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결산, 언론·미디어 10대 이슈] 언론중재법 징벌적손해배상 도입 논란에 기사형광고로 불거진 연합뉴스 포털 퇴출 사건까지
① 김태호PD의 MBC 퇴사
MBC 예능의 상징, 김태호PD가 MBC 퇴사를 결심했다. 20년간 일했던 회사를 떠난다. 김태호PD의 퇴사는 지상파 플랫폼 중심의 콘텐츠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넷플릭스에서 김PD가 연출한 ‘먹보와 털보’를 보고 있다. 향후 김태호PD의 콘텐츠가 웨이브나 넷플릭스, 카카오 등에서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2022년은 본격적으로 OTT가 콘텐츠 트랜드를 주도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게임’, ‘지옥’,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어느 날’, ‘술꾼도시여자들’, ‘SNL코리아’ 같은 OTT 오리지널 콘텐츠는 이미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이제 2000년 지상파 독과점 시대에 머물러 있는 방송법 등 법제의 전면 개정도 더는 미룰 수 없다.
② 언론윤리헌장이 무색했던 언론인 윤리 위반
한국기자협회가 올해 1월 언론윤리헌장을 선포하며 언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현장언론인들의 ‘분투’를 당부했지만, 헌장 선포가 무색한 한 해였다. 조선일보‧TV조선‧중앙일보 등 전‧현직 기자들이 수백만 원의 골프채와 차량 등 다양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TV조선 기자는 대학원 학비까지 받았던 정황이 드러났다. MBC 기자는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취재하며 경찰을 사칭했다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받고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밖에도 ‘보복 취재’하고 ‘부업’하는 기자들이 전국에 있었다. 올해 기자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인물은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이다. 오랜 법조기자 출신으로, 현직에 있으면서 ‘화천대유’라는 자산관리 회사를 세워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해 6000억 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상태지만, 아무개 기자는 김만배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블랙코미디다.
③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2위, 유재석
지난 9월 ‘시사IN’의 신뢰하는 언론인 조사에서 손석희 JTBC 순회특파원(12.4%)에 이어 방송인 유재석씨가 5.1%로 2위를 기록했다. 만약 손석희가 없다면 우리는 1991년 KBS공채개그맨 출신의 방송인이 신뢰하는 언론인 1위를 기록하는 현실을 접할 수도 있다. 아마 그 전에 시사IN이 관련 조사를 멈출 수도 있다. 이러한 장면은 그만큼 뉴스이용자들이 신뢰할만한 언론인을 떠올릴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부 여당 편향으로 비판받는 김어준씨의 경우 유재석씨에 이어 3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강한 정파성을 보일수록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도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신뢰하는 언론사를 묻는 질문 역시 ‘모름/무응답’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언론 불신의 시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④ 연합뉴스 포털 퇴출 사건이 남긴 것
지난 24일 연합뉴스가 네이버와 카카오를 상대로 낸 ‘계약해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연합이 다시 포털 뉴스화면에 복귀했지만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다. 올해는 연합뉴스 포털 퇴출의 시작점이었던 기사형 광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그 어느때보다 많았고 관련 법제도 개선 논의 또한 활발했다. 더불어 이 사건은 ‘탈 포털’ 논의를 확산시켰다. 포털이 국가기간뉴스통신사를 ‘공론장’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여당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야당도 지속적으로 포털의 ‘여론 조작’ 가능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포털 뉴스 서비스의 대대적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 또한 해체 수준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로 언론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질까? 아무도 모른다.
⑤ 유료부수 시대, 막을 내리다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ABC협회가 매년 내놓던 부수공사 지표를 더 이상 정책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유료부수’ 사망 선고를 내렸다. 앞으로는 조선일보 몇 부, 중앙일보 몇 부로 그 신문의 영향력을 증명하기 어려워졌다. 유료부수는 한껏 부풀려져 있었다. 신문사는 보지도 않는 신문을 찍어내고 신문지국은 그걸 파지로 팔며 돈을 벌었다. 국회의원들의 고발로 경찰은 조선일보 신문지국을 압수 수색하고 수사 중이다. ABC협회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신문업계에 만연했던 부조리를 알렸고, 도덕성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문체부는 유료부수 대신 열독률과 사회적책임 지표를 통해 정부광고 집행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어쩌면 인쇄매체 시대의 끝을 알린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⑥ 꽁꽁 숨겼던 정부광고 언론사 집행내역, 풀렸다
지금껏 정부 광고는 알게 모르게 언론사를 길들이는 당근과 채찍 역할을 했고, 지금껏 어느 언론사에 얼마나 집행되어 왔는지 국민들이 알기란 매우 어려웠다. 문제는 정부광고 규모가 연간 1조가 넘고, 우리의 세금으로 집행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국가기관의 정부광고 집행 내역 정보공개 요구를 거부(부분공개)한 것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고, 이후 문체부와 언론재단이 집행 내역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결정했다. 앞으로는 시장이나 기관장 마음에 따라 정부광고를 주기 어려워졌다. 투명한 정부광고 집행 기준만큼 중요한 건 집행내역의 투명한 공개였다. 2022년은 “언론사와 정부광고주의 부적절한 결탁”(전국언론노동조합)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길 바라며.
⑦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논란
올해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법제도 논의가 쏟아졌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법‧제도는 없다. 허위조작보도에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올해 언론계 최대 쟁점이었다. 이 같은 안을 담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난 9월 말 본회의 앞에서 야당과 언론현업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막혔다. 지면은 ‘언론재갈법’으로 뒤덮였다. 여당은 권력의 봉쇄소송이 늘어나고, 실제 피해구제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에 부딪혔고 돌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여론조사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담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국민의 76.4%가 찬성했다. 법안에 반대했던 언론현업단체와 야당은 빠르고, 합리적인 언론보도 피해구제를 위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반대’로 당장의 상황만 모면하려 했다면, 더 강력한 ‘타율규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⑧ 법조기자단의 카르텔을 무너뜨린 법원
검찰과 법원으로부터 취재 편의를 얻는데 기자단의 허락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시작은 상식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렇게 기자단 밖에 있던 뉴스타파‧미디어오늘‧셜록이 민변과 함께 공익 소송에 나섰다. 미디어오늘은 서울고등법원을 상대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나섰고, 11월19일 서울행정법원은 “기자실 사용허가 및 출입증발급허가는 출입기자단의 판단에 맡길 수 없다”는 판결을 냈다. 판결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이제 누가, 어떻게 검찰과 법원 출입 기준을 정할지를 언론계 안팎에서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법조기자단의 카르텔 해체를 알린 법원의 판결은 앞으로 기자단의 관행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 분명하다. “이제 기자단이 배타적 특권을 누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매체의 취재를 봉쇄하던 시대는 지났다.”(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⑨ ‘김어준 저널리즘’
오늘날 TBS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정파적 저널리즘의 ‘대명사’다. 정의당은 “명비어천가”라며 ‘뉴스공장’ 출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압도적인 청취율 1위이며, 지난 9월엔 프로그램 5주년을 맞았으며, 올해도 각종 사건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2022년 TBS 출연금을 123억원 삭감하는 예산안을 제출했고,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선 2021년보다 13억원 증액한 388억원 예산안을 의결해 충돌했다. “예산을 무기로 목을 조이는 것은 폭거”(한국PD연합회)라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김어준씨 또한 자신을 향한 ‘편향’비판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추락은 불가피하다. 언론계로써는 “김어준 저널리즘은 언론 불신 시대의 증표”(김준일 뉴스톱 대표)라는 지적을 곱씹는 한 해이기도 했다.
⑩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힘겨운 승리
3월19일, MBC ‘뉴스투데이’ 작가로 일하다 계약 해지된 작가 2명이 MBC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했다.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무늬만 프리랜서’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는 5월13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부당해고된 지 3년, 사망한 지 1년3개월 만이었다. 방송사 내 불안정 노동에 전환점이 될 판례들이 속속 등장하며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윽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30일 지상파3사 보도·시사교양 방송작가 152명의 노동자성을 공식 확인했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쉽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부처 노력과 더불어 언론계의 자성과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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