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 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 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사립 명문대로 꼽히는 연세대학교 재학생 3명이 최근 교내에서 '임금 440원 인상' 및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등을 요구하며 집회중인 청소 노동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여기에 등록금, 정신과 진료비, '미래에 겪을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한 정신적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현상을 비판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세미나 수업 과정까지 별도로 개설했다.
고소한 학생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 청소노동자들... 왜 학생들의 공부가 방해 받아야 하나"
먼저 재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고발한 배경을 살펴보면, 이들은 "노조의 교내 시위로 1~2개월간 학습권을 침해받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638만6000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29일 이들은 JTBC 뉴스에 직접 인터뷰를 하며 "교수님 말씀이 안 들릴 정도의 소음이었고, 학교에서 소음을 내면서 시위하는 것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고 본다"며 "추후에 계속 장기적으로도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학교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에브리타임'의 연세대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 사는 청소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으로 인해서 왜 학생들의 공부가 방해받아야 하냐"며 "청소노동자의 월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들은 바로는 월급이 300만 원에서 400만 원 정도"라고 적었다. 올해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의 시급은 9390원이다.
과거 '노학연대'(노동자-학생 연대)로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함께 싸워왔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청소 노동자의 처우 개선 요구에 재갈을 물리는 형국이 됐다. 특히 연세대는 2008년부터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해 학내 비정규 노동문제와 관련해 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를 만들며 청소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에 앞장서왔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컸다.
▲고소를 진행한 학생이 <jtbc>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jtbc 뉴스 갈무리박정연 기자 | 기사입력
나임윤경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을 초래할 때... 기득권이 아닌 약자를 향하는 '공정감각'"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달 27일 연세대 학사관리 홈페이지에 2022학년도 2학기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 계획서를 등록하며 이같은 상황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부 2030 남성들의 '공정 감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음은 그 수업계획서의 일부 내용이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2030 세대 일부 남성들의 '공정 감각'은 "노력과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라는 기득권의 정치적 레토릭인 능력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한국의 현 대통령은 늘 공정과 상식에 기반해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한다고 하면서 검사들만을 요직에 배치한다.) 기회와 자원에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는 한국의 2030이 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특권을 향유하는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지는 가장 절실한 사회적 연구 주제다.
이들의 지지를 업고 부상한 30대 정치인은 '청년 정치'가 줄 법한 창조적 신선함 대신 '모든 할당제 폐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20년간 이동권을 주장해온 장애인 단체의 최근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대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며, 그렇지 않아도 기득권 보호를 위해 한창 채비 중인 서울의 경찰 공권력 개입을 강하게 요청했다.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나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축적된 부당함에 대해 제도가 개입해 '내' 눈 앞의 이익에 영향을 주려 할 때, 이들의 공정 감각은, 사회나 정부 혹은 기득권이 아니라,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이 속한 민노총에 대해 수업권 방해를 이유로 연세대 몇몇 학생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 또한 같은 사안으로 보인다.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임 교수는 수업계획서를 통해 '여가부 폐지', 장애인 출근 시위 비난 등에 앞장서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수업계획서 중 '이들의 지지를 업고 부상한 30대 정치인')가 주도하고 이를 확장시켜나가는 일부 2030세대의 '혐오'를 직격했다. 그 '혐오'가 결국 '공정 감각'으로 둔갑되어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노조는 "일부 학생의 입장이 모든 학생의 입장은 아닐 뿐 더러, 결정적 책임은 학교에 있음이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연세대 청소 노동자 노조는 재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하고,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도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함께 활동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목소리를 내는데 응원하고 연대해왔다"고 했다. 이어 "고소를 진행한 3명의 학생들은 연세대 학생의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류 조직부장은 "결정적인 책임은 학교에 있는 것이 은폐되고 누락되고 있다"며 "먼저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하고 가처분 신청을 넣는 등 문제 해결을 거부하면서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은 건 학교"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들이 한 달 뒤 똑같은 행위를 한 것이지만 학교가 저지른 행위는 쏙 빠지고 학생들 것만 언론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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