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 생활의 여러 양태를 바꿨다. 그렇지 않아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던 소비 추세를 확 끌어올렸다. 대면접촉의 위험으로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 주문을 선택했고, 대형마트들은 영업시간 마감을 밤 11시에 10시로 당겼다. 당연히 온라인쇼핑 매출이 늘었다.
올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108조784억원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7월꺼지 거래액은 87조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23.8%가 증가한 수치다. 9월까지 거래액은 2020년 114조원에서 2021년 140조원으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이다.
눈에 띄는 지점이 음・식료품과 생활용품, 농축수산물 분야다. 흔히 마트에서 장을 보는 상품들인데, 각각 1년전에 비해 30%, 17.4%, 29.8%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8월에도 유지됐다. 음・식료품이 30.8%, 생활용품은 11.4%, 농축수산물은 32.5% 늘어났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온오프라인병행몰에서 온라인쇼핑의 거래액 변화를 보면 이런 변화는 더욱 실감할 수 있다. 2020년 1분기와 2분기는 2019년에 비해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었던 반면, 2021년 1분기와 2분기에는 꽤 급격히 성장했다.
마켓컬리 1조클럽 진입, 새벽배송 경쟁이 낳은 야간노동 확대
몇 년 전 마켓컬리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신선식품과 식료품을 새벽에 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등장과 함께 급성장을 시작해 스타트업의 신화 중 하나로 꼽힌다. 2015년 29억원이었던 매출은 2020년 953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매출기준으로 직매입 유통기업 중 마켓컬리보다 많은 업체는 대형마트 3사와 쿠팡 뿐이다.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은 업계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쿠팡과 이마트의 자회사 SSG닷컴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두 기업은 빠른 속도로 새벽배송 시장의 경쟁을 이루었다. 2020년 SSG닷컴은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마트의 전략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SSG닷컴은 야간배송 서비스까지 꺼내들었다. 그야말로 한국은 새벽부터 밤까지 상품이 배송되는 나라다.
기업간 경쟁은 소비자의 편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된다. 마켓컬리가 전날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오전 7시까지 배송한다고 했더니, 쿠팡이 밤 12시까지 주문해도 된다고 받아치고, SSG닷컴은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오전 6시까지 배달해준다고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수요를 창출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새벽에도 물건을 내 집 앞에서 받을 수 있다는 수요가 몇 년사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 많은 소비자들은 새벽배송이 없는 생활을 생각하기 힘들다.
새벽에 문 앞에 도착하는 상품들은 누가 배달할까. 누군가는 상품을 분류하고 포장하고, 배송한다. 이 모든 일들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진행된다. 새벽부터 밤까지 배송되는 한국은, 사실 상당한 규모의 노동자들이 밤에 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김포와 이천의 등대, 매일 밤새 일하는 노동자들
“김포에 가면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물류센터들이 있습니다. 저녁 9시에 출근해 오전 9시까지 일하죠. 그걸 매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허영호 마트산업노동조합 조직국장의 말이다.
김포 고촌읍은 최근 각광받는 대형물류센터의 집합지다. 수도권제1순환도로와 강변북로, 올림픽대로에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서울 웬만한 지역은 고속화도로를 통해 1시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다. 새벽배송이 출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10년대에 조성돼 초대형 물류센터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SSG닷컴은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면서 2019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온라인 전용 초대형 물류센터를 공개했다. 마켓컬리도 올해 3월 이곳에 국내 최대규모의 신선 물류센터를 세웠다. 수많은 배송노동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밤에 이 곳을 향한다. 김포가 새벽배송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물류단지라면 경기도 이천은 전통적인 한국 물류의 집결지다. 김포와 이천의 물류센터는 거의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새벽배송 기사들도 택배기사들처럼 특수고용 노동자다. 개인사업자들이고 유통업체에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일한다. 계약된 대로 매일 심야시간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일반 택배보다 수수료가 비싸다. 문제는 택배와 수수료를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새벽배송은 돈을 많이 벌려고 시작합니다. 건당 수수료가 세죠. 보통 2천~3천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택배는 건당 수수료가 700~800원 정도 하는데, 한 집에 3건의 물건을 배송하면 곱하기 3이 됩니다. 하지만 새벽배송 물류의 경우에는 한 집에 한 건이 됩니다. 상품이 10개여도 한 건으로 계산되는 것이죠. 게다가 중량제한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름에 수박 몇 통을 한 번에 주문하기도 하고, 배추가 수십포기인 경우도 있습니다.”
“택배가 하루에 수백건을 하는 것에 비해 새벽배송은 40~50건을 하면 되고 건당 수수료가 높아서 괜찮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일을 하다보면 차라리 택배가 낫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쿠팡이나 이마트 배송은 일반 택배와 다르다. 일반 택배업은 ‘제3자물류’라고 분류하는데, 자기 상품이 아니라 남의 물건을 위탁받아 배송하는 것이다. 반면 대형마트나 쿠팡, 마켓컬리 등의 배송은 자기 상품을 배달해주는 것으로 ‘자가물류’라고 분류한다. 배송은 상품판매에 딸린 일종의 ‘서비스’인 셈이다.
일반 택배가 포장된 물건을 받는 것부터 일이 시작되는 반면 낮에 진행되는 마트배송도 새벽배송도 포장 작업 이후에 배송이 시작된다.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 창고에서 주문된 상품을 가져오는 ‘피킹(Picking)’ 작업 이후에 상품들을 한 데 모아서 포장하는 ‘패킹(Packing)’ 작업이 이뤄지면 비로소 상품이 배송기사에게 전달된다.
소비자들은 밤 11시나 12시까지 주문을 한다. 낮에 주문이 들어온 상품들부터 피킹과 패킹이 진행되고 야간에 주문이 들어온 상품들은 새벽에야 패킹이 마무리 된다. 배송기사들은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배송을 시작해 새벽까지 두 세 차례 배송작업을 한다.
“문제는 출차가 지연되는 상황입니다. 마트배송이든 새벽배송이든 배송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 안에 처리를 해야 하죠. 패킹이 늑어지면 원래 3시간 정도면 넉넉히 배송할 수 있는 범위의 배송작업을 2시간 내에 끝내야 처리해야 합니다. 야간에 속도위반, 신호위반은 예사죠. 악순환이 되면 제대로 쉬지 못하니까 졸음운전으로 넘어가고, 위험해지는 겁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 “그냥 픽 쓰러져 죽는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배송기사들에게 상품이 전해지도록 물건을 담고 포장하는 노동자들도 심야시간에 일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저녁 7시쯤 일을 시작해 새벽 4~5시에 일이 끝난다.
2020년 10월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장덕준씨가 사망했다. 밤새 일하고 새벽에 퇴근 후,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급성 심근경색증이었다. 다시 27살이었던 장씨는 물류센터에서 오후 7시부터 하루 8시간에서 9.5시간 동안 밤을 새우는 ‘심야노동’을 했다. 2019년 6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몸무게가 15kg이나 줄어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장씨의 유족이 낸 산재 신청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업무부담과 업무시간이 고인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7살 청년이 과로사한 것이다.
이성문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정책국장은 센터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쿠팡의 물류센터에 크게 3가지의 업무시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주간조, 오후 6시부터 새벽4시까지 일하는 야간조, 저녁 9시부터 새벽6시까지 일하는 심야조로 나뉜다.
쿠팡에는 ‘시간당 생산량’(UPH·Unit Per Hour) 시스템이 있다. 수백명이 일하는 현장에서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업무를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감시하고 있다. 물건을 모으고, 포장하고, 분류하는 모든 작업과정에서 노동자들이 PDA를 들고 입력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노동자가 한 시간에 몇 개의 작업을 처리하는지 확인된다.
“식사시간 1시간 외에는 휴식이 없어요. 몇 시간을 일해도 10분도 쉴 수 없습니다. 화장실은 갈 수 있는데, 10분 정도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면 관리자의 컴퓨터에 상황이 다 뜨게 되고, 관리자가 와서 닥달을 합니다. ‘뭐 하고 있냐.’ 작업이 없는 시간을 그들은 유휴시간이라고 부르는데, 그 유휴시간을 줄이기 위해 관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용직, 3개월, 9개월, 12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이후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일용직으로 오래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용직은 ‘매일 계약’을 하는 방식이다. 장덕준씨도 일용직이었다. 웹사이트와 어플을 통해 출근신청을 하고, 회사에서 수락하면 계약이 이뤄진다.
“처음엔 낮에 다른 일을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고 밤에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주일에 2~3일 정도하다가, 수입이 꽤 높기 때문에 차츰 본업이 되어갑니다.”
야간근무를 하게 되면 수입은 또 늘어난다. 아간수당이 붙어서 수익이 1.5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희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야간근무를 지속하면 몸이 고되지만 300만원대의 수입이 보장된다”면서 “40~50대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에게는 정규직으로 들어가도 받기 힘든 월급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심야노동을 하는 분들도 대부분 주5일이 지켜집니다. 업무이력이 남기 때문이죠. 심야조로 6일째 근무하려고 하면 시스템상에 뜨게 돼 있어요. 예전에는 6일째 근무를 특근이라고 불렀어요. 그나마 장덕준씨 사망 이후에 주5일이 지켜지는 편입니다.” 이성문 정책국장의 설명이다. 장덕준씨는 2020년 8월에 25일, 9월에 23일을 일했는데, 8월과 9월 모두 주7일씩 근무한 적도 있었다.
일용직이든 계약직이든 쿠팡에서 일한 사람들은 근무이력이 남는다. 여기에 시간당 생산량 시스템을 통해 업무 성과까지 모두 기록된다. 기록은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재계약 여부에 영향을 주게 된다. 노동자들은 시간당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 재계약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성문 정책국장은 다르게 설명했다.
“물류센터 일이라는 게, 몸을 갉아먹는 노동입니다. 다 알아요. 노동자들도 돈을 많이 주니까 하는 거고 회사도 일하는 노동자의 몸에 스트레스가 축적된다는 걸 압니다. 장기간 하는 분들 중에 몇 명이 관리자로 가고 일정기간 지나면 노동자들을 걸러냅니다. 기록이 있으니까요.”
최첨단 플랫폼 기업의 시스템은 노동자들을 완전한 부속품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어느 정도 노후화 됐는지 파악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장덕준씨 사망 이후에도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모두 야간노동자드이었다. 올해 1월 쿠팡물류센터 동탄점에서 야간근무를 마친 50대 여성노동자가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3월에는 새벽배송을 전담했던 배송노동자가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극한의 과로현장인데다 야간노동이 더해진 현장. 그렇게 새벽배송과 심야물류센터는 한국사회 가장 위험한 노동현장이 되고 있다. 클릭으로 새벽에 물건을 배달 받는 소비자들의 편리 뒤에는 목숨을 잃어가는 중노동이 존재한다.
자신의 몸이 갈리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도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일년 내내 야간근무를 선택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가정경제를 책임져야하는 40-50대 노동자들 뿐 아니라 20대 청년들도 이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마치 각성제를 먹고 졸음을 견디며 밤새 미싱을 돌리던 10~20대 청년 여성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독한 야간노동의 뿌리
경공업 중심이었던 1960-1970년대 한국의 산업역군은 밤새 미싱을 돌리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저임금 기반으로 가능한 일을 많이 시켜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노동자들도 잔업과 야근으로 추가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 돈으로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졌다. 중공업으로 옮겨가도 한국의 산업현장은 잔업과 야근으로 점철됐다. 기업은 비용절감을 통한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들은 수입확대라는 이유가 유지됐다.
이런 흐름은 한국 블루컬러 노동자의 최고임금이라고 하는 현대자동차에서도 2000년대까지 지속됐다. 한국 금속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의 근무형태는 업계 표준이었다. 당시까지 현대자동차의 근무형태는 10/10교대제라 불렸다. 주야간교대근무제인데, 주간조는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50분까지, 야간조는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각각 10시간씩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사실상 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게 설계돼 있었다.
현대차 노사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교대근무제 변화를 논의하기 시작해 2013년 주간연속 2교대제로 변경됐다. 1조는 오전 6시45분부터 오후 3시20분까지, 2조는 오후 3시20분부터 밤 12시까지 정규노동을 하고 새벽 1시10분까지 잔업을 결합했다. ‘8/8+1 교대제’였다. 3년 후 2016년에는 잔업을 없애 ‘8/8 주간연속 교대제’가 정착됐다. 약간의 시간 조정을 통해 밤 12시30분이면 현대차 공장은 멈춘다.
현대차 노사의 교대제 합의는 노동시간 단축, 야간노동 축소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과로 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 야간노동은 줄어드는 추세다. 중소규모 기업에는 여전히 야간작업이 문제가 되고 있어도 줄어드는 추세는 대세로 평가되고 있다.
10여년간 진행된 현대차 노사 교섭 과정은 야간노동을 ‘금지해야 할’ 제도라는 인식을 확장시켰다. 2007년 국제암연구기구에서 야간노동을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2A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할정도로 알려져있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은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 조항이 없다. ‘수당’을 통해 제한을 ‘유도’할 뿐이다. 기본급이 워낙 낮은 임금시스템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에게 야간수당은 수입을 늘리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때문에 이런 방식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야간노동으로 이끌어가는 유인 효과를 낳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야간노동의 뿌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야간통행금지 시절에도 심야노동 성행
근로기준법에 야간노동 부분 신설해야
“18세 이상의 여성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려면 그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 근로기준법 제70조(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 1항
근로기준법은 야간노동과 심야노동을 따로 규제하고 있지 않다. 70조에서 ‘여성과 청소년’에 한해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심야근로에 대한 개념은 아예 없다. 유럽에서는 보통 ‘생명과 안전을 위해 금지’하는 시간으로 새벽 1시에서 새벽5시까지 정도를 심야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입법센터 활동하는 송봉준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원칙적으로 심야근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야간통행금지가 있었지만, 그 시간에도 공장은 돌아갔습니다. 통금은 있는데, 야간근로는 있었던 겁니다. 어차피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니까 오히려 심야근로를 시키기 더욱 좋은 조건이었죠.”
그는 “헌법 32조 3항에 보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고, 36조3항에는 모든 국민이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돼 있다”며 “심야노동이 심각하게 건강을 해치는데, 이는 신체의 안전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아 법률로 일 때문에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민입법센터는 연구작업으로 ‘심야근로 금지’가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조문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송 변호사가 ‘심야근로 원칙적 금지’를 꺼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경찰이나 병원, 통신 등 공공성이 명확하고 필수적으로 유지돼야 하는 심야노동에 대해 허용하면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도 제대로 마련된다는 거다.
▶︎ 국민입법센터 ‘심야노동 금지’ 근로기준법 개정안 바로가기
송 변호사는“야간근로가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인 1953년부터 규정돼 있었지만, 제대로 된 규제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제조업에서 심야노동이 제한된 것은 대기업 노동조합이 협상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 노사 협상이 진행된 2000년대 초반부터 야간노동, 심야노동을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은 꽤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성이 분명한 업무 외에도 해외를 상대로 한 업무나 운수업, 경비업, 상시대기 업무 등 실질적으로 심야근로가 허용될 수 밖에 없는 업무가 있다”며 “그렇다고 해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서 직접 제한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을 고친다고 해도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송 변호사는 법을 개정할 때부터 특수고용 등 적용범위를 같이 설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심야노동을 막을 또다른 해법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희종 정책실장은 “근로기준법을 통한 심야근로 금지가 원칙이지만 물류센터 노동자들과 배송 노동자를 시급하게 구제할 수 있는 우회로도 있다”며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최근 ‘새벽배송’ 경쟁이 심화되면서 야간 물류업무에 투입되는 노동자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쿠팡, 마켓컬리, 쓱닷컴 등은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주문을 받는다. 이 기업들은 유통업체다. 심야시간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일종의 ‘대형마트’다.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이 야간에 주문을 받아도 아침이 되어야 상품을 준비하고 택배회사에 배송할 상품을 넘긴다. 반면 ‘무점포 판매업’ 기업에서는 주문 상품 피킹, 패킹, 운송하는 모든 과정이 심야시간에 이뤄지고 있다.
이 정책실장은 문제의 심야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노동’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영업’을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무점포 판매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그에 따른 노동들도 자연스럽게 제한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이해관계자가 넓은 만큼 길고 복잡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반면,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것은 이해관계자의 폭이 좁고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기도 수월한 편이라고 이 정책실장은 설명했다.
▶︎ ‘무점포 판매업 심야시간 영업제한’이 포함된 유통사업발전법 개정안 바로가기
이런 접근법에도 반발은 예상된다. 일단 기업들의 반발은 뻔하다. 이희종 정책실장은 “이미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가 도입되어 있다”면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대형마트들이 쿠팡은 일요일에 쉬지 않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역발상을 한다면, 무점포 판매 기업들도 공평하게 규제 안으로 들어오게 하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은 물론 소비자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송봉준 변호사는 “쉽게 말해 심야근로를 제한하면 배송속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이미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된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택배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배송지연을 감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70%가 찬성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소비자들도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상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정책실장은 대국민 캠페인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시간 일찍 주문하고, 4시간 늦게 받자”는 캠페인을 고민중이라고 전했다. “새벽배송 주문시간을 일정시간 예컨대 6시나 8시까지로 정해서 심야시간대에 상품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하자는 캠페인도 고민할 수 있겠죠. 핵심은 심야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이해관계, 사회적 논의 필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그대로 두자는 이는 없다. 극악한 수준의 심야노동 환경인 쿠팡에서 몇 달에 한 명씩 과로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업계는 쿠팡을 따라 발전하고 있다. ‘새벽배송’의 경쟁기업들은 초대형 물류센터를 짓고 비슷한 근로환경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있다.
기업들은 규제를 논의하기는커녕 물류센터 현장을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성문 정책국장은 “쿠팡 물류센터에는 핸드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며 “노동자들이 딴 짓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근로환경을 절대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심야노동 제한을 노동자들이 두 손 들어 환영하지는 않는다. 현대차 노사협상 과정에서도 주간2교대로의 전환을 노동자들이 탐탁치 않게 여기기도 했다. 야간수당이 없어지면서 수입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노조가 있는 경우 수입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사측에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계약과 일용직 중심의 현장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회사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는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기엔 유통업과 물류업의 성장속도는 너무 가파르다. 코로나는 그 성장속도를 훨씬 가파르게 만들었다. 언제 다시 물류센터에서 사망 노동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새벽배송에 지친 배송노동자가 차량사고를 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송봉준 변호사는 “전자상거래와 무점포 판매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면서 “지금 논의해야 한다.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사회적 논의기구가 생겼다. 택배 회사와 노동조합, 소비자단체, 정부 기관에 여당까지 모인 사회적 논의를 통해 ‘생활물류 서비스발전법’이 만들어졌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무너뜨린다는 여론이 모이자 영업시간 제한과 휴일영업제한도 생겨났다. 이미 우리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내는 많은 경험이 있다. 이제 심야노동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때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병가제도와 상병수당: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정리해고자 재고용권:‘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야간노동 제한: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⑤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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