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법조비리 '내부고발자' 대법관 후보 되자 날개 꺾은 대법관들

[단독]법조비리 '내부고발자' 대법관 후보 되자 날개 꺾은 대법관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입력 : 2018.05.30 06:00:00 수정 : 2018.05.30 08:05:01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에 남긴 ‘블랙리스트’파동은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법조계 내부 ‘침묵의 카르텔’에 맞서 내부고발자의 길을 걸어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사진)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자마자 날개를 접을 위기에 놓이게 됐다. 2014년 경북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명예훼손 상고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이 신 교수에 대해 지난 15일 유죄확정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주심을 포함해 유죄판결에 합의한 4명의 대법관은 모두 양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인물들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신 교수는 오는 8월 3명의 대법관 임명을 위한 후보추천을 앞두고 2년 가까이 끌던 명예훼손 사건의 선고기일을 잡자 ‘이제 드디어 대법원이 족쇄를 풀어주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고기일이 잡힌 후 일주일쯤 지나 대법원 인사담당관으로부터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으니 공직후보검증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서류를 제출하자마자 그에게 돌아온 건 유죄 확정 판결문이었다. 대법관 후보로서 공정한 검증과 선택을 받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장애물’을 치워준게 아니라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신 교수는 기대와 다른 선고 결과가 선고되자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공익제보자나 내부고발자에 유독 가혹한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검찰과 법원에 맞서 명예훼손 법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해쳐 버린 채 피맺힌 절규를 하는 사법 피해자들과 내부 고발행위로 온갖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 교수가 내부고발자와 사법 피해자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법조 마피아’의 두꺼운 벽 앞에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3년 판사시절 ‘판사실 돈 봉투 수수’관행을 주간지에 폭로했다가 그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법복을 벗은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내부조직을 향한 ‘쓴 소리’는 중단되지 않았다. 2016년 ‘로스쿨교수를 위한 로스쿨’이라는 책을 통해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폭로함으로써 전국 법학교수들의 ‘공적’이 됐다. 판사들과 로스쿨 교수들의 치부를 폭로한 그의 글은 법조계에서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그는 “사법부의 과도한 독립은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특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만이 아닌 책임도 함께 강조돼야 한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해왔다.

신평 교수는 2010년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제정한 대한법률대상을 수상했다. 신교수의 대학시절 은사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시상하고 있다.

신평 교수는 2010년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제정한 대한법률대상을 수상했다. 신교수의 대학시절 은사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시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는 그를 ‘돈키호테’나 ‘이단아’같은 존재로 바라보지만 시민단체들로부터는 ‘소금’같은 존재로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4일 대법원이 후보 추천을 받자마자 바로 첫날 그는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법원이 지난14일 1차로 41명의 대법관 후보 추천을 마감한 바로 다음날 명예훼손죄로 벌금500만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선고받았다. ‘오비이락’일수 있지만 신 교수 입장에서는 사법부 엘리트 법관들의 자신에 대한 두터운 불신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였다. 1993년 판사 재임용 탈락 후 20년 넘게 따라다닌 내부고발자라는 ‘꼬리표’에 또 하나의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법복을 벗은 후 그의 대학교수로서 ‘역경’은 2014년 8월 학교 게시판에 올린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에서 시작됐다. 임기만료를 불과 열흘 앞둔 총장이 후임총장 선출에 간여할 목적으로 단행한 보직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글의 주요 내용이었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인사의 부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신임 보직교수중 한명의 성매매비리 전력을 한줄 언급한 것이 화근이었다. 총장을 대신해서 성매매 교수로 지목된 ㄱ교수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신 교수는 검찰조사에서 “ㄱ교수가 중국 출장중 룸살롱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나를 찾아와 ‘호텔방에 술집 아가씨가 와 있다’며 위엔화를 빌려갔으므로 성매매를 했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다른 교수들이 성매매 사실을 보고 들은 바가 없다’는 이유로 신 교수의 주장을 허위사실로 판단했다. 또 총장의 부당한 인사에 대한 비판은 핑계일 뿐 총장 비판을 빌미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ㄱ교수를 비방할 목적을 가지고 글을 작성한 것으로 몰고갔다. 신 교수는 검사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신 교수는 변호사 시험 출제장에 가 있는 동안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신 교수는 “변호사 시험이 끝난 후 전화를 했더니 수사검사가 ‘나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다’며 말을 얼버무렸다”며“그때부터 ‘배후에 누군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담당 검사는 당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주임검사 독단적으로 법리검토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교수가 언론법 전문가로서 수사과정에서 허위사실에 대한 대한 검사의 입증책임을 거론했기 때문에 치밀한 법리검토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임검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에 대한 기소는 정치적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근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에서 당시 청와대가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신 교수가 학교 게시판에서 비판의 날을 겨눴던 당시 경북대 총장은 안 전 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신평 교수는 2014년 경북대 게시판에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을 올린 후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당시 경북대 총장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최근 검찰조사에서 당시 안 수석이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신평 교수는 2014년 경북대 게시판에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을 올린 후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당시 경북대 총장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최근 검찰조사에서 당시 안 수석이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신 교수로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올가미’에 갇힌 기분이었지만 2015년 8월 1심은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동료 교수들이 법정에 나와 “당시 누구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학교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속이 후련했다”며 신 교수가 올린 글의 공익성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1심이 3차례 증인신문을 열어 허위사실 여부와 비방의 목적을 판단한 반면 2심은 아무런 증인신문 없이 첫 기일에 바로 변론을 종결했다. 신 교수는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 재판부에 증인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게시판에 올린 글이 삭제된 후 e메일로 해당 글을 전체 교수에게 발송한 사람은 신 교수가 아니라 당시 유력총장 후보였던 김모 교수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다시 교직원 수백 명에게 e메일로 전송했다”고 판단했다. 비방의 목적을 판단하는데 있어 잘못된 검찰기록에 의존해 중요한 사실관계를 명백히 잘못 집은 것이다. 

신 교수는 “법정에서 기록보다는 증인의 모습과 태도를 관찰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공판중심주의 기본 원칙임에도 2심은 기록만으로 1심 법정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가혹한 입증책임 부과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1,2심 모두 ‘성매매 한 것을 목격하거나 들었다는 다른 교수가 없고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 성매매 사실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허위사실로 판단했다”며“이런 식이라면 피해자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투’운동은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헌법학회장까지 지낸 법률전문가로서 2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던 이유다.

그는 ‘증명책임에 대한 중대한 법리오해’, ‘비방의 목적에 대한 잘못된 판단’, ‘공판중심주의 원칙 위배’등을 이유로 상고했다. 원심판결의 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KBS <추적60분>, SBS <그것이 알고싶다>등 진실규명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한 연세정신건강의학과 손석한 원장의 의견서도 대법원에 제출했다. 

손 원장은 “거짓말을 하거나 ‘작화(作話)’증세를 보이는 경우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일부 정황이 누락되기 마련인데 피고인 진술을 ‘작화’로 보기에는 기억이 무척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며 “익명의 투서나 소문이 아니라 한정된 조직 내부에서 실명을 내걸고 쓴 글을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신평 교수가 2014년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중 일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장이 무리하게 보직인사를 단행하고 후임총장 인선에 간여하는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신임 보직 교수의 ‘공무출장중 성매매’는 딱 한줄 언급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총장 비판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학내 분규를 게기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료교수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재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신평 교수가 2014년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중 일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장이 무리하게 보직인사를 단행하고 후임총장 인선에 간여하는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신임 보직 교수의 ‘공무출장중 성매매’는 딱 한줄 언급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총장 비판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학내 분규를 게기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료교수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재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에 또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배달된 대법원 판결문은 더 기가 막혔다. 쟁점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판단이 없었고 상고기각 이유는 단 9줄에 불과했다.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면 1심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고 증명책임 분배, 비방의 목적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공판중심주의와 직접 심리주의 원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그는 9줄짜리 대법 판결문에 대해 “대법원이 국민들을 대하는 시각이 어떤 한지,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씁쓸해 했다.

신 교수는 “1년10개월간 올가미를 벗어던지기 위해 변호사와 함께 수십 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와 보충이유서를 통해 왜 2심 판결이 잘못됐는지 치밀한 분석을 진행지만 대법원 판결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나 논리가 없이 ‘내가 말하니 이것을 따라야 한다’는 식”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공보관실을 통해 “2016년 8월10일 사건 접수후 2017년8월11일부터 법리쟁점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시작되었고 올해 4월24일 쟁점에 대한 재판부 논의를 거쳐 5월10일 판결이 선고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판부 내부적으로 충분한 법리검토와 숙고를 거쳐 판결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언론의 자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데 9줄짜리 판결문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판결내용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신 교수 주변에서는 “대법원이 결론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고를 불과 한 달 반 정도 남겨놓은 4월4일 주심이 권순일 대법관에서 이기택 대법관으로 교체된 것도 논란거리다. 대법원은 “권 대법관이 피고인과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 재배당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권 대법관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설령 나와 친분이 있다면 처음 배당됐을 때 기피해야지 선고를 앞두고 재배당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내부에 뭔가 말 못할 곡절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전혀 간여하지 않던 대법관이 주심으로 온지 한 달 만에 과연 얼마나 심도 깊은 고민을 거쳐 판결을 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신평 교수는 2018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강단에서 은퇴한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 집필활동을 할 계획이다. 사진은 신 교수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지에서 제초하는 모습.

신평 교수는 2018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강단에서 은퇴한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 집필활동을 할 계획이다. 사진은 신 교수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지에서 제초하는 모습. 

신 교수는 피고인에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비방의 목적에 비해 공익적 목적을 너무 좁게 해석한 이번 판결이 내부고발자 보호와 ‘미투’운동, 언론자유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유엔의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은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고려될 수 있고 징역형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며“한국은 세계적 시각에서 봐도 명예훼손 법제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미투’운동이 확산되기에 너무 척박한 토양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학기를 끝으로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농사를 지으면서 이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작성한 ‘신앙일기’를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책의 에필로그는 대법원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반성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겪고 있는 고초는 판사로 재직하며 적지 않게 저질렀을 오판, 매너리즘에 빠져 사건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외면하고 소송 관계인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오만의 업보인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