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본이 침략전쟁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패전 후 성립된 헌법을 개정, 일본군을 부활시켜야 함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이 바로 보수의 비주류로 지칭되는 극우세력이다. 이들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주자가 기시 노부스케,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다. 실제로 기시 노부스케는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 자신의 정치인생을 걸다시피 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러한 비주류 세력(일본 극우)이 1980~1990년대 들어서야 각종 정치 스캔들을 등에 업고 비로소 힘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현재 아베 정권과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에는 1940~1990년대 전후 일본 정치를 이끌어온 정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뿌리가 공허한 정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현 극우 세력들의 정체성은 어디 있을까? 호사카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아베를 비롯한 극우파 세력은 적반하장으로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한국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했다. 한국을 비판하면서 존재감을 더욱 부각한 이들이 바로 아베 정권의 모체였다.
-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150
무엇이 대량 살상인가? 후쿠시마 원전을 향한 물음
'숨겨진 후쿠시마 원전의 실체'를 파헤치는 부분은 일종의 번외편 격이다. 호사카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를 숨기려고만 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면서 UN, 언론, 시민단체 등 다양한 입장의 자료(<뉴욕타임스> '17.12.29, <로이터 통신> '18.10.11, 영국 <그래프> '18.10.16, '동일본의 토양 방사능 수치 베크렐 측정 프로젝트' 등)를 인용한다.
호사카 교수는 이미 'UN인권이사회'가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우려를 2018년 10월에 발표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당시 UN인권이사회는 "후쿠시마현에서 대피령이 해제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아이와 임신 가능한 여성의 귀환은 미룰 필요가 있다"는 성명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향후,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자랄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 특히 걱정하고 있다"는 특별보고자의 코멘트도 소개했다.
최근 이슈가 불거진 방사선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한 호사카 교수의 평가는 특히 인상적이다.
방사능 물질을 더욱 잘 분리시킬 수 있는 기술이 미국에는 이미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일본은 그런 기술을 우선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일설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렇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베 정권은 비용 때문에 세계의 바다를 오염시키고, 오염된 수산물을 섭취한 세계인들이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알면서 정화 작업이 미흡한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량 살상 행위가 아닌가?
-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276
이는 방사능 물질을 분리할 수 있는 실용기술이 존재함에도 개발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국제환경 NGO 그린피스 재팬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대량살상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일본 정부가 대답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제의 <OO일보> 일본어판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아베 정권과 극우세력에 대한 부분이었지만 우리 스스로의 성찰을 호소하는 부분도 있다. 호사카 교수는 특히 양국 언론의 차이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불균형을 강하게 지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언론이 일본어판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호사카 교수의 비판이다.
실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겨레> 등은 일본인들을 위해 일본어판 사이트를 별도 운영한다. 일견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온라인 영역 확장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일본 언론이 이를 통해 매우 쉽게 한국 관련 기사를 접하고 언론 동향을 읽는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신문'도 '한국어판'을 운영하고 있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 조선일보 일본어판 | |
ⓒ 조선일보 |
단적으로 말해 일본 신문에는 '한국어판이 없다'. 때문에 한국 측에서는 하나하나 일본 언론 기사를 해석해야 하고,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를 통해 상대국에 대한 정보량과 질이 급격히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호사카 교수도 이를 지적한다. 잘못되거나 편향된 정보를 일본 언론에 제공하고 오히려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백진훈 의원(한국계 일본인, 참의원)은 조선일보 한국 독자 코멘트의 일본어판을 일본 국회에 공표했다. 그 코멘트의 내용은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의 일본 측 입장을 옹호하는 한국 독자들의 과격한 의견이자 문재인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백진훈 의원이 이런 댓글을 공개한 시점은 조선일보가 한국 독자 코멘트라고 칭해서 댓글의 일본어판을 내보내기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66
실제 일본 국회에서 <조선일보> 일본어판 기사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이다. 호사카 교수는 해당 발언이 등장한 국회 회의록 원본을 그대로 활용했다. 이렇게 민감한 내용이 왜 당시 한국 언론에는 대서특필 되지 않았을까?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 신문이 '한국어판'을 운영했다면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반성할 필요가 있다. 매년 야스쿠니에 공물을 보내는 아베 총리에 치를 떨고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면서도 왜 일본을 비판하는 논리가 더 깊어지지 않는지, 왜 일본의 속내를 추적하려는 보도와 르포가 다수 탄생하지 않는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과 아베 정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일본의 현실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무관심함을 지적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 호사카 유지 교수 인터뷰 기사 보기 ☞ "아베 영구집권 할 수도... 한국도 일본 공부해야" http://omn.kr/1l8xx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