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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충격에 빠뜨린 구인광고... 한국인들이 짐 싸는 이유

[박철현의 도쿄스캔들] 암울한 일본의 미래

22.07.04 05:48최종 업데이트 22.07.04 05:48

▲ JASM은 대만 TSMC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 기쿠요시에 2022년 착공한 70억 달러 규모의 공장으로 2024년 말 생산을 목표로 한다. ⓒ 연합뉴스

 
얼마 전 일본의 한 구인 광고가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반도체 왕국 재건을 노리는 일본정부의 국가적 지원 등을 바탕으로 일본 규슈 지역 구마모토 현에 반도체 공장(JASM, 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 주식회사)을 짓고 있다.

 일단 일본정부의 지원이 파격적이다. 공장 설립에 필요한 총예산 약 1조엔 중 4천억 엔을 일본정부가 지원한다. JASM에 따르면 공장 설립은 2024년까지 완성되며 그 해 말부터 22-28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의 반도체가 구마모토 공장에서 출하될 계획이다. 이번 구인 광고 역시 공장 설립에 따른 인재 모집에 방점이 찍혔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다.

'고연봉' 구인광고와 잃어버린 20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JASM의 구인 조건은 2023년 대졸자 월 평균 초임이 28만 엔(268만 원), 석사수료자 32만 엔(306만 원), 박사수료자 36만 엔(345만 원)이다. 신문은 "구마모토 현의 대졸 기술자 초임은 20만 엔(191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지역의 비슷한 업종 관계자들은 JASM이 고급 인재들을 높은 임금을 바탕으로 싹쓸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미난 건 이 기사가 한국에 보도되자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대기업 종사자들 다수가 깜짝 놀라며 '이게 무슨 고임금이냐?'고 했다는 점이다. 나는 같은 날 이 기사를 읽고 확실히 많이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왜 이런 온도차가 생겨났을까.

사실 이 온도차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설명 가능하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을 언급할 때 흔히 쓰이는 이 말은 상징적인 수사가 아닐 뿐더러 이젠 잃어버린 '30년'으로 진화하고 있다. 1991년 버블이 끝난 이후 거의 모든 것이 오르지 않아 성장이 정체된, 이른바 디플레이션에 빠진 지난 20여 년을 지나, 올해 들어 물가는 오르지만 가처분소득은 오르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에 돌입했다. 돈이 있어야 돈을 쓰는데,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물가는 급격히 오르고 있다. 이 급격한 인플레는 향후 1-2년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처분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니 개인들은 더더욱 절약하고 보다 싼 것을 찾는다. 다른 나라들은 5-7%대의 인플레라도 그간 임금도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디플레이션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2%대의 인플레에도 충격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국세청이 발표한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의 근로소득자의 평균 연수입은 다음과 같다.

2000년 461만 엔 / 2001년 454만 엔 / 2002년 448만 엔 / 2003년 444만 엔
2004년 439만 엔 / 2005년 437만 엔 / 2006년 435만 엔 / 2007년 437만 엔
2008년 430만 엔 / 2009년 406만 엔 / 2010년 412만 엔 / 2011년 409만 엔
2012년 408만 엔 / 2013년 414만 엔 / 2014년 415만 엔 / 2015년 420만 엔
2016년 422만 엔 / 2017년 432만 엔 / 2018년 440만 엔 / 2019년 436만 엔
(천엔 단위 반올림. 2020년 이후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제외)


버블이 붕괴되고 8년이나 지난 2000년에 연봉 461만 엔을 받았는데, 2019년엔 436만 엔을 받고 있다. 게다가 2013년부터 19년까지는 '소득의 확고한 증대'를 대대적으로 내걸었던 아베 집권시기인데, 7년 동안 약 5%(연인상율 0.7%) 상승에 그쳤다.

평균이 아닌 중위 연수입(중앙치)을 보면 상황은 더더욱 안 좋다. 일본 국세청이 발표한 2020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이 해 상여금을 제외한 연수입 평균치는 369만 엔(상여금 제외)으로 조사된 반면, 중앙치는 321만 엔으로 집계돼 평균치와 중앙치의 격차가 약 40만 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평균 임금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고액 연봉자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은퇴 후 65%, 최소 생활비 부족

중앙치 이야기가 나온 김에 60대 이후 고령자들의 상황도 한번 살펴보자. 일찍이 2019년 6월 금융청 심의회는 "은퇴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제외하고 적어도 2천만 엔은 필요하다"는 이른바 '노후 2천만 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당시 아소 다로 재무성 장관은 이에 대해 "많은 고령자, 은퇴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적 발언"이라며 엄중주의를 주고 정식 보고서에는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2천만 엔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현금성 자산이 필요하다는 건 간단한 계산으로도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현재 84세이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부터 계산하면 약 232개월이다. 국민연금으로 한정 지을 경우 매월 연금수령액은 6만 5천 엔인데, 후생성이 조사한 1인 한 달 평균 생활비는 13만 3천 엔이다. 이 차이인 6만 8천 엔에 232개월을 곱하면 1577만 엔이 나온다. 즉 은퇴 후 연금만으로 생활한다고 가정할 때 1577만 엔은 적자가 나므로 이 금액은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60대 이상의 현금성 자산은 얼마나 될까. 금융광보중앙위원회가 2021년 한 해 동안 실시한 '가계 금융행동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2인 이상 60대 세대의 금융자산 평균 보유액은 2747만 엔인 반면, 중앙치는 810만 엔으로 집계됐다. 물경 1900만 엔의 격차이다.
 

▲ 금융광보중앙위원회가 2021년 한 해 동안 실시한 '가계 금융행동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2인 이상 60대 세대의 금융자산 평균 보유액은 2747만 엔인 반면, 중앙치는 810만 엔으로 집계됐다. ⓒ limo.media

 
보다 세밀한 데이터를 보면 더더욱 비참하다. 금융자산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다는 세대가 무려 19%를 점한다. 0에서 100만 엔 6.4%, 100-200만 엔 4.8%, 200-300만 엔 3.4%, 300-400만 엔 3.3%, 400-500만 엔 2.6%, 500-700만 엔 5.9%, 700-1천만 엔 5.3%로 1천만 엔 이하의 세대가 50.7%를 기록했다.

금융청이 말한 기준 2000만 엔으로 허들을 높이면 14.4%가 더 포함된다. (1000-1500만 엔 8.4%, 1500-2000만 엔 6.0%) 즉 이대로 가면 일본의 60대 이상 세대 중 65.1%는 제대로 된 노후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돌려 말하면 2000-3000만 엔의 9.6%와 3000만 엔 이상의 22.8%만이 죽을 때까지 그나마 평균치 이상의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울한 일본의 미래
 

▲ 지난 6월 27일 일본 도쿄 시민들이 폭염 속에 교차로를 건너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렇다면 일본의 임금노동자는 평생 여유롭게 살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창 일할 나이에도 임금이 오르지 않아 저축 등 현금성 자산을 보유할 가능성이 적다. 은퇴해서 이제 연금 받으며 생활할까 했는데, 정부기관이 연금 말고도 2천만 엔의 금융자산을 보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이니까.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베 정권 시절부터 엄청난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지만, 이 기간 동안 풀린 막대한 돈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가진 사람들을 더 살찌웠다. 정작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거의 변화가 없다. 아니 근 10여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현재 일본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서두에 말한 JASM의 구인 광고가 화제를 끈 것이다. 일본 유수의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가 '고임금 구인'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0년 후생노동성이 조사한 대졸초임자 평균임금 월 22만 6천 엔(통근수당 포함, 업종 불문)보다 5만 4천 엔이 더 많은 28만 엔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종으로 한정지더라도 신입사원의 월 평균임금은 21만 엔 정도에 불과하니(반도체 업종 평균임금은 연 494만 엔, 월수입으로 환산할 경우 41만 엔) 확실히 JASM의 구인광고는, 현재 일본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고임금에 속한다.

하지만 과연 JASM가 이정도 수준으로 일본 국내 인력이 아닌 외국의 우수한 인력들을 고용할 수 있을까? 게다가 현재 달러당 135엔이라는, 20년만의 엔저현상 때문에 엔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내가 처음 왔던 21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 돈을 벌기 위해 온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요즘 그런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다. 오히려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자연재해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경제적 성공의 발판으로서 일본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그 귀국 이유에 포함되지 않을까 한다. 일본 경제를 기초 베이스에서 지탱하는 국민 개개인들의 삶이 과연 앞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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