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6.1 지방선거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보정당에서 유일한 지방자치단체장 당선인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울산 동구라는 지역에 한정되지만, 진보정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이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당선인은 30일 민중의소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주민들께서 진보정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이 임기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1호 결재’로 ‘하청노동자 집중지원을 위한 대규모 노동기금 조성 추진’을 결정한 것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울산 동구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 잡고 있는데, 주민 상당수가 현대중공업과 연관된 일을 하고 있다. 그 중 김 당선인이 가장 마음을 쓰는 건 하청노동자이다. 김 당선인은 지방선거 직전 당원들과 함께 주민 4천여 명의 동참을 이끌어 ‘울산 동구 하청노동자 지원조례’도 주민발의한 바 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하청노동자 지원에 대한 그의 진심은 이어지고 있다.
김 당선인은 “그동안 조선업이 불황이라며 수많은 숙련노동자를 구조조정으로 내쫒고, 남아 있는 일자리는 낮은 임금, 고강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의 질 낮은 일자리로 만들어 버렸다”며 “이제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할 인원을 모집한다고 하지만 정규직으로 모집하는 경우는 지금 거의 없다. 하청에서 모집을 하고, 위험한 노동을 최저임금 수준에서 하다 보니 꿈과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또 너무 어려운 조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뿐만 아니라 김 당선인은 “오랜 기업정치(기업 총수가 지휘하는 정치)로 인한 폐해를 빨리 바로 잡아야 할 상황”이라며 “기업이 운영하긴 했지만 인근 주민들도 이용하던 복지‧문화‧체육시설들이 모두 문을 닫고 매각되는 바람에 엉망이 돼버렸다. 이런 곳들을 주민의 의견을 받아 원상복구하고 더 나은 주민시설이 되게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착한 행정은 하지 않겠다”
임기 시작을 보름가량 앞둔 지난 17일 열린 ‘진보당 지방선거 당선인 워크숍’에서는 김 당선인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고 한다. 워크숍에 참석했던 현역 전남 나주시의원인 황광민 당선인은 민중의소리와 만나 “울산 동구에서 진보정치를 실현해볼 공간이 생겼다”며 “만약 우리가 집권한다면 이런 걸 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걸 생각하곤 했는데 실제 울산 동구에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만큼 진보당의 책임감도 높아졌다. 진보당 지방자치위원장으로 이번 지방선거 준비를 총괄한 안주용 공동대표는 “우리 내부적으로 아쉬움은 좀 있지만 밖에서 ‘약진’이라고 표현하는 이때 우리가 더 잘해야 할 것”이라며 “사회적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더 책임을 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특히 “자산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 문제가 워낙 심각한데다 다가오는 경제 위기를 대비 없이 맞이한다면 저소득층은 몰락할 것”이라며 “이것에 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소하지만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부터 대안을 세워서 바로바로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제는 정치적 여건이 ‘진보 유일 구청장’에겐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김 당선인은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54.85%(36,699표) 득표율로 45.16%(30,233표)를 얻은 국민의힘 천기옥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하지만 그를 견제하거나 뒷받침할 동구의회에 진보당 의원은 단 한 명뿐이다. 나머지 3석은 국민의힘이, 2석은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만약 다수당이 김 당선인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면 ‘마음껏’ 진보정치를 펼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김 당선인이 앞으로 시급한 주민 요구에 대응할 때 “착한 행정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배경이다. 무언가를 이루기엔 짧은 임기 4년 안에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행정적 사고를 깨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황 당선인은 워크숍에서 이런 김 당선인의 생각을 듣고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나는 권한이 이거밖에 없어서 못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하자는 취지”라며 “울산 동구에서 행정적 사고의 전환을 멋지게 시도할 것이라고 본다”고 기대했다.
김종훈이 ‘주민자치’를 앞세운 이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신뢰와 지지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진보당은 어디에서나 대부분 의석이 한 석밖에 없기 때문에 의회나 청사 바깥에 있는 대중조직에 기반한 대중운동과 정치를 결합시키고, 그것을 통해 주민들의 정치적 힘을 극대화시켜서 닥쳐오는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런 것들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진보당과 김 당선인이 그동안 울산에서 보여준 정치행보와도 맞닿아있다. 울산시의회 본회의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통과된 ‘울산시 고용보험 지원 조례’와 ‘울산시 온종일 아동돌봄 통합지원조례’는 모두 진보당 울산시당이 주민발의를 이끌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김 당선인 역시 선거 직전에 ‘울산 동구 하청노동자 지원조례’ 주민발의를 이끈 장본인이다.
주민총회와 같은 주민대회도 울산 5개 구·군에서 열렸는데, 그중 동구에서만 2만3천여 명이 참여했다. 주민대회는 주민들이 직접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를 정하고, 이를 시장이나 구청장에게 요구하는 자리다. 이중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진보당 후보들의 선거 정책 공약으로 이어졌다.
김 당선인은 “2만3천 명의 서명을 받으려면 동구 주민을 사실상 다 만나야 한다”며 “수개월을 거리에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며 직접 교감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놓는 정책이 단지 구호나 선거용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진짜 해결하려는 의지라는 게 주민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당선인은 ‘지방자치’를 넘어 ‘주민자치’를 정치지향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대리 정치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하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당의 행보는 기존 거대양당 중심의 행정과 분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김 당선인이 생각하는 ‘구청장’의 모습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교집합을 찾아 여기에 주민의 힘을 집중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김 당선인은 “사실 똑똑해서 구청장이 된 게 아니지 않나. 똑똑한 사람이 구청장이 되는 거라면 선거 대신 시험을 쳐야 한다”며 “정치 지도자라면 ‘제 잘났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김 당선인은 그간 경험을 토대로 ‘진보집권의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김 당선인은 “진보정책, 주민자치, 주민조직 등 세 가지의 전국적인 모델을 완성하고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김 당선인은 이중 ‘진보정책’에 대해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주민의 요구에 미적대지 않고 속도감 있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주민자치’에 대해선 “주민권력을 강화하는 실효적 3단계 조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치조직 운영과 소규모 주민자치 시범운영, 그리고 과제로서 법적조치의 강화가 3단계 조치”라고 소개했다. ‘주민조직’에 대해선 “진보집권 모델을 완성하는 핵심 사업”이라며 “당을 강화하고 주민을 권력의 중심으로 세우는 주민조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과 제도를 구청 안팎에서 만들고 정비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당선인은 울산 동구에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켜 진보당이 ‘대안정당’으로 발돋움하는데 힘을 싣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다른 지역의 모범들을 잘 보면서, 전국적으로 잘 확산시켜 나간다면 더 큰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김 당선인은 “전시행정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장 7월 1일 임기 시작 날에 열리는 취임식도 ‘주민 참여형’으로 열린다. 통상적으로 오전 11시에 구청 실내 강당에서 열리던 취임식과 달리 오후 6시 반에 구청 실외 광장에서 열리는 게 특징이다.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취임식은 관례적으로 실내에서 일부 공무원들과 함께 의례적인 행사로 진행됐는데, 우리 취임식은 주민과 노동자가 함께 하는 취임식이 돼야 한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있었다”며 “그런데 오전에 하거나 강당에서 하면 주민과 노동자가 많이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바꿔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예산은 기존 범위 내에 맞춰 사용하면서 소박하게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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