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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정권” 비난하는 윤석열, ‘통신자료 조회’ 둘러싼 오해와 진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통신자료 조회 의미 알면서도 “사찰” 주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 선대위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1.12.30.ⓒ뉴시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서서 죽겠다. 야당 대선후보까지 사찰하는 ‘문재명’ 집권세력에 맞서 정권 교체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전방위적인 ‘사찰’을 벌이고 있다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의 격한 표현이다.

또한 윤 후보는 이날 대구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많은 언론인들 통신 사찰하고, 우리당 의원의 60~70%가 통신사찰을 받았다. 저도 저, 제 처, 제 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을 했다”며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막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도 “불법 사찰”이라고 규정하며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일각에선 ‘공수처 해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진욱 공수처장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인다. “검찰과 경찰도 조회했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한 것 같다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윤석열이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이유는 있었다

논란은 최근 공수처가 윤 후보와 그의 아내 김건희 씨에 대해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최근 공수처는 윤 후보에 대해 3회, 김씨에 대해 1회 통신자료 조회를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이 먼저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후 김 공수처장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사실임을 확인했다. 윤 후보의 통신자료 조회 시기는 9~10월, 김씨에 대한 조회 시기는 10월이었다.

이에 윤 후보는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기관을 만들어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국내 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되면 공수처의 불법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한 바 있다.

하지만 공수처 입장에선 억울한 모양새다. 법사위에 출석한 김 공수처장은 ‘윤 후보 통신자료 조회 이유’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원칙적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지만 국민적 관심이 됐기에 말하자면, 현재 수사 중인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윤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지난 9월부터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수사 과정에서 불가피한 통신자료 조회였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윤 후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도 4회, 인천지검 1회, 서울경찰청 1회, 관악경찰서 1회씩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김씨에 대해선 서울중앙지검이 5회, 인천지검이 1회 통신자료를 들여다봤다. 최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김 공수처장이 “검찰과 경찰도 조회했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느냐”고 항변한 이유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그런데 문제는 윤 후보를 비롯한 사건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도 숱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자당 국회의원들도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집계에 따르면 31일 오전 8시 기준으로 국민의힘 의원 105명 중 86명에 대해 공수처가 지난 10월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 의해서 통신자료를 조회 ‘당한’ 의원들까지 모두 합치면 88명에 달한다.

이에 국민의힘은 “무소불위 권력의 불법 사찰 민낯이 드러났다”고 반발하며 김 공수처장을 고발했고, 시민단체도 “불법 사찰”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국민의힘은 선거대책본부에 ‘문재인정권 불법사찰 신고센터’도 차리며 정권 차원의 불법 사찰 의혹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대로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정말 불법일까.

통신자료 조회가 뭐길래?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이 되기는 어렵다.

여기서 언급되는 ‘통신자료’는 통신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입자 개인정보를 뜻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통신사 가입일과 해지일 등 6가지 정보만 담긴다. 통신사 가입자의 통화내역 등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담긴 ‘통신사실확인자료’와는 다르다.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 일부ⓒ독자 제공

통신자료 조회는 통상적으로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있는 수사 대상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된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피해자나 참고인 등 수사상 반드시 연락할 필요가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목적 등으로도 실시된다.

예를 들어 A씨가 수사 대상자인데 그가 누군가와 통화했는지 수사기관이 꼭 확인해야 한다고 치자. 그래서 수사기관이 법원으로 영장을 받아 A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살펴봤다. 그런데 통화 상대방 중 모르는 전화번호를 발견했다면? 수사기관은 그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이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군지를 통신자료 조회로 확인하는 것이다.

통신자료 조회의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다. 이에 따르면 재판이나 수사 등을 위해 수사기관에서 필요할 경우 통신자료 열람을 할 수 있고, 통신사는 이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범위도 가입자 이름 등 6가지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 근거한 통신사실확인자료와 달리 법원의 허가, 즉 영장도 필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해서 ‘불법 사찰’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윤석열은 통신자료 조회가 뭔지 알고 있었다

이를 검사 출신인 윤 후보가 모를 리가 없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검찰은 통신자료 조회를 무수히 많이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검찰이 통신사로부터 받은 가입자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총 342만3천572건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민감한 통화내역까지 담겨 있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검찰이 확인한 ‘통신사실확인자료’도 같은 기간에 총 23만7천176건에 달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 모두 과거에 비해 점차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 후보가 과거에는 ‘통신자료 조회는 사찰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상반된 발언도 공개적으로 한 사실 역시 확인됐다.

검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이날 법사위에서 2017년도 국정감사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후보가 고 노회찬 의원의 통신자료 조회 추궁에 대해 ‘통신자료제공은 통화내역 조회 같은 것이 아닌 가입자 조회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윤 후보는 당시 “통신 조회는 통화 내역이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는 통신 조회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라며 “어떤 혐의자 또는 참고인에 대해서 법원에 영장을 받아서 통화내역을 조회했는데 (통화) 상대방이 수십, 수백 명이 나오면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것이고) 그 중 한 사람으로서 (통신자료 조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수사 대상이 아니어도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 조회를 당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에 소 의원은 윤 후보가 공수처의 합법적인 통화내역 조회를 사찰이라고 비난하고 공수처장을 구속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바꾸기’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위헌적인 제도임에도 윤 후보 자신이 검찰총장직에 있었던 검찰은 물론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자행해 온 것”이라며 “게다가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재직 중 수차례 있었던 사찰 및 검찰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 받고 있는 피의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윤 후보는 자신과 관련된 사찰 논란에 대해 먼저 해명과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일방적인 통신자료 조회, 법 개정 시도했지만 새누리당이 막았다

참여연대가 언급했듯,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가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공수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검찰이나 경찰이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마다 논란이 되곤 했다. 민간에도 알게 모르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제다.

공수처가 이번 논란에 대해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 등을 빚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 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유다.

이에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원의 영장도 받지 않은 채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통신자료 조회가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법 개정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5년 11월 18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구할 때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박민식, 배덕광 의원이 반대했다. 소위원장이었던 박민식 의원은 “사실 이것까지 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수사를 못 하게 된다”라며 반대했고, 배광덕 의원은 “국가기관이 일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며 반대했다.

새누리당이 국민의힘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보면, 지금 국민의힘이 ‘불법 사찰’을 운운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당시 회의 기록을 공개하면서 “그러게 진작에 저희가 수사기관의 통신 자료 요구를 제어할 수 있는, 아니면 적어도 본인 자료가 제공됐다는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만들자고 주장해왔던 것 아니냐”며 “국민의힘은 이번 일을 정치공세로 만들 생각만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이참에 법을 개정하자”고 촉구했다.

2016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무단수집 행위는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며 그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조항도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5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결국 해묵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은 관련 법이 개정되거나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와야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통신자료 조회는) 헌법의 영장주의를 무력화하는 위헌적 제도”라며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을 바꿔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법원의 영장주의가 관철되도록 입법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헌재 역시 참여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의 심판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가 정보 주체인 당사자에게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수사기간이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사실을 알려면, 통신사 가입자가 통신사에 직접 ‘알려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그나마 이것도 최근 1년 동안 이뤄진 것만 확인할 수 있다.

통신자료 제공의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은 ‘제공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기 때문에 통신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되는데, 수사기관의 요청에 통신사가 기계적으로 가입자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2020년 6월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 등 사업자로부터 가입자 통신자료를 요청해 제공받더라도 이용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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