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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윤석열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5/07 08:41
  • 수정일
    2022/05/07 08: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⑦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배현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이 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일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4.6. ⓒ뉴스1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서육남(서울대 60대 남성)으로 불렸다. 첫 내각 인선 역시 비슷하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저희 인선 기준은 분야에 대한 전문성, 유능함, 직을 수행할 실질 능력”이라며 “국민들께 보여지기 위한 트로피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별, 지역, 연령에 따른 제한은 따로 두지 않고 부여한 직을 성실하게 제대로 수행할 최고의 전문가를 선보이겠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다양성과 포함(Diversity and Inclusion)의 가치와 실천을 ‘트로피 인사’라고 폄하하는 것은 처음 들어본다. ‘트로피 인사’라는 표현은 ‘트로피 와이프’라는 돈 많은 남성에게 성공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젊고 예쁜 아내를 가리키는 표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표현을 여성의 입으로 말하게 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양성과 포함은 ‘사회적 약자들을 그냥 좀 끼워주자’는 게 아니다. 사회구조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마다의 권력관계를 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이자 배제와 차별의 사회를 고치는 적극적인 평등의 실천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당선인은 줄곧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한날한시에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는데 성차별이 어디 있냐’는 식의 처참한 젠더인식을 드러내왔다. 공정하게 실력으로 선출하니 서육남이 뽑혔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능력이란 이런 것이다. 그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 이슈”라고 여겨지는가, 누가 “전문가”라고 여겨지는가 살펴봐야 한다. 이준석의 시험주의 수준의 공정 담론은 이준석이 만들어 낸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경제, 경쟁, 성장이 기본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민의식을 이준석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대 정당이 6월 1일에 있을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 후보로 내세운 후보들의 모습도 참담하다. 민주당의 후보는 17명 중 16명이 남성이고 국민의힘은 15명이 남성이다. 나이는 오육십대, 장애인은 없다. 후보 구성원의 획일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만들고 이로 인해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사람,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람, 탈시설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람, 돌봄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없다. 다양성의 실종은 후보군의 획일화에서만 드러나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MBC ‘100분 토론’ 22년 치의 주제와 토론자를 분석했다. 남성 대 여성 비율 9대 1, 평균연령 51.3세였다.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출연한 적이 없다. 최다 토론 주제는 정치, 사회, 경제, 안보 순이었다. 정말 그토록 여성과 장애인 중에는 토론자로 출연할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서육남으로 대표되는 고학벌 비장애인 중년 남성이 “전문가”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민’은 국가에 의해 승인된 결과로서 존재하고 있다. 국민의 힘이 되겠다고 한 그들이 말하는 ‘국민’에는 여성과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음을 그들의 발언을 통해 계속해 확인하고 있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고 하면서도 여성과 장애인에게 대놓고 ‘이곳에 너희들의 자리는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구조적 차별을 몸소 보여주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들은 구조적 차별의 결과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이해할 의지가 없다. 그들이 전혀 사고해보지 못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의제는 ‘그들의 국민’의 몫을 빼앗는 타자의 문제로 치부하며 지워내고 있다. 그들만의 ‘공정’은 철저한 가부장제 자본주의 시험만능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독식하는 것을 허용한다. 현재의 능력주의는 이처럼 구조적 맥락에 따른 견고한 차별을 뒷배로 하고 있지만, 그들은 시민들에게 인권과 다양성의 관점을 갖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형성된 경쟁과 성장 중심의 시민의식을 든든한 자양분으로 삼아 그들의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철저히 숨긴다. 끊임없는 배제가 일어나는 구조의 문제를 숨기고 개인의 실력, 노력, 성실함의 문제로 만들며 공고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납작하게 만드는 그들은, 이준석 대표와 같은 청년, 배현진 대변인과 같은 여성을 앞세워 ‘청년과 여성도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실은 이 둘이 그들의 “트로피”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치

국가의 입법, 행정의 영역에서 애초에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 사회는 인권, 다양성, 성평등, 노동, 정치, 생태 등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수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등과 평화를 사고하고 실천할 수 없는 괴물들의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괴물들의 파괴적인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여전히 무엇을 평가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획일적인 평가방식인 시험만능의 줄세우기 교육을 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교육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이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배제와 차별은 쉽고 다양성과 인권은 어렵다. 배제와 차별은 익숙하고 당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쉽다. 심지어 이젠 배제와 차별의 언어가 유희거리로 소비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돈이 모인다. 반면 자본가들의 절대 지표인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게 하는 “효율성”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다양성과 인권은 돈과 시간 모두 여유가 있을 때나 챙길 수 있는 사치 혹은 재미없는 잔소리 혹은 “트로피”로 폄하된다. 그러나 다양성과 인권은 소수의 이야기이기 전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다양성과 인권은 사회적 소수자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도시에서 공동체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탈시설운동도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늙으면 몸이나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 누구나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탈시설사회, 다시 말해 배제가 아닌 다양성과 포함의 사회는 내가 늙어도 내가 살던 집, 동네, 마을에서 내가 하던 활동들을 계속하며 살 수 있는 사회다. 다양성과 포함의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즉 서로에게 잘 의지하며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25일 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2022.05.05 ⓒ민중의소리


‘승자’라는 획일화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다양한 존재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획일적 기준에 의한 ‘정상’만이 허용되는 사회는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상상력을 차단하며 그 결과 ‘공동체’가 퇴보한다. 우리는 자본의 관점에 의해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사회의 구조는 자본가들과 정치 기득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정상과 비정상, 우월과 열등을 나누고 자격을 갖춘 사람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승인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어야 인정받는 사회의 구성원일 수 있다. 늙거나 아프거나 출산을 하거나 돌봄노동을 하거나 그 어떤 이유라도 ‘그들이 요구하는 능력’이 없어지면 누구라도 쉽게 배제될 수 있는 사회다. 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양성이 실종된 사회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비판적 사고능력을 지우고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시민들이 학습하게 한다는 점이다. 승자와 정상이 되기를 강요하는 교육, 미디어의 발화 등을 통해 시민들이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학습하게 만들고, 이를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견고해 보이는 이 사회구조에 시민사회는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이 사회의 희망이다. 다양성, 인권, 성평등, 장애, 성소수자, 이주, 나이, 노동, 빈곤 등의 사회운동은 권력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틀을 부수는 급진적인 개념이자 실천을 하고 있다. 이런 운동에 동의하고 동참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모두를 포함되는,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대선 결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결코 우리의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며, 다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것뿐이다.

쉽고 익숙한 배제와 차별에 맞서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로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에 맞서 모든 사람이 포함되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활동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적인 인간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폭력과 배제의 사회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계속해 함께 싸우고 연대를 강화하며 작은 승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작은 승리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치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가 꽉 막혀 있지만 사회, 문화, 미디어 등에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여전히 배제가 포함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키즈존을 시작으로 노00존이 널리 퍼지고 있다. 지난해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70%가 노00존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나에게 안락함, 유리함, 편안함을 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끄럽다고 어린이를 오지 못하게 하고, 불편하다고 노인을 오지 못하게 하고, 매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장애인을 오지 못하게 하고, 익숙하지 않다고 성소수자와 이주민을 오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나는 과연 언제까지 포함될 수 있을까? 경제력으로 차별하고,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고, 외모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과연 나는 언제까지 존엄한 존재로 살 수 있을까? 노00존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간이 확산돼야 하며 우리 사회는 모두가 포함되는 다양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사회부터 모두가 포함되는 다양성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공간부터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를 나서고 있다. 2022.05.06. ⓒ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인권, 다양성, 성평등, 노동, 생태 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의제들을 소외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는 그만큼 퇴보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지금도 할 일이 많지만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거꾸로 가는 시계 위에서 시민사회는 배제와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정치의 언어에 맞서 모두가 포함되는 언어를 발견하고 제안하는 동시에 공간과 제도의 변화를 모색하며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다치지 않도록 서로를 보듬으며, 서로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희망이 없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서로가 계속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는 구조의 변화와 문화의 변화가 함께 이뤄질 때 가능하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기본적인 인권법 제정을 하는 등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구조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동시에, 인권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서로의 곁을 지키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립된 섬에서 ‘오징어게임’처럼 외로운 승자독식의 생존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노예와 같은 모습을 벗어 던지고, 이제는 ‘정상’으로 규율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다채롭게 반짝이는 시민들로 변모하여 더 이상 어떠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괴롭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공간과 문화를 함께, 날마다 조금씩 더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보여주기 식 인사”라는 의미로 “트로피 인사”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토크니즘(tokenism)이다. 토크니즘은 사실은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전혀 실현되고 있지 않은 조직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 하기 위해서 사회적 소수자 몇 명을 “보여주기 식”으로 구성원에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포함된 사회적 소수자를 토큰(toke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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