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최근 기후위기의 징후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단 빙하가 녹는 것뿐만 아니라 기록적인 기온 상승과 산불·홍수 등의 재해가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이제 탄소 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지난달 19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흙, 묻다’ 편을 방송했다. 전북 장수의 사과밭 이야기로 문을 연 이날 방송에서는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미국의 곡창이자 옥수수벨트의 시작점인 사우스다코타 주의 탄소 농법이 소개되었다. 탄소를 묻어둘 수 있는 ‘흙’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듣고자 ‘흙, 묻다’ 편을 취재한 서승신 KBS 전주방송총국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서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
지난 19일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이 방송됐는데, 소회가 어떠세요?
“아주 시원섭섭합니다. 프로그램 만드는 중간부터 허리가 무척 아팠었거든요. 그래서 한방병원 양방병원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았어요. 이제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 아파서 회사 출근하고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양말을 신어야 하는데 양말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도 있었고요.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한자리에 앉아서 고민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봐야 하고 정리도 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한 3~4시간 정도 거의 꼼짝없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보니까 허리가 굳어 아파졌거든요. 원래부터 디스크하고 협착증 환자였는데 이렇게 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구 온난화,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셨는데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는지요?
“제가 전북에서 경제하고 농업 부분을 담당해요. 전북이 농도잖아요. 그래서 거의 매일 농민들하고 대화하고 통화하는데, 매년 봄이면 기후변화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과수원 같은 데는 열매 달린 게 별로 없어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좀 바꿔봐야겠다. 이게 원인이 뭔지 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이런 현상이 계속 진행된다면 우리 다음 세대가 엄청나게 힘들 거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부모로서, 또 기자로서의 고민으로 기후변화 대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이전부터 기후위기나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있었나요?
“제가 물리학과를 나왔어요. 기상에 대해서 관심도 많았고요.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왜 그럴까나 아니면 뭐가 문제일까란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 기후위기 부분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취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었죠.”
서승신 KBS 전주방송총국 기자 (K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
전북 장수의 사과밭 이야기로 시작하셨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봄에 전북 정읍의 한 배 농가와 사과 농가에 갔는데 피해가 너무 심각했거든요. 그래서 이걸 나중에 다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읍은 실제로는 배와 사과 주산지가 아니거든요. 전북 장수가 사과 주산지잖아요. 그래서 장수를 찾아간 거죠. 그전에도 장수를 몇 번 방문했는데 ‘갈수록 온난화가 심해서 사과 농사를 못 지을 상황’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었고, 정말로 폐원하는 과수원들을 많이 봐서 장수를 택하게 된 거죠. 실제 현장에 가봤더니 그 농가에도 사과가 없어요.”
지구 온난화 영향이라는데 전국의 과수 농가가 ‘저온’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나옵니다. 왜 그런 거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온난화라고 항상 따뜻한 건 아니에요. 갑자기 따뜻해졌다가 또 추워질 때가 있거든요. 올해 같은 경우도 사과와 배꽃이 예년에 비해 보름 이상 일찍 피었어요. 지구 온난화로 초봄에 기온이 일찍 올라간 거죠. 그러니까 나무들이 앞다퉈서 서로 꽃을 피운 거예요. 그런데 꽃은 다 피웠는데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어요. 엄청 낮은 것도 아니고 약간 낮을 수 있는 건데, 이미 꽃들이 핀 상태에서 서리가 내리고 저온이 찾아오니까 이 꽃들이 다 말라 죽어요. 검게 타버려요. 사람으로 말하면 동상을 입는 거죠. 그러다 보면 열매 맺을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피해가 큰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방법이 없어요. 꽃이 늦게 피도록 하기 위해 나무뿌리에 얼음을 갖다 놓거나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하는 건 쉽지가 않아요. 앞서 말한 정읍 농민은 수만 평 배밭과 사과밭에다가 비닐하우스를 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비닐하우스를 하면 서리가 내려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그 수만 평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한다고 해봐요. 돈이 얼마나 들겠어요. 그러면 비용 대비 수익이 안 맞아요. 사실상 배 농사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이죠.”
전북만 그런 건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가요?
“지금 온난화로 피해를 보는 건 전국적인 상황이고요. 제주도도 봄에 갑자기 추워져서 감귤 나무가 많이 죽어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북극의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서 영하 몇도 떨어지는 한파가 갑자기 한반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죠.”
제주에서는 2도만 올라도 감귤 재배가 어려워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던데 기온이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지 않을까요?
“그렇죠. 기온 상승이 제주도만 국한해서 어찌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대기 중에 기온은 전 세계가 하나이고, 전 지구적인 문제예요. 그래서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본 거죠. 그러니까 일부 지역만 잘해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쪽에서 다 잘해야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공기는 전 지구를 떠돌거든요.”
미국도 취재하셨던데 미국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 기획의 주제가 탄소 농법이지 않습니까. 탄소 농법 취재하며 교수님들하고 전문가들하고 상의도 했고 몇 달 동안 유튜브도 다 찾아봤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매타이슨 씨가 나오는 유튜브를 봤는데, 지구 온난화 관련해 나파밸리에서 실험을 하고 있고 포도를 어떻게 잘 재배할지 고민도 많이 하더라고요. 유튜브나 자료를 보고 그분들을 한번 만나봐야겠다 싶어서 메일을 거의 한 달 넘게 보냈죠. 그런데 저를 안 만나려고 해요. 그래서 계속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설득하고 ‘제 주제가 이런 건데 좀 응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면서 취재에 들어간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
스티브 매타이슨 씨는 포도를 재배하는 땅에 피복작물을 심었다고 나와요, 피복작물은 땅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작물이나 풀을 뜻하죠. 피복작물 효과가 어느 정도라고 하나요?
“요즘 뉴스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캘리포니아가 가뭄이 일상화됐잖아요. 그래서 매타이슨 씨도 위기를 느끼고 있어요. 해결 방안을 찾느라 6년째 자기 포도밭 한쪽에서 실험하고 있더라고요. 피복작물을 심은 땅을 파보면 물기가 있어요. 피복작물이 땅을 그늘지게 해서 지표면 온도를 낮추고 온도가 낮으면 수분 증발이 적어지는 거죠. 그리고 매타이슨 씨는 거기 자생 식물을 갖다가 피복작물을 쓰고 있었는데 얘네가 죽으면 바로 퇴비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는 거죠. 그래서 6년째 실험을 해왔는데 결과가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밭 전체에 확대할 생각이고, 인근 농가에도 연구 데이터 같은 것을 알릴 거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또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을 제시하셨어요. 밭을 갈지 않았을 때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나오던데 그럼 이전에는 왜 밭을 간 것인가요?
“그러니까 역사책에 삼국시대 무슨 왕 이후로 소를 이용해서 눈밭을 갈기 시작했다고 나와요. 아마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우경이라는 것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워낙 농경지에 풀들이 많으니까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밭을 갈았던 것 같고, 또 옛날에는 돌들도 많았잖아요. 돌을 걸러내려면 흙을 파야 했겠지요. 또 옛날에는 흙도 단단하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땅들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아주 정제된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무경운을 해도 된다는 거죠.”
온실효과를 측정하는 모형실험을 하신 이유는?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 하면, 거의 없어요. 저 역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물리학과 나와서, 이산화탄소가 있으면 적외선 영역의 에너지를 흡수해 몸속에 저장하면서 지구 전체를 덥게 한다고 이해는 하겠어요. 그런데 눈으로 본 적은 없거든요.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번 보여주자고, 우리나라 여러 기관에 요청을 해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도 실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만 하는 거예요. 그럼 실험 한번 해보면 어떠냐고 했더니 실험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더라고요.
친구 한 명이 물리학 박사인데 대전 표준과학연구원에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하고 상의를 했죠. 표준과학연구소는 우리나라 모든 표준을 만드는 곳이에요. 그 연구소에서 이정순 박사를 친구한테 소개받아서 한번 해자고 했는데, 박사님도 처음에는 약간 당황한 거죠. 7월 말 8월 초에 의뢰했는데 답변이 오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어요.
결과를 보고 저도 놀랐던 게 온실가스 효과가 진짜로 되는 거예요. 모형실험을 해봤더니 이산화탄소하고 육불화황이라고, 특히 육불화왕은 강력한 온실가스인데 그 온실가스가 있는 데에광을 쏘니까 공기하고 3개를 비교해서 보니 온도 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온실효과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고요.“
KBS 1TV <시사기획 창> ‘흙, 묻다’ 편 |
탄소는 공기 중에 있으면 기후위기의 주범이지만, 신기하게도 땅속에 있으면 흙을 더 기름지게 만든다고 하던데요.
”나무나 풀이 유기물이잖아요. 그 유기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 탄소는 몸에 갖고 있고 산소는 배출하잖아요. 그래서 식물을 심으면 산소가 많이 나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CO2에서 O2를 빼면 C가 남잖아요. C는 나무나 이 생물체들의 몸이에요. 그 몸이 땅속에 들어가면 퇴비가 되죠. 그렇게 하면서 땅을 건강하게 해요. 그런데 이게 공기 중으로 가면 CO2가 되잖아요. 그럼 온실효과가 나타나는 거고, 이게 아이러니한 거예요.
과거에 우리 흙이 건강했다는 것은 흙에 탄소가 많았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흙에 있던 탄소가 다 대기로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재앙이 된 거죠. 그러면 재앙의 원인인 탄소가 공기 중에 올라갔으니, 올라간 탄소를 다시 땅속에 집어넣으면 재앙이 사라지지 않겠냐가 프로그램 취지입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죠. 인위적으로 하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에너지가 들어가는 방식이면 또 다른 온실가스가 나오는데 자연농업은 인위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추가 에너지가 들지 않으니까 온실가스만 줄일 수 있죠.”
취재하며 느끼신 게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너무 풍요롭게 사는데 풍요를 조금씩만 줄이자. 좀 불편하게 살자. 불편하게 살면서 미래 세대에 좋은 지구를 물려주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큐멘터리 마지막 음악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예요. 제가 다큐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천 번 가까이 들었거든요. 후손들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만들었는데 우리 현세대가 덜 풍요롭게, 약간 불편하게 살면서 온실가스를 줄여 좋은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는 게 제 의도입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학자들은 너무 늦었다고도 하는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생활 패턴이나 산업의 패턴을 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걸 취재했는데 다 담을 수 없었던 게 아쉽습니다. 방송 시간이 한정돼 있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최근 UN 산하 IPCC(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말했다시피, 지금 기후변화의 주범은 누구냐 하면 인류거든요. 지금 기후재난이라 불릴 만큼 상황이 심각한데, 인류가 그런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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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객원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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