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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이겼다

[진단] 두 교수의 '국민의힘 선거 전략' 평가... "혐오 껴안은 보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

22.03.10 05:33l최종 업데이트 22.03.10 09:07l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자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자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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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승리했다.

혐오와 배제를 전략으로 내세웠던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었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시민단체, 언론 등을 향한 혐오 정서에 편승해 갈라치기에 나선 대통령이 앞으로 대한민국 5년을 이끌게 된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변되는 윤 당선인의 '여성 공약'은 선거 내내 이슈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내세우고, 채용면접 과정의 성차별 현실을 왜곡하는 듯한 TV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한 선거일 전날에도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페이스북에 거침없이 올렸다. 이에 더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 말을 거둬들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기조는 남성 중심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된 요구 사항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 등에 나름의 이유를 붙였으나 결국 '여성 혐오'에 편승한 공약이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도 결국 '투표를 덜 하는' 여성을 배제한 채 2030을 장악한다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이같은 전략은 여성을 상대로만 이뤄진 게 아니었다. 윤 당선인이 이주노동자들이 "숟가락을 얹고 있다"며 내놓은 '외국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요건 강화'도 외국인 혐오 정서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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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치지 않고 윤 당선인은 노동조합을 "미래 약탈 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시민단체를 "권력을 지지하는 부패 카르텔"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급기야 언론노조를 향해서도 "강성노조의 전위대" "못된 짓의 첨병 중 첨병" 등의 거친 말을 쏟아냈다.

과거 대선을 돌아보면 혐오와 배제의 전략에 동원된 것은 '색깔론' 이념 공세가 주로 활용됐다. 분단 상황을 이용한 갈라치기가 보수 세력의 전형적인 선거 전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그 영역이 여성, 외국인, 노동자, 시민단체, 언론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물론 이러한 선거 전략이 대성공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두 후보의 득표 격차가 초박빙으로 나온 것은 갈라치기에 저항하는 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국민의힘의 개표상황실이 당혹감에 휩싸인 것은 격차가 너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20대 여성의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로 결집한, 전략의 허점이 확인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이 최종 승리를 거뒀고, 국민의힘이 이례적으로 2030 세대 득표에서 선전하고, 특히 2030 남성의 열성적 지지를 맛봤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마이뉴스>는 20대 대선의 이 같은 양상, 특히 혐오와 배제에 기반을 둔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이 대한민국 사회에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 박구용(전남대 철학과)·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를 통해 들어봤다. 두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는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인 8일 오후와 9일 오후에 진행됐다.
 
"국민의힘, 트럼프와 아베의 한국 버전"
"특정 정당 넘어 한국 정치 전체의 실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8일 오후 대전 유성구 노은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8일 오후 대전 유성구 노은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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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 대선후보의 혐오에 편승한 선거운동을 어떻게 바라봤나.

박구용 :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동향을 보면 진보와 보수의 간격이 대체로 좁혀지고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줄어들면서 사회가 안정되고 상호 존중의 길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민주주의가 나름 안정적으로 정착된 사회일수록 그런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은 정치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전반적으로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소수였던 이 세력이 점차 커지자 각 국가들은 두 가지 방향을 택했다. 하나는 보수 세력이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향이었다. 대체로 북유럽·서유럽이 그랬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독일이 극우정당을 극복하기 위해 대연정 혹은 대연정에 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전혀 다른 길을 간 나라들이 있다. 보수 세력이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성공한 케이스다. 미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북한, 한국, 중국 등을 상대로 혐오를 부추기는 아베식 극우 정치로 인해 극우화했다. 미국은 트럼프가 등장하며 나름의 도덕적 우위를 갖는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국민의힘이 이러한 미국과 일본의 한국식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준석이라는 가장 젊은 보수가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정치가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큰 재앙이다. 혐오의 정치는 쉽다.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갈라치고 적과 동지를 가르면 모든 걸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정치가 문제인 이유는 전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그랬고 아베가 그랬듯, 인류가 공통적으로 합의해온 것에서 역행할 수 있는 것이다."

홍성수 : "혐오는 대중 사이에 존재할 때의 국면과 그것을 정치인이 이용하기 시작할 때의 국면이 완전히 다르다. 해외 사례를 봐도 혐오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 그 파급력과 부정적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지금껏 그런 조짐들이 보였지만, 대선이란 큰 이벤트에서 일부 정치인이 아닌 후보가 직접 그런 캠페인을 전개한 적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누가 당선되는지와 무관하게 이런 선거 캠페인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둘 순 있어도 중장기적으론 절대 그래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비판과 감시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 윤 후보가 승리한다면 어떤 점이 우려되나.

박구용 : "우선 윤 후보가 당선돼도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면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갈라치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혐오를 끌어들여 자기정당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말했듯 인류 전체가, 세계시민사회가 합의해온 것들을 건들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문화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지금 문화적으로 뒤쳐진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뒤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해 국가가 에너지를 혐오에 사용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갈등을 해결하는 데 써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라는 의견도 있는데, 개개인에겐 그럴 수도 있지만 나라 전체의 경쟁력 차원에선 큰 상관이 있다."

홍성수 : "(그동안 대선을 떠올려보면) 선거 때 다소 극단적 언사를 내놓던 후보라도 당선되고 나면 대체로 '나는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지만, 사실 혐오로 한 번 재미를 본 세력은 언제든 그것을 향후 통치술로 사용할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거나 지지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그렇다. 혐오의 정치는 확대재생산 및 지속 가능성이 높다."

- 만약 윤 후보가 패배한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박구용 : "중요한 분기점이자 굉장히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른바 태극기부대의 혐오는 일시적이고 감정적이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준석이 만든 혐오는 조직적이고 기획적이며 보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홍성수 : "그런 식의 선거운동이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패배하더라도 교훈을 다른 쪽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겠나. '혐오 정치의 실패다'라고 결론을 내리면 다행이지만 '그건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부족했다'라는 교훈을 도출할 수도 있다. 아무튼 윤 후보가 패배하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그와 국민의힘이 보인 모습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안 좋은 교훈을 줄 가능성이 크다."

- 만약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우려가 해소되는 건 아니겠다.

박구용 : "당연히 그렇다. 혐오가 통한다는 건 전통적 의미의 정치가 부재하고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정치가 엘리트화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보통의 대중이 '정치인들이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는 대중이 혐오적 발언을 내뱉는 세력을 좋아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민주당도 기본적으로 엘리트정당화 됐다.

(민주당에) 정치가 부재하니 대중의 일상과 멀어져버렸고, 그러다보니 이준석의 말에 20대 남성들이 훅 가버리는 것 아닌가. 이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 민주당으론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신호는 이재명 같은 사람이 대선후보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샌더스를 대선후보로 만들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민주당은 그나마 낫다."

홍성수 : "사실 국민의힘의 갈라치기 전술을 모두가 다 예상하지 않았나. 애초에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돌아봐야 한다. 실제로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 나왔을 때 민주당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선거 막판에 가서야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혐오에 대한 심각성과 관련해 국민의힘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당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만약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혐오는 언제라도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혐오를 정치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넓게 보면 한국 정치 전체의 실패이다. 특정 정당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치가 그런 선거 캠페인에 여지를 줄 만큼 취약해진 것이다. 민주당이 이기더라도 이런 정치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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