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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산재' 속헹 추모제, '사장님'들은 편법을 찾았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가 지난달 산재 승인을 받은 가운데, 그의 첫 추모제가 18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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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하지 마시고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사장님이 못된 짓을 하거나 월급을 잘 주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도와줄 겁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중략)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만날 수 없으니 영상을 보냅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들... 제단 위 영정 옆 노트북 화면 속 네 사람.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고 누온 속헹씨 가족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헹씨는 2020년 12월 한파,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 비닐하우스 안 조립식 패널로 지은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산재 노동자다.

지난 5월, 죽음 약 500일 만에야 간신히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18일 추모제를 위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보내온 영상 속 속헹씨 어머니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불법 숙소 근절' 지침 무색...  편법 허가 받은 사장님들 
 
 
▲  고 누온 속헹씨의 가족들이 속헹씨의 죽음 진상 규명과 산재 승인을 위해 노력해 온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권리 찾기를 주저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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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승인 이후 처음 열린 속헹씨의 추모제는 당시 그와 동료들이 일하고 거주했던 경기도 포천시 비닐하우스 앞에서 진행됐다. 길 건너 생필품 매장에서 할인 세일을 알리는 고성이 이따금 들려왔다.
 
포천 이동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그가 사망한 곳은 외진 곳이 아니었다. 31년을 살다 간 그의 마지막 거주지 불법 기숙사는 죽음 이후 농장주가 철거해 지금은 사라졌다. 농장 바로 뒤로는 건축을 마친 빌라 단지에 '분양' 현수막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화장실 옆, 세탁기 옆에서 잤어요. 이렇게는 못 자겠다고 했는데, 그럼 주방에 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그 사장님, 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일한 만큼만,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고 싶습니다.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성추행도 당했습니다. 아플 땐 병원 가고 싶습니다. 월급 못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한국은 법 제대로 하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는) 돈만 생각했습니다."

속헹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 짠나씨는 캄보디아어로 당시의 울분을 토했다. 그의 말을 전한 통역 활동가도 함께 울었다. 한국 생활 8년 차인 짠나씨는 속헹의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요구를 했다.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자지 않게 해주고, 좁은 방에 여러 명이 살지 않게 해달라"는 기본권에 대한 요청이다. 

방글라데시 국적의 노동자 바부씨는 지난해 컨테이너로 지은 가건물에서 자다 죽을 뻔한 경험을 전했다. 그는 "밤 10시까지 일하다가 잤는데 개 짖는 소리가 나서 밤 12시에 나가보니 (숙소 바로 옆) 공장이 불에 타고 있었다"면서 "컨테이너에 불이 옮겨붙어 죽기 직전에 간신히 나왔다"고 말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의 동료 짠나씨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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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가건물 기숙사 하지 말랬더니... "24평 집에 8명 욱여넣고 숙박업"

실제로 속헹씨가 사망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및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방침을 마련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실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 목소리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가 지난 5월 방문한 경기도 포천 소재의 한 채소농장의 가건물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네팔 여성 노동자는 지난 3월 한국에 취업비자를 받고 일을 시작했으나, 고용노동부의 지침과 무관하게 열악한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4평짜리 아파트에 외국인 노동자 8명을 몰아넣고 집단 합숙시키는 사업주가 있다는 이야기도 접수했습니다. 그 아파트의 월세는 60만 원인데, 8명의 노동자에게 매달 받는 기숙사비는 (각각) 25만 원이랍니다. 이제 숙박업까지 하는 셈이죠."

경기 포천 지역의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실태를 고발해오고 있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최근까지도 정부의 지침을 꼼수로 변칙하고 있는 사업장을 발견했다.

"오늘날 이주노동자들 보면 1970년대 전태일이 보였다"

그는 "지난 3월 경기도 파주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에서 잠자던 인도 노동자도 자정 넘어 화재가 나 목숨을 잃었다"면서 "(지침 이후)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새 방침을 어기고 편법과 불법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허가를 받는 사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1980년대부터 노동 선교를 해 온 김 목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오늘날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1970년대 전태일이 보였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구조적 억압은 더 심화됐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후퇴 등 윤석열 정부 들어서 반노동적인 모습이 나오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했다. 
 
 
▲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최근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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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돌연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속헹씨의 산재 승인을 위한 법률 지원을 이어온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날 현장에서 고용 허가 주체인 우리 정부의 책임을 언급했다. 속헹씨의 경우 의료진들의 부검, 5인 이상 사업장이라는 조건 통과 등 산재 승인을 위한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공론화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해, 사망 사건의 산재 승인은 정부의 관심 없인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최 변호사는 "보통 이주노동자들은 갑자기 사망할 경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가 돌연사했을 경우 중대재해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속헹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산재 신청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유족들에게 산재 신청을 알리고 그 신청서를 직접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가 지난달 산재 승인을 받은 가운데, 그의 첫 추모제가 열린 날 이주노동자의 사망 추모 때마다 추도 염불을 진행하는 캄보디아 국적의 린사로 스님이 속헹씨의 명복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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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속헹씨의 이날 추모제는 캄보디아 국적의 린사로 스님이 그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함께 명복을 비는 순서로 시작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사망 진상 규명과 산재 승인을 도운 '지구인의 정류장' 등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사건 대책위원회 소속 시민단체를 비롯해, 그의 동료와 이주노동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국회의원 중에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대표 발의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참여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의 동료 짠나씨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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