리트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군부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됐으며 기업과 농장에서 중국식 경제개혁이 상당히 진척됐고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정권이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고수를 강하게 주장하지만, 실제는 시장경제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분석(임을출 경남대 교수)도 있다. 주민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진 현실에서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생활개선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정권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2010년 200개이던 북한 장마당이 2017년엔 468개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16살 때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16살 때의 모습. 연합뉴스

 

■ 대중친화적 연설 정치 ‘김정은 리더십’과 관련해 “권한이양적, 실리·계산적, 대중친화적, 자기중심적, 강성·폭력적인 특징”을 갖고 있고, 이러한 특징들이 “정책 추진 등의 면에서 비교적 일관성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논문(이상근 ‘김정은 리더십 연구: 김정일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2015)이 나온 바 있다.

 

대중과 직접 접촉을 꺼리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중친화적인 연설 정치를 시도했다. 그는 대중에게 접근하고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권력승계 완료 직후인 2012년 4월15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가해 첫 공개연설을 하면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 김일성 주석 시대의 사회주의 부귀영화였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에는 ‘마식령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고, 미림승마구락부에서 승마를 하며, 해당화관에서 철판요리를 즐기고, 과학자거리의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에서 제시한 목표에 따라 개인을 희생시키던 김일성·김정일 시대 리더십과 달리, 김정은 시대 리더십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소비의 개인화와 고급화 경향에 따라 대규모 유통시설이 늘어났다. 옷 등 고급 소비재와 외식업 분야 등이 급성장했다. 육류, 수산물, 신선 채소 등 식생활의 고급화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능력이 따르지 못해 자책’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약 1년 뒤인 2013년 3월 경제 건설과 핵 개발을 함께 추진한다는 ‘경제 건설,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공식화했다. 민생 경제 챙기기에 나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2017년 신년사)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은 혁명과 건설의 최고영도자로서 수령이 있는 수령 중심 체제다. 수령은 유일적 최고결정권을 지닌 무오류의 존재다.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은 수령의 입에서 나올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령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던 리더십에서 정치 시스템에 의한 리더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의 공식적 의사결정체를 부활했다. 그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2016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열어 당의 중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는 전혀 공개하지 않았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개최 사실도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밝게 웃었다. 2011년 12월28일 눈보라 치는 평양에서 아버지의 운구차를 따라 침울하게 걷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긴 겨울이 물러가고 봄날이 오는 것일까. 앞으로 사회주의 부귀영화, 체제 안정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그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42485.html?_fr=mt1#csidx5c181cd734cfc2c8a4d0ed0fb194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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