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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원웨이 티켓, 백제 금동신발

[한국의 유물유적] 영생의 소망을 담아 죽은 자의 발에 신겼던 장례용품

22.07.02 19:49l최종 업데이트 22.07.02 19:49l

  

큰사진보기2021년 4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금동신발 중 유일하게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  2021년 4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금동신발 중 유일하게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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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표현하는 말로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옛 고승의 선시(禪詩)처럼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도 일생 동안 모아 놓은 모든 것들을 버리고 빈 손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렇기에 망자들이 세상과 작별할 때 마지막으로 입는 옷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우리에게 죽음 이후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은 '죽음' 그 너머의 세계를 화두로 삼고 있다. 태생적 결핍과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은 채 유순하게 죽음의 강을 건넌다.

하지만 절대적인 부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은 '영원과 불멸'을 염원하며 이승에서 누렸던 풍요로운 삶을 저승까지도 무한하게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국가 왕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은 죽음이란 단순히 이승의 끝이 아니라 저승이라는 사후 세계로 가는 새로운 관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2009년 9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
▲  2009년 9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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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후반부터 한반도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그 수량이 늘어나며 절정에 이른다. 특히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들의 무덤에서는 일상생활용품은 물론이며 금·은·동으로 장식된 무기·관모·장신구 등 호화로운 부장품들이 대거 발견됐다.

5세기 최고의 명품 구두,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

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중국산 부장품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발견된 특별한 유물이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금동신발'이다.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고유의 금속공예품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일본 고분에서 출토된 유사한 형태의 신발은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들이다.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 발견 당시 모습.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고유의 금속공예품이다
▲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 발견 당시 모습.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고유의 금속공예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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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고창 봉덕리 고분
▲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고창 봉덕리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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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약 50여 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던 백제시대 만들어진 두 쌍의 신발이 2021년 4월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백제·마한지역에서는 19 쌍의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대부분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으나 두 점은 거의 원형 상태로 수습돼 백제 고유의 문양과 공예문화의 독창성을 밝힐 수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2009년 9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 고분을 조사하던 중 5세기 중반에 조성된 석실묘에서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진 신발 한 켤레가 거의 원형 상태로 출토됐다. 신발 내부에서는 직물조각과 함께 피장자의 뼈가 확인됐다.

망자의 버선발에 금동신발을 신겨서 안장한 것으로 살아 있을 때 신었던 게 아니라 장례 때 망자의 발에 신겼던 의례용으로 추정한다. 길이 32㎝. 바닥과 측면에 용, 인면조, 연꽃 등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비의 금동신발. 발바닥에 스파이크가 박혀있다
▲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비의 금동신발. 발바닥에 스파이크가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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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발굴됐던 무령왕과 왕비의 신발처럼 바닥판과 좌우측판·발목깃판으로 구성되었고 바닥에는 1.7㎝ 높이의 스파이크 18개가 박혀 있다. 내부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삼국시대 초기에 유행했던 물고기 알 문양이 확인돼 다른 것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백제가 이 지역을 병합한 다음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역을 다스리는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권력층에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4년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 인근의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
▲  2014년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 인근의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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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가 장식된 나주 정촌 고분 금동신발
 

2014년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 인근의 정촌 고분에서도 금동신발 한 쌍이 출토됐다. 복암리 고분군은 영산강 유역 백제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고분군으로 정촌 고분은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백제 마한 지역의 무덤이다. 땅 위에 봉토를 만들어 무덤을 축조한 '분구묘(墳丘墓)' 형태로 조성됐다.

고창 고분에서 발견된 신발보다 다소 늦은 5세기 후반에 제작되어 무덤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 금동신발의 백미는 발등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이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용머리 장식은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에서만 유일하게 확인됐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의 백미는 발등에 장식된 용머리 장식이다. 용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昇天)’의 상징이다
▲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의 백미는 발등에 장식된 용머리 장식이다. 용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昇天)’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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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발견 당시의 모습
▲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발견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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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좌우 옆면의 육각문에는 용·봉황 등 상상 속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몸 하나에 얼굴이 두 개인 '일신양두(一身兩頭)'와 새의 몸통에 사람의 얼굴이 달린 '인면조신(人面鳥神)'의 문양이 있고 발바닥에는 연꽃 문양이 있다.

몸체 곳곳에 새겨진 용은 머리에 뿔이 있고 귀는 타원형이며 입은 벌리거나 다물고 있다. 용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昇天)'의 상징이다. 영원불멸을 기원하는 고대인들의 사후 세계관이 반영됐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특히 정촌 고분 금동신발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일신양두 문양은 여성의 상징인 '땅의 신'을 의미한다. 실제로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던 무덤 주인공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이 신발의 주인공은 키 146cm 정도의 체격을 가진 40대 여성으로 밝혀졌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에 새겨진 '일신양두'와 '인면조신'문양
▲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에 새겨진 "일신양두"와 "인면조신"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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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근거로 볼 때 6세기 전후 시점에 영산강 유역 사회는 여성의 지위가 지역 수장급에 해당할 정도로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다부진 체격으로 영산강 유역을 호령하던 이 여인은 백제인일까. 마한인일까.

서기 550년까지 나주 영산강 유역 일대는 마한인들이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후 약 100여 년간 백제에 복속되었다가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에 병합되었다. 국립나주박물관 측은 이 여인을 마한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1500년 전 무덤 속 여인이 신고 있었던 금동신발은 마한의 것이 된다. 앞서 봤던 고창 봉덕리 신발처럼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도 백제 중앙 정부의 왕이 영토를 확장한 후에 지역 수장들에게 내려준 위세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무덤 주인공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이 금동 신발의 주인공은 키 146cm 정도의 체격을 가진 40대 여성으로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재현한 여성 수장의 모습
▲  무덤 주인공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이 금동 신발의 주인공은 키 146cm 정도의 체격을 가진 40대 여성으로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재현한 여성 수장의 모습
ⓒ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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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라 금관이 실제 왕들이 평소 머리에 썼던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죽은 왕의 얼굴을 가리는 '데드 마스크(Dead mask)'였듯이, 백제 금동신발 역시 영생의 소망을 담아 죽은 자의 발에 신겼던 장례용품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1500년 동안 깜깜한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금동신발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을 떠나는 망자가 죽음의 강을 건너 저승으로 가는 '원웨이 티켓(One–way ticket)'이었던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131호(2022년 7.8월)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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