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교수는 이 지점에서 조국 장관 논란으로 촛불을 든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판했다가 급히 삭제한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서울대에서 조국 반대 촛불을 들었던 학생들을 보면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에 대해서는 왜 촛불을 들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글을 올리자마자 지인이 연락을 하더라. '하 선생 같은 분이 학생들을 그렇게 내치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완전히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라고. '불공정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오히려 비정규직 불평등에도 다시 항의할 수 있도록 품어줘야 하는 것이 하 선생의 역할 아니냐'라고."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하종강 교수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고용 문제 등 하 교수가 40년 넘게 몸담은 대한민국 노동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동지가 적이 되는 상황, 견디기 어려웠다"
하종강 교수는 강연 때마다 '자본가급 외모를 지녔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터뷰 당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덥다'라는 이유로 멋들어지게 재킷 팔목 부분을 접어 올린 그는 "(외향은) 노동교육에 상당히 효과가 좋은 무기"라면서 "최대한 외모에서부터 노동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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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중립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노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순간, 그 지점이 시민들에게 더 크게 통한다. 학교 강연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준비하고 신경 써서 임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하 교수는 "초등학교 도덕 수준의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돈을 많이 벌지 않고, 반드시 출세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면서 자신이 '노동운동'보다 '노동상담'에 주력하게 된 이유도 덧붙였다.
"이십 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을 했다. 자연스레 조직사업도 참여했다. 후배를 제명해보기도 했고, '모든 사업 일체에서 손을 떼야 한다'라는 결과를 동지들로부터 받기도 했다. 주된 이유가 두 가지였는데, '하종강은 전두환 시계를 차고 다니고 여성 노동자에게 친절하다'라는 것이 논리였다. 소위 활동가의 자세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전두환 시계를 차고 다닌 것'에 대해 "수배를 당했을 때, 교직에 계시던 아버지가 전두환에게 훈장을 받았다. 그 모습이 뉴스에 나오더라.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부상으로 받은 시계를 내가 갖게 된 거다. 군사정권이다 보니 검문할 때 시계를 본 순경이 '공직에 계시군요'라면서 무사히 넘어가기도 했다. 이 점이 나의 문제점이 됐던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상황이 참 견디기 어려웠다"라고 덧붙였다.
톨게이트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이날 하종강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만난 중학생들 이야기도 꺼냈다.
"오전 강연이 끝나고 오후에 학교에서 선발한 학생 5명과 함께 토론 자리를 따로 가졌다. 바로 옆에 앉은 학생이 묻더라. '작가님도 잡혀간 적 있냐고?' 그래서 '학생운동 하며 네 번 잡혀갔다'라고 했더니, 질문한 학생이 바로 '옛날 사람이구나'라고 말했다. 그 뒤로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이 없었다."
하 교수는 "이런 학생들에게 5.18 광주와 노동운동, 유신은 이미 옛일"이라면서 "그렇다고 그 친구들에게 '우리는 목숨 걸었다, 가볍게 보지 마라'라고 강요할 순 없다. 이 친구들에게 우리가 적응해야 한다.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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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이 최근 하종강 교수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 교수는 "내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다"면서 "결국 현장에서 직접 싸우고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최선이다. 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유성기업 김성민 노동자를 강단에 모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 교수는 "우리 사회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서 "시대의 문제에 앞장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고용 문제를 꺼냈다.
"지난 6월 30일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명이 해고됐다.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이들의 투쟁 때문에 도로공사가 임금과 정년이 인상된 자회사를 만든 것이다. 도로공사는 이렇게라도 해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자 숫자를 줄이고자 했다.
지금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한 노동자들의 투쟁도 같은 결로 봐야 한다. 도로공사에서 각종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욕먹는 소수가 행동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 자회사로 간 사람들이 이들을 향해 '왜 싸우냐'라고 비난해선 안 되는 이유다. 오히려 대신 싸워준 것에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 교수는 톨게이트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하청업체 사장들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하청업체 사장이 톨게이트마다 한 명씩 있는 게 아니다. 보통은 이십 명당 한 명씩 사장이 있다. 수납원이 백 명쯤 되면 사장도 다섯이다. 사장이 사무장을 데리고 온다. 사무장은 지인을 서무로 데리고 온다. 사장과 사무장, 서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 없어도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 왜냐? 도로공사에서 직접 지시하고 감독하니까. 그럼 사장들은 누구일까? 도로공사 퇴직자들이다."
하 교수는 "시스템만 제대로 정비해도 직고용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위험하다' 말할 수 있는 권리
이날 인터뷰에서 하종강 교수는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한 날의 일을 떠올렸다. 사고가 나기 정확히 2시간 전, 그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었다.
"이미 식당가 절반의 조명이 꺼져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회사 임원들과 양복 입은 관계자들이 무전기 들고 다니며 현장의 위험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그냥 다들 무시하고 일을 했다. 만약 '위험작업 중지권'이 있었다면, 위험을 발견한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결정하고 업무를 중단시켰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다."
하 교수는 "하지만 노동자에게 그러한 권리가 전무했다"면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바로 위험하다 말할 수 있는 권리다"라고 강조했다.
"하청업체 때는 해고가 두려워 위험하다는 말을 못 한다. 최근에 목동 배수구에서 세 명 죽었을 때도 이미 폭우가 예보됐는데 들어갔다. 위험하다 말할 수 없는 처지니까 그런 거다. 그런데 구의역 김군 사건을 계기로 418명이 직고용됐다. 3년 지나고 가장 큰 변화는 전체 고장 건수가 1/5로 줄었다는 점이다. 당연한 결과다. 평생직장이 된 뒤 행복해지려고 노동자 스스로 환경을 개선했다. 위험하다고 말한 결과다."
하종강 교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 차린 농성장에 일부 시민들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많은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은 할 만큼 했는데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청와대까지 가서 '대통령한테 책임지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불편해 한다. 혹자는 '그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도 마음이 싹 없어진다'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왜 청와대까지 갔을까?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톨게이트 문제는 이미 해결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 교수는 "톨게이트 문제를 놓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기존의 경제 관련 부처에서 모두 내부 경제 논리로 '직고용'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노동문제에 있어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조직의 반발을 돌파할 의지와 힘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운동을 모르지 않을 거다. 다만 조직에서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서 내부의 반발을 돌파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임기 초반 지지율이 80%를 상회할 때 돌파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노동자와 서민,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돌파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기회를 놓쳤다."
"연 소득 500억 선수 톰 브래디도 '노동조합 필요하다'고"
하종강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은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굉장히 후진적이고 보수화됐으며 낙후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단적인 것이 촛불 집회에서 노동자 깃발 안 보이니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말한다. 민주노총 도움 없이 100만 명이 모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지점이 홍세화 선생이 지적하는 '존재의 배반'이다. 우리는 모두가 노동자인데 노동자를 배격한다. 왜 그럴까?"
하 교수는 '재벌'을 꺼내 들었다.
"형태는 자본주의인데 수십 개의 기업이 봉건적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식민지 40년, 분단 70년, 군사정권 30년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다. 부도덕한 전근대적 재벌이 한국 경제를 이끌다 보니 한국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시각도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박근혜 정권 당시 촛불을 보면, 누가 무대와 앰프를 준비했을까. 민주노총이 준비한 거다. 비 오는 날 우비를 준비한 곳은 어디일까. 민주노총이다. 노동운동이 문제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으킨 조직 운동의 변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노동자인 우리 스스로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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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끝 무렵, 하종강 교수는 자연스레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면서 "미국에서는 연 소득이 500억 원가량 되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브래디가 필요하면 우리 모두 필요한 거 아니냐.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노동자를 우리는 '귀족노조'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를 부인하고 깎아내리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 교수는 "유럽에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건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면 기업에 대해 살인죄에 준하는 형사처벌을 한다"면서 "자본주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수백억 원의 민사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등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갈라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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