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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값 폭등 ‘기승전결’…한국, 피해 완화 정공법과 멀어지나

화물노동자 6.5%만 보호하는 안전운임제…그나마도 법적 시한은 올해까지

 
지난 28일 경기 수원시의 한 화물차 공영주차장에 화물차와 중장비 차량들이 운행을 나가지 않고 주차돼 있는 모습. 2022.3.28. ⓒ뉴스
 
 러시아발 국제 유가 급등으로 국내 경유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유가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디젤차를 모는 화물노동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유가 변동과 운임을 연동하는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돼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figcaption>
3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전국 주유소가 판매한 자동차 경유 평균 가격은 1,920원이다. 지난 1월 1일 1,442원에서 478원(33%) 올랐다. 오일 쇼크 정점이던 2008년 이후 최고치 수준이다.

경유 가격 폭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됐다. 경유는 원유를 정유해 만든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경유 가격도 오른다.

전쟁으로 유럽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유럽은 2022년 말까지 러시아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이미 현장에서는 러시아 원유 수입이 줄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반러 여론이 일고 선사들이 러시아 항구 입출항을 중단하자, 유럽 정유사가 러시아 석유를 구입하지 않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물량은 중동에서 충당한다.

미국도 러시아 원유 수입을 금지해 중동 원유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국제 원유 시장에서 러시아 물량이 배제되고 중동 원유에 수요가 몰리자 유가가 뛰었다. 국제 원가 기준이 되는 대표 유종인 서부텍사스원유(WTI)·브렌트유·두바이유의 이번달 평균 거래 가격은 1월 대비 각각 31~37%씩 올랐다.

유럽의 러시아 금수조치 대상에는 경유도 포함됐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경유 의존도가 높다. 독일은 경유 수입 물량에서 러시아 물량이 30%를 차지한다. 프랑스는 25%, 영국은 18%에 이른다. 유럽 국가 전반적으로는 러시아 의존도가 약 50%에 달한다.

유럽 정유사들은 코로나19로 차량 이동이 감소해 경유 생산을 줄이는 와중이었다. 재고가 줄어든 상황에서 러시아 수입을 줄여 수급 불균형이 심해졌다. 유럽은 디젤 차량이 많아 경유 수요가 크다는 점도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SK에너지·GS칼텍스·S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러시아로부터 경유를 수입하지는 않는다. 수입한 원유로 경유를 만들어 판다.

정유사도 러시아 원유 도입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물량 일부를 비싼 중동 원유로 대체하게 된다. 한국의 러시아 원유 수입 비중은 5% 정도다. 러시아 의존도가 높지는 않지만, 국제 유가 상승 여파를 받는다. 또한, 선사들이 원유 운반 배삯을 올려, 정유사의 원가 부담도 커졌다.

정유사는 주유소에 공급하는 경유 가격을 국제 시장 가격에 연동한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현물시장 가격에 세금과 판매관리 비용, 운임 등을 더한다. 정유사별로 이윤을 얼마나 남길지 경영 판단도 들어간다. 원유를 들여올 때 환율도 따져야 한다.

국제 시장 가격이 주유소 판매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2~3주 시차가 있다. 정유사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1주 전 평균 가격을 반영해,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를 산정한다. 주유소는 통상 1~2주치 재고를 쌓아둔다.

실제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과 주유소 판매 가격을 보면,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은 지난 1월 1주차 평균 676원에서 이번달 2주차 평균 1,221원으로 매주 올랐다. 주유소 판매 가격도 1,440원에서 1,918원으로 지속 상승했다. 이 기간 두 시장 경유 가격은 각각 545원, 478원 올랐다.

한국 경유 가격이 단기간에 다시 급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정세 불안에 따른 원유 수급 불균형이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태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쟁 이슈로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가 나오고 있어 전망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기는 어려운 만큼, 시간이 갈수록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국제 경유 가격은 하향 전환했다. 1,200원대를 돌파하던 것이 이번달 3주차에는 980원으로 떨어졌다. 4주차와 5주차는 각각 1,130원, 1,110원을 기록했다. 다소 등락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내림세가 감지되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흐름이 다음달 초에 주유소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주유소 가격이 정해지는 구조를 봐도, 하향세를 단언하기는 무리가 있다. 정유사는 국제 가격뿐 아니라 여러 요소를 고려해 도매가격을 정한다. 개별 주유소도 디젤 차량이 얼마나 오는지, 근처 주유소는 얼마에 파는지 등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조정한다.

또한, 정유사는 국제 가격 상승은 빠르게 반영하면서, 하락할 때는 소극적으로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다. 4사가 과점하는 구조이기에 가능한 행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 가격과 국내 공급 가격은 추세적으로 연동되는 것이지, 정확히 동일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다”라며 “국제 가격이 극심하게 변동하는 시기에는 단기간 분석에 한계가 있어, 장기 경향성을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유소 평균 경유 가격 추이 ⓒ오피넷
화물노동자 보호 못하는 안전운임제…화주 반발에 확대 적용 난항

경유 가격 폭등으로 화물노동자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운송시장 동향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일반 화물차주 월 평균 유류비 지출액은 252만 8천원으로, 총 지출액의 42.7%를 차지했다.

2020년 평균 경유 가격은 1,189원이었다. 이번달 평균 경유 가격이 1,800원대라는 점을 반영하면, 유류비 지출액은 390만원 수준로 치솟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가 집계한 수치는 더 심각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평균과 비교할 때 12톤 이상 화물차의 유류비 지출은 약 175만원 증가했다. 유류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5톤 이하 화물차는 64만원, 무거운 철강재를 운송하는 25톤 화물차는 250만원 증가했다.

화물연대는 최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화물노동자 평균 월 순수입은 342만원으로 추산된다”며 “경유 가격 인상으로 100만~300만원 가까이 지출이 증가하면, 사실상 수입이 0에 수렴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화주-운수사업자-화물노동자’ 거래 구조로 이뤄진 화물 업계에서 유가 급등 부담이 화물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기업 화주는 유가가 올라도 운임을 높이지 않으면서 유가가 떨어질 때는 운임을 낮추는 행태가 일반화돼있다는 게 화물연대 설명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운임에 유가 변동을 연동하도록 협약을 맺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유가가 떨어질 때 운임이 깎인다”며 “특히 조직된 노동자가 없는 곳은 떨어지는 유가를 그대로 반영하면서 오르는 유가는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물노동자는 유가 상승을 운임에 반영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요구한다. 틀은 갖춰져 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 중이다. 안전운임은 원가비용과 최소 생계비를 반영한 최소한의 운임이다. 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주는 운임(안전운송운임)과 운수사업자가 화물노동자에 주는 운임(안전위탁운임)을 1년마다 고시한다. 안전운임을 지키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낮은 운임으로 화물노동자가 과로·과적·과속에 내몰리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유가 변동은 3개월마다 반영해 운임을 재고시한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안전운임에 유가 변동을 반영하는 주기가 3개월이라 시차가 있다”면서도 “화물노동자 지출 원가를 화주가 지불하도록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현재는 특수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에만 적용한다. 전체 화물노동자 40만대 중 컨테이너와 시멘트 화물노동자는 2만 6천대(6.5%)뿐이다.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 일반 화물차로 운반하는 품목은 배제된다.

법적으로 정해진 제도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일몰제로 시행되고 있다.

화물연대는 지속적으로 안전운임제 확대 목소리를 내왔지만,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화물차주 대표로 안전운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공익‧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 대표위원 총 13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는 안전운임을 정하고 안전운임 적용 품목 등을 논의한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주와 운송사는 안전운임제를 없어질 제도로 생각해, 품목 확대와 시한 폐지 등 요구에 협의해주지 않고 있다”며 “제도 확대는 법 개정 사안이라 위원회 권한도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안전운임제 시한을 없애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대한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화물연대뿐 아니라, 운수사업자 측도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는 화주로부터 받는 운임이 낮게 책정된 탓에 운수사업자가 화물노동자에게 각종 수수료를 징수하게 돼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몰제 기간을 1년 연장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정부·운수사업자·화물노동자 간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용달차 관련 협회는 용달차에도 안전운임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화주 측은 거세게 반대한다. 한국무역협회는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무역 업계 수출경쟁력에 피해가 초래된다며, 안전운임제는 폐지하고 차주를 위한 정책 보완을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화주의 희생을 강요한다며, 올해까지만 시행하고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유보적이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제도 효과과 영향을 분석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안전운임제를 일몰제로 3년 만에 없애버리면, 화주와 운송사 반대를 고려해 시범적으로 시작해 확대하자는 당초 취지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지난 28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경유를 주유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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