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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바람에…‘민주 텃밭’ 창신동 흔들리는 표심

등록 :2021-03-29 04:59수정 :2021-03-29 08:50
 
 
[르포]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 택했던 종로구 창신동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거리 한복판에 시장 후보들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노지원 기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거리 한복판에 시장 후보들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노지원 기자
바람이 분다. 재개발 바람이다. 재보선을 앞두고 거세진 야당 바람이다. 재개발에 대한 생각이나 선거에서 찍으려는 시장 후보는 달랐어도 동네 사람들이 가슴에 담은 바람은 매한가지였다. ‘내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것.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이다. 정치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었다. 4·7 재보선을 앞두고 지난주 그곳을 찾았을 때, 창신동 사람들의 마음은 바람 앞의 들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종로인데, 상계동보다 집값이 싼 게 말이 되나?”

“국민의힘은 재개발을 확 풀어준다는 것 아닌가요? 그 정도로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주면 우리 동네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19년 동안 줄곧 민주당을 지지해왔다는 토박이 이두한(가명·39)씨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찍으려고 한다. 오 후보가 썩 내키진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힘 시장이 나오면 어쨌든 동네가 ‘재개발’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다. 오 후보는 지난 18일 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고 박원순 전 시장 정책 중 반드시 폐기할 것으로 ‘도시재생’을 꼽았다. 도시재생이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오 후보는 “서울시장에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서울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2013년 박원순 전 시장이 창신동의 뉴타운 지정을 해제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씨는 지금처럼 민주당을 미워하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이 창신동을 ‘도시재생 1번지’로 지정하고 동네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할 때도 ‘기대 반 우려 반’ 정도였다. 이씨가 박탈감을 느끼고, 급기야 민주당에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지역 집값이 폭등하면서부터다. “창신동은 종로구잖아요. 서울의 중심에 있는데 상계동, 길음동보다 (집값이) 쌉니다. 상식적으로 도심은 비싸고 부도심 집값이 더 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왕십리, 청량리 보세요. 부도심인데도 집값이 우리 동네 두배는 됩니다.” 투기를 막는다며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자체를 어렵게 해놓은 것도 그의 화를 돋운다. “같은 아파트지만 좀 더 넓고 볕이 잘 드는 남향 집으로 옮겨가려고 해도요, 못 갑니다. 대출이 안 나와요.”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 벽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노지원 기자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 벽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노지원 기자
8·4 대책 뒤 재개발 바람…찬반으로 갈린 주민들
민주당에 실망했다는 주민들은 모두 “부동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창신동에서는 현재 재개발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있다. 이곳은 2007년 3차 뉴타운 사업 지구로 지정됐다가 토박이 주민들의 반대로 2013년 지정이 해제됐다. 이듬해 박원순 전 시장은 창신동을 서울형 도시재생 1호 지역으로 선정했다.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 전 시장이 재개발·재건축의 대안으로 제시한 정책이다. 그 덕에 지난 7∼8년 동안 주거환경 개선, 생활 인프라 개선 등을 위한 예산이 800억원 넘게 투입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공급 확대책이 담긴 정부의 ‘8·4 대책’이 나온 뒤 이 지역에서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공공재개발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재개발 찬성·반대 쪽 주민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야당 세가 심상치 않아요.” 창신동에서 4년째 빵을 파는 강동석(가명·66)씨가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그는 “원래 이쪽(창신동)이 민주당 세가 강한데 지금은 6 대 4로 밀리는 거 같다. 창신동까지 밀리면 여당은 답이 없을 거 같다”고 했다. 그는 여당이 열세인 이유를 박 전 시장 성추행에 따른 실망, 추미애-윤석열 갈등 장기화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권세력의 신뢰 상실을 꼽았다.25일 오후 산마루 놀이터에서 만난 박민현(가명·40)씨는 이번 선거에서 제3의 후보를 뽑을 작정이다. “허경영을 뽑으려고 해요. 결혼하면, 애 낳으면 얼마 준다는 게 거짓말 같지만 아직 그 사람한테는 안 당해봤잖아요.” 그는 줄곧 민주당을 지지했고, 한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거리 모습. 이날 서울시장 선거를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노지원 기자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거리 모습. 이날 서울시장 선거를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노지원 기자
8·4 대책 뒤 재개발 바람…찬반으로 갈린 주민들
올해 일흔셋 김명자(가명)씨는 창신동에서만 60년을 살았다. 시골에서 상경해 창신동에 정착했고 20년 동안 남의 집 세를 살았다. 동네 봉제공장에서 열심히 미싱을 돌려 40년 전 성곽길 한편에 집을 샀고 증축도 했다. 1∼2층에 세를 놓고, 3층에는 김씨 부부가 산다. 김씨는 4층 옥상에 마련한 공장에서 오늘도 미싱을 밟는다. 평생 고단했지만 그래도 이제 좀 살 만하다. “뉴타운 해제 때 민주당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박영선이 되면 좋겠는데, 될까 모르겠어요. 여론조사 보니까 오세훈이 높아서 걱정되네요. 엘에이치 투기 때문에 박영선 후보가 손해 보는 거 같아요.”김씨는 10여년 전 창신 뉴타운 해제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추운 겨울이지만 뉴타운 해제 동의를 받으려 소형 복사기를 머리에 이고 열심히도 다녔다. 현장에서 바로 주민들 신분증을 앞뒤로 복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집과 동네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재개발 뒤)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수억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추가분담금을 낼) 돈이 없어요. 돈 없다고 하니까 (재개발추진위에서 하는 말이) 정부가 5억원을 빌려준다고 하대요? 아파트 지어지면 10억, 15억 될 텐데 융자 갚고도 남는다고요. 부자 된다고.” 김씨는 “보상금 받아서 갈 데도 없다”며 “외지에서 투자하려고 (창신동에) 집 사놓은 사람들이나 찬성하지 원주민은 다 반대”라고 했다.
김명자(가명·73)씨가 미싱 공장이 차려진 자신의 집 옥상에서 창신동을 내려다보고 있다. 노지원 기자
김명자(가명·73)씨가 미싱 공장이 차려진 자신의 집 옥상에서 창신동을 내려다보고 있다. 노지원 기자
8·4 대책 뒤 재개발 바람…찬반으로 갈린 주민들
창신동에서 4년째 전세를 살며 자영업을 하는 유호진(가명·50)씨도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했다. “엘에이치 투기가 문재인 정권에서 뚝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법을 촘촘히 만드는 게 중요하죠. 오세훈은 시장 하다가 못 해먹겠다고 나갔는데, 그런 사람한테 또 맡기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닌가요?” 그런 유씨도 민주당이 잘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집값 원상회복시키는 건 기대도 안 해요. 더 오르게나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계속 오르면 우리 대는 물론이고 자식들 대에도 평생 집 사는 건 꿈도 못 꿀 겁니다.”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창신동은 어떤 곳서울 종로구 동쪽에 위치한 창신동은 오래전부터 민주당 세가 강한 지역이다. 한양도성 동쪽으로 오래된 저층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19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 안에 있던 봉제공장이 창신동으로 옮겨오면서 의류 도매 시장의 배후 생산기지가 됐다. 주거지 안에 크고 작은 봉제공장이 가내 수공업 형태로 들어서 있다. 면적은 창신1∼3동을 합쳐 약 0.80㎢이고, 주민 수는 2만명을 조금 넘는다. 창신동 주민 5명 가운데 1명은 65살 이상 고령층, 10명 중 1명은 외국인이다.2007년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지만 토박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지면서 2013년 박원순 전 시장에 의해 뉴타운 지정이 해제됐다. 이듬해 박 시장은 이 지역을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1호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한 창신동의 지지는 견고해졌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2010년 지방선거 때도 창신동에선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57.6%를 얻었다. 오세훈 시장 사퇴로 치러진 2011년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당시 무소속) 후보가 62.91%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원순 전 시장은 2014년(60.7%), 2018년(56.9%)에도 서울시 전체 득표율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 창신1~3동의 이낙연 민주당 후보 득표율은 64.26%였다. 2016년 제20대 총선 때도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는 종로 전체에서 52.26%를 득표했는데, 창신동에서는 그보다 10%포인트가 높은 62%의 지지를 받았다.노지원 기자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88572.html?_fr=mt1#csidx4f42eb3d9c7357ea651104d8f8cf8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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