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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북한 급변 사태 대비론'인가

[정욱식 칼럼] 군사 낙관주의의 문제점

 

 

북한 지도자의 건강 이상설이 나돌거나 사망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북한 급변 사태 대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고설이 한반도 상공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수구·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어김없이 이러한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김정은이 통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아프거나 사망하면 북한 내부에선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와중에 군사 쿠데타나 민중 봉기, 대규모 탈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북한 군부가 내부 결속을 위해 국지 도발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전쟁을 감행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내 '최고의 시나리오'로 둔갑하기도 한다. 한미연합군이 북한에 진입해 핵무기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꿈에 그리던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 때부터 논란이 되었던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9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 급변 사태 대비론은 역사로부터 전혀 배운 게 없는 주장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은 명확해졌다.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믿고는 북미간의 핵협상에 찬물을 끼얹고 대북정책의 목표를 '연착륙'에 맞춰나간 것이다. 연착륙은 북한의 붕괴가 최대한 별 탈 없이 이뤄지고 한미동맹 주도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한국은 대북 협상에서 소외되어 미국으로부터 귀 동냥 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남북관계도 최악이었다.

 

 

2008년 8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이 불거졌다. 당시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선택해 북미대화와 6자회담의 선순환적인 발전이 도모될 때였다. 10개월 전에는 2차 남북정상회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북정책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곤 마음을 굳게 다졌다. 북한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곤 6자회담에서 초강경 입장을 고수했고 "기다라는 것도 전략"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통일의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개과천선에 따라 조성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날아갔고 북한의 핵무력 건설을 향한 폭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하여 북한의 핵몽(核夢)은 이명박의 통일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한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다리고 유도하면서 이에 대비한 작전계획도 만들고 군사훈련도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정일은 "핵무력"이야말로 한미동맹 주도의 "제도통일(흡수통일)"을 저지할 수 있는 "보검"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이 사망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군의 정보기관은 북한의 공식 발표 전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국민들은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국가 정보기관들이 대북 정보 수집·분석보다는 선거를 비롯한 국내 정치 개입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급변 사태 대비를 이유로 강화된 정보기관의 권력이 실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겨냥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한미동맹이 규정한 북한 급변사태의 범주에는 '김정일의 유고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범주에 따르면 급변사태가 발생한 셈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즉각 김정일의 사망이 북한의 불안정이나 한반도 안보 정세의 악화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한편으로는 이명박의 흡수통일론을 이용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론 한반도에서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김정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지표와 정황상 오늘날의 북한이 김정일 사망 때보다는 많이 안정화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김정은의 유고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그의 유고시에도 이것이 급변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 12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서부지구 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습격기연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

 

그래도 혹자들은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비무환이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무력 개입과 통일까지 염두에 둘수록 '유비대란'이 되고 말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수십 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안전하게 확보할 가능성이 높겠는가? 아니면 이럴 경우 북한의 핵 보복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겠는가?

 

 

정규군만도 100만이 넘는다는, 그리고 영토의 70% 이상이 산악이고 전국토가 요새화된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통한 안정화와 통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가 불가피한데 이를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과도한 '군사 낙관주의'이다. 세계 1·2차 대전, 북한의 남침에 의한 한국전쟁과 뒤이은 유엔군의 북진통일 시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등이 말해주는 교훈이 있다. 이들 전쟁은 하나 같이 낙관주의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를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낳았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틈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북한 급변사태 대비론을 경계하고 자제해야 할 까닭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281056040104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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