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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에 국보법 씌우고 北개별관광되겠나?”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0-01-25 12:01:30
수정 2020-01-25 1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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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개별관광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상을 밝히기 바로 전날인 지난 13일 정부의 구상이 무색하게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지난 2018년 8월 중국에서 북측 프로그래머와 협력 사업을 하다 국보법 위반(자진지원·금품수수)으로 기소된 IT회사 대표 김호 씨에 대한 재판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한달 전 발생한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이다.
같은 해 10월에 1심 공판이 시작된 이후 햇수로 벌써 2년째 진행되고 있다. 그사이 재판부도 바뀌었고, 구속됐던 김 씨도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동에서 또 한 차례의 공판을 마친 김 씨는 재판이 2년째 진행되는 데 대해 "국가보안법이 가진 모순에 대해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기간이었다"며 "(국보법이) 남북교류에 있어서도 장벽이지만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과 함께 고생하고 있는 가족에 대해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제 일로 크게 보는 계기가 됐다고 해서 고맙다"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뜻있는 분들이 도와주고, 제가 가진 미래 가치에 관심 갖는 분들이 많아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 기간이 이만큼이나 길어진다는 것은 검찰 측이 주장하는 혐의가 쉽게 입증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검찰은 김 씨가 북 IT 기술자들과 프로그램 관련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국가보안법위반 통신연락’이고, 그 중 2013년경 방위사업청 입찰에 참여한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인공지능형 감시카메라 테스트 관련 부분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 ‘국가보안법위반 자진지원 군사기밀 누설’이며, 북 IT 기술자들에게 프로그램 개발비를 준 것이 ‘국가보안법위반 편의제공’이라고 기소하였다.
북측 프로그래머와 협업해 개발된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사이버테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된 논리다.
그러나 실제로 김 씨가 제공한 프로그램으로 인한 악성코드 피해사례는 없었다. 검찰 측이 내놓은 증거들은 모두 위험에 대한 '가능성'만을 지적하는 자료들 뿐이다. 경찰 보안수사대가 6년이나 김 씨를 추적했다고 하지만 내놓은 증거는 초라한 수준이다.
김 씨는 "사이버테러 위험이 있다고 하는 데 실제로 피해 사례가 없다"면서 "검찰 측이 파일을 분석해서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는 것도 그건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제공하는 정상적인 기능의 파일일 수도 있다는 전문가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파일이 있을 텐데 2010년에서 2018년 사이 파일 중에서 유독 2013년 3, 4월 파일에 바이러스가 의심된다는 거다"면서 "만약 (악성코드 유포) 의도가 있다면 처음엔 숨겨오다 마지막에 드러낼 텐데 지금까지 다 정상적이다가 중간에 일부가 그렇다는 건 비상식적이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
지난 13일 진행된 재판에서는 IT전문가가 김 씨 측 증인으로 나와 "감정서에서 지적한 사항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본이 되는 것인데, 하나하나의 세부기능으로는 악의성이 없다"고 증언했다. 김 씨의 소프트웨어가 악성프로그램으로 의심된다는 검찰측 감정서와는 반대되는 의견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김 씨를 구속시키려는 목적으로 경찰이 '증거 조작'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2018년 8월 9일 김 씨 체포 당시 경찰은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신청서에 “자신의 체포를 알리고 증거를 인멸하라는 듯한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다”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기재했다. 법원은 역시 이를 토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김 씨의 구속 후 해당 문자는 경찰 공용폰에, 김 씨가 체포되기 20일 전에 김 씨와 전혀 무관한 사람으로부터 ‘수신’된 문자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 씨 측이 이들 보안수사대 수사관들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에 대한 혐의로 고소했지만 '혐의없음' 처분이 나오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문자 메시지'를 처음 발견하고 보고한 수사관은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3일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 모 수사관은 "보수대에 있으면서 이보다 경한 것(사건)도 구속됐기 때문에 그게(문자메시지가) 없더라도 구속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오히려 '증거 조작' 의혹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증거조작이 없더라도 구속시킬 수 있었다'는 자신감에서 정권은 바뀌었지만 보안당국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씨 뿐만 아니라 최근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의 '프락치 조작 사건' 당사자도 대표적 피해자다.
김 씨는 "(김 모 수사관의) 그 이야기 듣고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면서 "저런 사람들이 징계를 받기는커녕 보안 조직의 보호 받는다는 게 국민의 한사람으로 분통이 터진다"고 분노했다.
이어 "한국의 공안조직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당연히 해직됐어야 할 사람인데 아직도 세금을 받아 먹고 있다는 거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공판에서 김 씨 측은 김 모 수사관에 대한 추가 증인 신문을 신청하면서 재판을 계속할 것을 요청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선고는 더 늦어질 수 있다. 다음 공판기일은 재판부가 추후 지정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9월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경협에 국보법 씌우고 교류하자고 하면 북한이 이해하겠나"
김 씨는 '북한 개별관광'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구상도 남북경협에 대한 국보법의 굴레를 벗기지 않는 이상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제 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경제교류에 희망을 봤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위축됐다"면서 "저의 상황을 알던 지인이나 기술 공급 받은 사람들이 증언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건 물론 사업도 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에서 남북경협에 불신을 보이고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남북경제사업을 위축 시킨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측의 민간인과 교류협력사업을 한건데 이걸 사이버 테러의 배후라느니 간첩질을 했다고 하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북측에서는 억울하지 않겠나"라고 "남측은 대통령과 보안당국은 별개니까 이해해달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나"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남북교류의 희망과 가능성에 겁을 줘놓고 정작 정부는 남북교류에 대해 북측에 이해해달라는 양두구육이 어디있느냐"라고 비판했다.
향후 남북관계 개선 측면에서도 이번 재판 결과가 중요하다고 김 씨는 강조했다. 당장 북측 개별관광 등 '큰 그림'을 그릴 게 아니라 국가보안법 등 남측에 놓여진 눈앞에 장애물부터 치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부는 남북관계 악화에 대해 주변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북측의 양보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식으로는 남북관계는 풀릴 수 없다"면서 "지금 남북교류사업을 간첩으로만든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해야 남북관계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탓만하고 발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해서는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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