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된 지 얼마 안 지난 때였지만, 두 달 치가 밀렸다는 건 양쪽이 모두 인정한, '다툼이 없는 사실관계'였어요. 계약서상에도 세 달 치가 계약 해지 기준이었고요. 법 개정을 몰랐다 해도 용납이 안 되는 잘못인 거죠. 판사가 자기 마음대로 재판하면 됩니까? 그래서 판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를 한 거죠."
전 변호사 말을 빌리면, 이후 "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손해배상 소송의 재판장(심창섭 판사)이 '소송비용 담보제공명령'을 직권으로 내렸다. '10일 내 소송비용 담보 9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소를 각하한다'는 명령이었다.
전 변호사는 "담보제공명령은 쉽게 말하면, 소송비용도 없는데 터무니없이 마구 소송을 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경우를 대비해 '재판비용이라도 담보로 제공해라'는 개념"이라며 "국내에 사무실이나 주소지가 없거나, 재판 청구의 아무 이유가 없음이 명백할 때가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나는 법률사무소도 있고 피해 사실도 있었다"며 "더구나 피고 판사(임창현 판사)가 이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심창섭 판사가 자기 직권으로 이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송비용 담보 제공 신청을 했다가 '이유 없다'고 기각 당하지 않았느냐"면서 "법관의 오만방자함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반발한 교회들이 문 대통령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소송비용 담보제공을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전 변호사는 재판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넣고, 담보제공명령도 부당하다고 항고했다. 각 소송 모두 3심까지 진행됐으나 모두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담보제공명령 항고 재판부는 "피고 임창현(판사)이 법리를 오인하는 바람에 건물 인도를 명한 건 잘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법관 면책 판례'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2001년 대법 판례 후 20년 간 특권 유지
문제 판례는 '2000다29905(2001년 3월 선고)'로 대표되는 대법원 판결이다. "법관의 재판에 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 해도, 해당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을 했거나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히 위반해 법관이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을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내용이다.
이후 법관을 면책해준 대법원 판결은 계속 나왔다. 대법원은 2001년 압수수색 대상 물건 기재가 누락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준 법관에게도 '부당한 목적'이나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히 위반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법행위가 구성되지 않는다"고 감쌌다. 법원 경매절차에서, 법관 착오로 한 채권자의 배당표가 잘못 작성돼 그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친 사건도 같은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판례 때문에 지난 20여년 간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판사에게만 문구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국가·지자체 공무원이 직무 집행 중 고의나 과실로 법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시 이 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전 변호사는 "판사들만 부당한 목적, 중과실, 이런 조건이 추가된다"며 "그런데 판사의 부당한 목적을 재판의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관심법 쓰는 궁예'만이 이길 수 있단 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더 정확하게는 궁예도 못 이긴다"며 "판례는 '시정절차 내지 불복절차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추가로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특혜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판사라고 아무 실수 안하고 오류가 없습니까? 이 판례를 없애지 않는 이상, 법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 이 판례를 뒤집어야겠다 생각했어요."
한 판사의 양심선언 "특권 내려놓는데서 시작하자"
전 변호사는 면책특권을 다툴 수 있는 사유가 생길 때마다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했다. 지난 5년 간 7건이 쌓였다. 4건은 최종 패소, 3건은 진행 중이다. 위헌법률심판 신청도 네 차례 넣었으나 3건이 각하됐다. 그러다 지난 6월 30일 법원이 처음으로 전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고의·과실 외 '위법·부당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 위반' 등 요건을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국가배상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건 법관에 대한,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특전을 새로 창설하는 것... (중략) 일본 국왕의 무오류성 또는 절대 국가 법제 등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 법관은 무오류의 존재가 아니므로... (중략)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으로부터 사법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헌법이 법관에 부여한 신분보장 외 별도의 특권적 지위를 창설하지 말고, 그런 지위를 과감히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1 단독, 서영효 부장판사,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문 중)
전 변호사는 서 판사의 위헌제청결정문에 "표현만 그리 안 했을 뿐이지, 법원을 향해서 엄청 욕을 했다고 읽었다"며 "사법부는 사법부지 입법부가 아닌데 왜 월권을 하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대법 판례가 잘못됐다고 한 건데, 서영효 판사가 대단히 용기 있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고졸변호사가 확신 말고 믿을 구석 어딨겠습니까"
전 변호사는 법조인 중에서도 이례적인 이력을 가졌다. 고교 졸업 후 고려대 수학과로 입학했으나 두어 달 후 자퇴, 재수를 하다 가출해 부산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했다. 다시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해 대구대 수학교육과에 들어갔으나 교련 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아 장학금이 끊기면서 학교를 나가지 못해 그 길로 군대를 갔다. 제대 후 상경해 약품 도매업체 영업사원, 고시원 총무 등으로 밥벌이를 했다. 그러다 사법시험을 준비해 31살인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원·검찰청 주변에 밀집한 대부분의 법률사무소와 다르게, 그의 사무실은 종로5가 '광장시장' 바로 맞은편에 있다. 건물 뒤편에도 법률사무소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고, 천막, 액자, 판촉물, 잡화, 그릇, 철물 등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전 변호사는 "체질적으로 동적인 걸 좋아해서 여기로 왔다"며 "사실 내가 변호사 보단 막노동 체질"이라 말하며 웃었다.
전 변호사는 "그래도 경상도, 전라도, 저 멀리 청산도에서도 배 타고 여기까지 찾아오는 분이 계신다"며 "전국에 '사법피해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사건을 변호사들이 잘 맡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도 '사법피해자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변호사가 나밖에 없으니 여기 분들이 법률 의뢰도 하고 그러더라"고 말했다.
"고졸변호사가 믿을 구석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던 그는 끝으로 "이렇게 판사와 싸우고 드는 건 그 판례가 완벽하게 틀렸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그만두라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사법부가 무소불위 권력기관이라는 방증입니다. 나는 '좋다. 내가 그 바위 치는 계란이 되겠다'며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닉네임도 '바위 치는 계란'으로 했는데, 지금은 '바위 깨는 계란'으로 바꿨습니다. 치는 건 너무 나약해 보이니까. 헌재에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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