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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 무마하려 협력사에 ‘불공정 합의서’ 들이민 삼성전자

협력사 개발 ‘액정 필름 부착 장비’ 경쟁사에 빼돌리고 “법적 책임 묻지 마”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0-10-21 19:12:07
수정 2020-10-21 19: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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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8일 중소벤처기업부 등을 대상으로 한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액정에 기포 없이 보호 필름을 붙일 수 있는 중소기업의 특허 기술을 탈취해 다른 협력업체에 빼돌렸다고 폭로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8일 중소벤처기업부 등을 대상으로 한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액정에 기포 없이 보호 필름을 붙일 수 있는 중소기업의 특허 기술을 탈취해 다른 협력업체에 빼돌렸다고 폭로했다.ⓒ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삼성전자가 협력사 기술탈취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기업에 ‘불공정 합의서’ 체결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삼성전자 협력사 DMT 곽동근 대표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곽 대표에게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 관련 합의서를 메일로 송부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불공정 계약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고 지적한 합의서다. 해당 합의서에는 삼성전자가 곽 대표 기술을 다른 협력사에 유출하고, 곽 대표를 입막음해 무마하려 한 정황이 담겼다. 합의 주체로는 ‘삼성’과 ‘DMT’가 명시돼있고 삼성 측 서명인 란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이름이 쓰여 있다.

문제가 된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 라인에서 쓰는 장비다. 삼성전자는 2018년경부터 스마트폰 생산 과정에서 액정 보호 필름을 부착한 상태로 단말기를 출고했다. 액정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 처리된 엣지형 디스플레이에 필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소비자 반응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엣지형 디스플레이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모서리 부분에 필름이 뜨면서 먼지가 들어간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곽 대표가 개발한 장비는 기포 없이, 쉽고, 빠르게 필름을 부착할 수 있다. 이 장비가 개발되면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 속도에 맞춰 적은 인력으로 스마트폰에 필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도움 받은 적 없는데 ‘협력 개발’ 강요…“특허권 무상 사용 포석”

곽 대표는 DMT 설립 전 도원테크라는 삼성전자 협력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필름 부착 장비를 개발했다. 도원테크는 삼성전자에 금형과 사출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곽 대표는 기술탈취 문제로 도원테크와 삼성전자 간 거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회사를 나와 DMT 세웠다. 필름 부착 장비 생산을 위한 설비와 영업권, 특허권 등을 이전받았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합의서는 DMT의 법적 대응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합의서에는 DMT가 필름 부착 장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협력했다고 명시됐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도원테크는 2018년 3월 삼성전자로부터 필름 부착 장비 제작을 의뢰받았으나,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곽 대표는 경일대학교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 장비를 개발했다. 곽 대표와 회사 소속 연구원 등 2명이 장비 개발에만 매달린 끝에 같은 해 6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시제품을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곽 대표는 “장비 개발 과정에서 삼성으로부터 기술적·금전적 지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무리하게 협력을 강조한 건 장비 관련 특허권을 무상으로 사용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특허법은 선사용에 의한 통상실시권을 허용하고 있다. 특허 발명자를 지원하면서 해당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실시·준비 중이었다면, 출원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 대표가 필름 부착 장비 개발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했다고 인정하면 삼성전자가 통상실시권을 취득할 여지가 있다.

DMT에 자문을 주는 한길국제특허법률사무소 이상철 변리사는 “삼성전자가 합의서에 협력 개발 문구를 넣은 건 선사용에 의한 통상실시권을 얻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엣지 디자인이 적용된 삼성전자 갤럭시 S8. 좌우 양쪽 모서리가 곡선으로 처리돼있다.
엣지 디자인이 적용된 삼성전자 갤럭시 S8. 좌우 양쪽 모서리가 곡선으로 처리돼있다.ⓒ삼성전자

장비 빼돌려 경쟁 협력사에 제공하고 “기술탈취 책임 묻지 마”

곽 대표는 삼성전자가 도원테크 경쟁사에 장비를 빼돌려 납품업체를 이원화했다고 호소한다. 국감에서 공개된 곽 대표와 경쟁사인 J사 측 통화 내용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J사에 필름 부착 장비의 핵심 부품인 롤러와 안착지 등을 제공했다. J사는 삼성전자 측이 샘플을 제공했냐는 곽 대표 물음에 “당연히 줬지.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하나, 아무것도 없는데”라며 “다 받아서 실측했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J사에 넘겨준 건 도원테크의 장비이지 도면이 아니기에 기술탈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종민 삼성전자 무선사업무 상무는 국감에서 “일반적으로 기술자료는 제품에 대한 사양이 들어 있는 도면을 이른다”고 말했다.

이 상무 주장은 현행법에 규정된 내용과 차이가 있다. 상생협력법·부정경쟁방지법·하도급법에서 기술자료 또는 영업비밀이란 제품 생산 등 영업에 유용한 정보이며, 이를 타인에게 부정하게 제공하면 제재 대상이 된다. ‘정보’가 ‘도면’에 국한된다는 내용은 없다.

이 변리사는 “장비에는 도면에 기재되지 않은 재질·성분·내부구조 등 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며 “장비를 넘겨주는 건 도면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술을 유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상 ‘정보’에는 도면뿐 아니라 장비 자체도 포함된다”며 “영업비밀은 영업상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면이 아닌 장비를 넘겨줬기에 기술유출이 아니라는 삼성 측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기술탈취 관련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DMT 측에 제시한 합의서에 ‘입막음’ 조항을 넣었다. 합의서에는 “제3자를 통한 제품 공급 등에 관해 삼성이나 제3자가 지식재산권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권리를 침해해도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일체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과거에 발생했거나 향후 발생할 기술탈취 등 법 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지 말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기술유출에 대해 도원테크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을 폈다. DMT 설립 이전에 도원테크 대표를 통해, 장비를 다른 업체로부터 납품받는 데 대해 합의한다는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납품업체 이원화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2019년 6월 도원테크와 특허권에 대한 통상실시권 무상허여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통상실시권이란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가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이른다.

삼성전자가 도원테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법적 효력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곽 대표가 개발한 장비의 특허 출원인은 도원테크·경일대학교산학협력단·하나이엔지 3자다. 하나이엔지는 도원테크에 장비 부속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현행 특허법은 특허권을 다수가 공유할 경우 통상실시권을 제3자에 허락하려면 모든 출원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무상허여 계약은 경일대산학협력단과 하나이엔지 측 동의 없이 진행돼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게 류 의원실과 곽 대표 설명이다.

이종민 삼성전자 상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종민 삼성전자 상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납품사 이원화로 단가 후려치기…변호사 대동해 합의 종용하기도

삼성전자는 법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무리하게 이원화를 강행했다. 2018년 12월 도원테크에 이원화 계획을 알리고 2019년 2월 J사로부터 필름 부착 롤러를 납품받기 시작했다. J사의 납품 사실을 파악한 도원테크는 삼성전자에 특허 침해 위험성을 경고했다. 삼성전자는 경고를 무시하고 J사 물량을 늘려갔다. 도원테크 납품 물량은 2019년 4월 월평균 1억원 수준이었으나, DMT의 지난달 거래 규모는 수백만원으로 줄었다.

필름 부착 장비의 주요 수입은 롤러에서 나온다. 신형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그에 맞게 개선한 롤러를 납품한다. 또한 롤러는 소모품이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많이 팔려야 롤러 주문량도 늘어난다. 삼성전자가 신형 모델용 물량을 J사에 몰아주면서 DMT는 판매량이 적은 구형 모델용 물량만을 납품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필름 부착 장비 납품처를 이원화하면서 단가 인하 효과도 누렸다. J사는 납품을 시작하면서 단가를 도원테크보다 20%가량 낮췄다. 원청 대기업이 기존 협력사 기술을 다른 기업에 빼돌리고 새로운 협력사 단가를 낮추는 건 불공정 거래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새로운 협력사는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부담 없이 거래를 확대할 수 있고 원청은 원가를 감축할 수 있다. 기존 협력사는 기술을 뺏기고 버려진다. 도원테크는 최소한의 물량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단가를 약 30% 낮춰야 했다. 특허 기술 상용화에 따른 고마진이 상쇄돼버린 셈이다.

삼성전자는 합의서 한 장으로 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삼성전자가 처음 DMT에 합의서를 보낸 건 지난 4월이다. 곽 대표는 합의서 내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수정안을 제시했다. 협력 개발 문구를 빼고 특허권 보호 조항을 보강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DMT 수정안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2차 합의서를 들이밀었다. 곽 대표는 이 역시 체결을 거부했다.

삼성전자는 2차 수정안을 보낸 직후, 담당자 5명을 대동해 곽 대표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사내 IP(지식재산권) 센터 소속 변호사와 책임연구원, 무선사업부 구미사업장 소속 변호사와 차장급 인원이 동원됐다. 장소는 한길국제특허법률사무소였다. 곽 대표와 이 변리사에 따르면, 당시 삼성전자 측은 다짜고짜 “얼마면 되겠냐”며 합의를 제안했다. DMT 측은 먼저 특허권 침해에 대해 인정하라고 요구했으나, 삼성전자 측은 이를 거부했다. 양측 대화는 접점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곽 대표는 “삼성전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호사를 앞세워 협력사에 무리한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DMT는 지난 4월 J사의 필름 부착 장비 관련 특허에 대해 무효 청구하고 기술침해 행위를 특허청에 신고했다. J사는 지난해 말 필름 부착 롤러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곽 대표 측은 J사 특허가 모인출원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특허를 베껴서 출원했다는 것이다. 현재 특허 무효 심판과 기술침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원청인 삼성전자 측에는 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관계가 완전히 끊길 것이 걱정돼서다. 삼성전자가 특허권 분쟁은 DMT와 J사 간 문제라며 방관자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이유다.

곽 대표는 “장비를 직접 빼돌렸으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협력사끼리 싸움을 붙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원화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특허 기술을 사용하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책임 있게 나서 거래를 정상화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DMT 곽동근 대표가 개발한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와 롤러.
DMT 곽동근 대표가 개발한 액정 보호 필름 부착 장비와 롤러.ⓒ특허청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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