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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권영해의 국정원 논평, 다음은 전두환의 인권 논평?

 

[기자의 눈] 종편에 최소한의 양식을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9 오후 7:45:37

 

9일 <매일경제> 소유 종합편성채널 MBN의 '고성국·이혜경의 뉴스 공감'에 안전기획부장을 지냈던 권영해 씨가 출연해 국정원 개혁을 말했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정보 기관의 정치 개입 사건'인 '1997년 안기부 대선 개입' 사건으로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가 버젓이 TV에 출연, 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 방안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있는 '초현실적' 상황이다.

권 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권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면서 자기는 개혁을 안 하고 (있다)"라고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정치권에서 심지어는 TF를 구성해서 국회에서 이런 것을 해야 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과연 이 사람들이 법을 알고 하는 얘기들인지"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국회법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 발언이다.

그는 이어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없애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그런 양반들을 가만히 보면 그런 것(정보 기관)에 별로 종사해본 적도 없고, (…) 그분들이 과거에 자기네들이 살 때 정보 기관으로부터 당했던 것 때문에 어떤 불만이나 이런 것들로 인해 그런 얘기를 한다면 공인으로서 더욱 온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남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적이 있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같은 인사가 "국정원의 국내 파트 폐지"를 주장하는 게 '개인적 불만'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공작 정치'의 온상으로 지목돼 폐기됐던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독대에 대해 그는 "자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직접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며 "구두로 (독대 보고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통수권자를 제대로 보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 씨 ⓒMBN 화면 캡처


'1997년 북풍' 처벌받은 패널이 '국정원 쇄신' 말하는 종편의 수준

권영해, 1937년생. 76세다. 군부 정권 시절 국방부 차관을 지냈고, 문민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을 지냈다. 노태우 정권의 국방부 차관이 김영삼 정권의 국방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연임은 비교도 안 될, 파격적인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김영삼, 김현철에 이어 정권 넘버 3"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육사 15기 출신인 권 씨는 이진삼·이대희 장군 등 하나회 소속 동기 및 후배들을 '숙청'하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비하나회 출신에게 하나회 숙청을 맡긴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용병술이었을까. 잘나가던 권 씨가 보여준 과잉 충성은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1997년 대선 당시 이른바 '김대중 낙선' 공작을 펼쳤다는 혐의(대선 개입, 이른바 '북풍 사건')로 그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본인도 이날 방송에서 밝혔다. 권 씨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자연인도 명예가 있는 법인데 왜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기관 자체의 명예가 없겠느냐"고 반문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를 들어 제가 1997년도 안기부장으로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오익제라고 하는 사람이 자진 월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문제를 가지고 정치권에서 기획 입북을 시킨 것이라는 식으로까지 공격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공방을 당할 때 안기부 책임자로서 명예 손상을 어떻게든 밝혀야 될 거 아니냐."

권영해 씨는 잊힌 인물이다. 그 잊힌 인물에 대해 <프레시안>에서 이렇게 거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잊힌 인물을 깜냥 따지지 않고 불러내는 종편의 행태 때문이다.

우선 2013년, 이 시점에서 국정원 쇄신 방안에 대해 권영해 씨의 견해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따져볼 일이다. 국내 정치 개입으로 실형을 받은 인사가 국내 정치 개입과 관련해 논평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따져볼 일이다.

예컨대 전두환 씨가 종편에 출연해 민주화 운동과 대한민국의 인권 실태에 대해 버젓이 논평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와 그리 다르지 않다. 권 씨가 이 방송에 출연해 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청산됐으리라 생각한 정보 기관의 '구악 예찬론'이다.

권영해 씨 사례뿐만이 아니다. 최근 MBN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정운갑의 집중 분석'은 무려 45년 전 남파돼 내려왔던 김신조 목사를 출연시켰다. 주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였다. 김 목사가 언제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전문가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김 목사는 생방송에 버젓이 출연해 북한이 보낸 대중 특사의 의미를 분석한뒤, 국내 정치에 대한 논평을 하며 "남한에 빨갱이가 많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가 분석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일 만한 내용이 얼마나 담겼을지 의문이다.

비단 MBN의 문제만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소유한 <채널A>는 "북한에서 남파돼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싸웠다"고 주장하는 탈북자를 등장시켜 '황당 인터뷰'를 방송했다. <조선일보>가 소유한 <TV조선>도 비슷한 수준의 탈북자 인터뷰를 내놓아 세간의 비난을 자초했다. <중앙일보>가 소유한 jtbc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파동으로 정치권에서 퇴출당한 강용석 변호사를 내세워 숱한 논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 결국 채널의 '간판 스타'로 키워냈다.

종편들이 수많은 '철 지난 철새' 정치인들을 무차별 출연시켜 '정치 논평'을 던지고 탈북자들에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분석을 맡기는 '초현실적인' 일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종편이 '정계 낭인'들의 '패자 부활' 무대라는 세간의 냉소도 괜한 것은 아닌가 보다.

이런 식이라면 훗날 최시중 씨나 박영준 씨가 종편에 출연해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관한 논평을 던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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