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김광열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김광열의 집은 날이 갈수록 자료들로 가득 찼다. 자료들은 목록별로 잘 분류가 돼 1층을 다 채우고 2층까지 채웠다. 타지에 있는 아들 가족이 집을 방문하면 머물 방이 없을 정도로 자료로 가득 찼다. 그의 아들은 모든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긴 뒤 이런 고백을 했다.
"자료를 다 넘기고 나서야 우리 집이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김광열은 자신의 돈을 들여 현장을 찾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김광열이 없었다면 기록도 없다
그는 왜 평생 이 일에 몰두한 것일까? 김광열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의 아버지 김선기가 일제강점기 핵심적인 독립투사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김선기는 대구 신간회를 만들고 대표로 활동했다. 독립투사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한 인물이다.
김광열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시대에 감옥은 아니지만 일본으로 끌려와 희생된 이들의 삶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후쿠오카 역사기행을 이끌었던 김광열은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이 강제징용 자료 모으기에 평생을 바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 사람들이 다 메워버리고나면 우리 역사는 다 지워지는 것이지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고생하고 눈물 흘리고 죽고 살고 그 역사가 여기 다 있고 무너져 가고 있다. 이거 그대로 나는 모른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 역사는 어디서 찾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김광열 생전 육성 중에서
▲ 김광열이 기록을 위해 지니고 다녔던 녹음기와 카메라 | |
ⓒ 추미전 |
그의 이야기는 2018년 11월 경남 MBC <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으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그가 국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사 속에 묻힐 뻔한 그의 노력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제작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도 아닌 길, 오히려 갖은 겁박과 위협을 감수해야 했던 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50여 년에 걸쳐 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알아갈수록 김광열의 삶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묵묵히 걸어간 이들의 굳건한 발자취가 종종 역사의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바람결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13만 건의 자료들은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 올해 말 그의 자료들이 공개되면 강제동원의 진실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50여 년간 기록하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했던 김광열, 이제는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국민훈장 동백장은 그를 기억하는 첫 신호탄일 뿐이다. 13만 건에 달하는 그의 자료들을 통해 강제징용의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때 '지쿠호의 기록자' 김광열의 수고는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실립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