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트럼프의 행동은 재선을 겨냥한 의식적 퍼포먼스로 해석되고 있다. 또 이란과의 강경 국면이 전개되는 동안, 북한의 돌발 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보여준 행보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트럼프의 파격성은 판문점에 가기 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한미 합동 군영인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에서도 나타났다. 문 대통령과 함께 최전방 초소를 방문한 뒤 보니파스 부대 식당에서 이뤄진 그의 연설은, 비록 짧기는 했지만, DMZ를 방문했던 역대 대통령들과 확연히 대조됐다. 비슷한 코스로 DMZ를 방문했던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부시(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에게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연설이었다.
"이번 방문은 사실 오래 전부터 계획됐던 것입니다. 어제 내가 김 위원장에게 연락해서, 한번 만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대단히 존중하는 사이이고, 아마도 좋아하는 사이일지도 모릅니다. 위원장이 만나기로 약속했고 또 동의했습니다. (그를 만나기) 4분 전이네요. 그래서 이번 말씀은 짧게 끊도록 하겠습니다."
'롤모델' 레이건과 다른 연설 내놓은 트럼프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DMZ 방문을 호외로 보도한 1983년 11월 14일자 <동아일보>. | |
ⓒ 동아일보 |
장병들 앞에서 그는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유세계와 미국이 신봉하는 모든 것에 적대하는 체제의 군대를 (우리와) 갈라놓은 곳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DMZ를 기점으로 남과 북을 가르는 인식을 내비쳤던 것이다.
그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편한 역사도 거론했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북한 공작원의 암살 시도로 알려진 1983년 10월 19일의 '미얀마(버마) 암살 폭파 사건'도 거론했다. 또 33년 전의 전쟁(한국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희생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위 <경향신문>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같은 날짜 <동아일보>에 따르면 레이건은 1976년 8월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 사건(미군 2명 사망)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대결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다.
"어떤 테러 분자도 우리의 결의를 와해시킬 수 없고 어떤 폭도도 우리의 용기를 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구호는 '항상 싸울 태세를 갖추어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입니다."
레이건(1911년생)은 트럼프(1946년생)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위대한 미국'을 외치는 트럼프의 구호도 레이건과 닮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의지를 키운 것도 레이건을 지켜보면서였다. 그렇지만, 비무장지대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낸 레이건의 발언만큼은 트럼프한테서 나타나지 않았다. 트럼프는 '아마도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일지 모른다'며 사랑스럽고 평화적인 발언을 내놨다.
'파격 행보'는 시대적 결과... 평화가 일상이 될 수 있을까
▲ 빌 클린턴 대통령의 DMZ 방문을 보도한 1993년 7월 12일자 <한겨레신문>. | |
ⓒ 한겨레신문 |
그는 다른 것으로도 위협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3년 7월 13일 치 <경향신문>에 따르면, 건장한 해병대 대원이 핵가방으로 추정되는 검정색 가방을 들고 클린턴 옆에 서 있었다. 북한을 상대로 언제라도 핵전쟁을 개시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퍼포먼스였다.
트럼프의 연설은, '악의 축'이니 '불량국가'니 하면서 북한을 몰아세웠던 조지 부시와도 확연히 대비된다. 2002년 2월 20일 DMZ를 찾은 부시는 레이건이나 클린턴과 비교할 때 발언 강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몸짓은 달랐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그는 명확히 표출했다.
2002년 2월 21일 치 <한겨레신문>은 부시가 DMZ에서 "그들은 역시 악"이라는 말을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래 인용문의 '이렇게 말했다'는 '그들은 역시 악'이라는 부시의 말을 지칭한다.
"20일 오후 비무장지대 최전방 초소를 찾아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진저리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군 지휘관으로부터 '북한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군 2명을 살해한 도끼를 건너편에 있는 북쪽 평화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진저리난다며 머리를 흔든 조지 부시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의 팔을 토닥거리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의 DMZ 행보는 2012년 3월 25일의 버락 오바마와도 달랐다. 그날 오바마는 DMZ에서 다소 교과서적인 어록을 남겼다. 최전방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북한을 관찰한 오바마는 "자유와 번영이 남북한만큼 극명하게 대조되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에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록을 남긴 것이다.
트럼프는 레이건을 보면서 대통령의 꿈을 품었을 뿐 아니라 레이건 재임기에 실제로 출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1987년에 '도널드 트럼프를 뽑아주자(draft Donald Trump)'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공화당원도 있었고, 조지 부시 부통령(아버지 부시)의 러닝메이트 후보 중 하나로 트럼프가 고려됐다는 말도 있었다.
만약 트럼프가 레이건의 뒤를 이어 1989년에 43세 나이로 대통령이 되고 그 상태에서 DMZ를 방문했다면, 그 역시 레이건·클린턴·부시·오바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남기기 쉬웠을 것이다. DMZ에서 어떤 말을 하는가는, 미국 대통령 개인의 소신이나 특성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시대 상황에 구속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신념과 개성을 담아 DMZ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와 세계질서가 새로운 단계를 향해 '월북' 혹은 '월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6월 마지막 날 트럼프가 보여준 파격 행보들이 머지않아 새로운 시대의 일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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