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이 지구로 날아오고 있다. 한순간에 인류를 지구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혜성이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천문학과 대학원생은 패닉에 빠진다.
"우린 모두 죽을 거야."
대학원생과 교수는 다가오는 멸종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백악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만 몰두해있는 대통령은 들어줄 생각이 없다. 결국 이들은 언론으로 향한다. 어렵게 출연하게 된 인기 생방송에서 혜성에 관해 이야기해도 진행자들은 시답잖은 농담만 늘어놓는다. 결국 대학원생은 폭발한다.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저희가 하려는 말은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란 얘기예요.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매일 밤 지새우면서 울어야 해요. 우리 모두 100% 죽는다잖아요."
작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돈룩업>(아담 맥케이 감독)의 내용이다. 혜성 충돌을 두려워하면서 울부짖는 대학원생의 말은 기후위기가 닥친 지구의 상황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째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알던 지구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인류의 생존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가 변해버린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대학원생의 지구 멸망에 대한 외침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모두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서서 대책을 마련했을까? 아니면 많은 이들이 대학원생의 말에 감명을 받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을 압박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혜성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기는 했을까?
물론 모두 아니다. 대학원생은 방송 중에 울면서 뛰쳐나간 '이상한 애'로 불렸고, 그녀의 발언은 조롱거리가 되어 인터넷상 '밈'으로 소비됐다.
이상하다. 분명히 대학원생의 말에는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혜성이 지구로 오고, 지구 전체가 파괴되는 사실은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임도 틀림없다. 그런데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사회는 오히려 그녀의 외침에 무관심하다.
똑같은 이야기를 기후변화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기후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충분하게 감소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며 경고를 한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며 거리로 나선다. 그런데도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환경보다는 개발이 더 솔깃한 주제다.
호주 출신의 사회과학자이자 작가인 리베카 헌틀리의 책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리베카 헌틀리 지음, 이민희 옮김, 양철북 펴냄)는 이러한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보다 감정이 중요하다
책의 저자인 헌틀리는 "기후변화 과학은 과학적 연구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장 확실하게 증명되었다"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지난 28일 발표된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의 제2실무그룹 6차 보고서만 봐도 그렇다. 67개국 27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수만 개의 논문을 검토해서 작성했다. 거짓이 끼어들 틈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기후변화의 과학적 사실은 확실하다.
저자는 그래서 '이젠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심리에 비하면 과학은 단순해 보인다는 것이다.
"더 많은 과학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해결책이다. 즉 이성적이면서 감정적이고 변덕스럽고 창의적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헌틀리는 그 예시로 본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헌틀리는 평소 기후변화가 미래에 심각한 위험이 되리라고 믿었고 환경 단체에 기부도 했다. 환경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환경 의식은 있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평가했다. 다만 환경 문제는 핵심적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고려해야 할 소재일 뿐이었다. 그랬던 헌틀리는 TV 뉴스의 한 장면을 보자 "내 안의 뭔가가 꿈틀한 순간"을 느꼈다고 한다. 청소년 수백 명이 학교를 빠지고 거리에 나와 기후변화 시위를 하는 '기후 파업'이었다.
"수많은 어른이 그 기후 파업을 보고 '배워'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바뀌었다. (…)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실제 위협에 대한 경각심으로 바뀐 그 전환의 순간은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의 보고서를 읽거나 기후학자가 발표한 이산화탄소 수치를 듣고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큰딸보다 고작 몇 살 많은 한 무리 아이들이 거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에 반응했다. 기후변화 문제가 갑자기 내 문제가 되었다."
그저 한 감정이 풍부한 개인이 겪은 전환의 순간에 불과할까? 그렇다기에는 우리는 일상에서 감정과 행동 사이의 관계를 항상 느끼며 살아간다.
다시 헌틀리의 경험이다. 이번엔 매일 들고 다니던 텀블러를 두고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시게 될 때 한 인간이 겪는 마음의 소리다.
"회사 동료들은 곧 내가 일회용 컵을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것이다. 내 모든 연구와 집필 활동의 초점이 기후변화라는 걸 알고 있으니 나를 위선자라고 생각하겠지. 아아, 재활용에 집착하는 크레이그 씨가 내 뒤에 없어야 하는데...어쨌든, 이 일회용 컵 하나가 그렇게까지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닐 테니까..."
이 복잡한 사고 과정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보인다.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는 죄책감, 다른 이들에게 위선적인 모습으로 보일까 봐 하는 두려움, 수치심 등. 이런 복잡한 감정은 "텀블러를 다시는 놓고 오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에 이르게 한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헌틀리는 '감정'이 사람들의 행동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을 지속해서 강조한다.
죄책감, 공포, 분노, 부정, 절망, 희망, 상실, 사랑..기후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분노'하게 되면 더 많은 행동에 나서게 될까? 아니면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기후 재난의 '지옥도'를 더 많이 목격해 '공포'가 생기면 온실가스 저감 대책에 나서게 될까? 헌틀리는 책에서 10대 기후 활동가부터, 탐조 활동을 하는 보수단체까지 다양한 이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기후변화와 심리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
그 중 헌틀리가 강조하는 감정은 '사랑'이다. 우리가 알던 지구가 무너져가는데, 기후변화와 사랑이라니. 썩 어울리는 단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헌틀리는 "사랑으로 출발하라"라고 말한다. 연애의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나와 주변 사람들이 아끼는 장소, 음식, 직업, 취미 뭐든 괜찮다. 내가 지키고 싶은 관심 대상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일은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과 관심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적 논쟁에 담긴 해로운 갈등과 미디어가 제공하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감정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기후변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책은 이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누군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자연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 책은 기후변화 운동에 대한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로 읽힌다. 내 안의 다양한 감정들이 어떻게 나의 행동을 이끄는지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상대방, 특히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알게 해준다.
"나는 이 책 초반부에서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자신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약속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자신의 반응과 타인의 반응을 함께 이해하면 일상의 기후 침묵을 깨는데 필요한 통찰력과 기술을 갖추게 될 것이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답답하고, 기후변화에 대해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화가 났던 이들에게 책이 주는 답은 명확하다.
"더 많은 논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라."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리베카 헌틀리 지음, 이민희 옮김)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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