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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 연구자에서 정의연 버팀목으로 보낸 3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3/01 10:39
  • 수정일
    2023/03/01 10: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24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24 ⓒ민중의소리


일본군 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횡령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윤미향 의원이 1심에서 대부분 무죄를, 김 모 정의연 활동가가 전부 무죄를 선고받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윤 의원 뒤를 이어 정의연을 이끌게 된 이 이시장은 2020년 5월 취임 하루 만에 날벼락을 맞게 됐다. 윤 의원을 겨냥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후 윤 의원을 둘러싸고 한국사회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이 이사장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끊임없이 치르고 있었다. 주목할 만 한 건 정의연이 그 전쟁 통에서도 쇄신을 거듭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 이사장은 “이것도 역사의 과정이니 기록을 해달라”며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정의연 사무처에 떨어진 날벼락


이나영 이사장이 공식 임기를 시작한 건 2020년 5월 6일이었다. 당시 정의연을 오랫동안 이끌던 윤미향 전 이사장이 총선에 출마하게 되면서 공석이 된 정의연 이사장에 그가 선임되면서다.

이 이사장은 선임 직후 대구에서 지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

“당시 윤 의원이 총선에 출마하기 전에 당연히 이용수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죠. 그때 할머니께서 출마를 허락해주셨다고 기뻐하던 윤 의원이 저한테 전화를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런데 며칠 뒤에 할머니께서 다시 윤 의원에게 전화를 해서 출마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그러다가 4월 24일 최용상 당시 가자평화인권당 대표와 대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셨어요.”

그 기자간담회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정의연 논란의 ‘불씨’였다. 이 이사장은 이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이용수 할머니의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사장은 “예전부터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피해자 지원 단체와 국내외 활동가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분들에게 당시 이용수 할머니가 어떤 상태였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고립감을 느끼며 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였고,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던 윤 의원이 ‘위안부’ 운동을 그만두고 떠난다는 데 대한 서운함 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5월 8일 어버이날에 찾아오라’는 이 할머니의 말에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정의연 쉼터 어버이날 행사를 하루 앞당겨 5월 7일에 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대구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다시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 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이용수 할머니께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그냥 끊으셨다”며 “윤미향 의원에게 ‘지금 바로 이용수 할머니를 찾아봬야 한다’고 권했고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전했지만 어버이날 행사 등으로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일’은 터지고 말았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윤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은 시작됐고, 정의연 역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이 이사장이 취임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가 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정의연 이사장은 비상근·비상임직이에요. ‘정의연 사무총장이 실질적으로 일을 하고 전체 사무처 총괄과 결재 정도만 하면 된다’, ‘전공 분야인 연구나 기록과 관련된 사업에 집중하면 된다’ 등으로 설득되어 이사장직을 수락한 거죠.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그 ‘사태’가 터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굉장히 안이했다고 후회하고 있어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열린 5월 7일 이후로 정의연 사무처는 거의 마비가 됐다. 정의연에 해명을 요구하는 언론의 전화는 끊이질 않았고, 정의연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다운이 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5월 8일 이용수 할머니를 찾아뵙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정신없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매진해야 했다. 수많은 기자들이 정의연 사무실과 주차장, 쉼터 앞까지 진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상회의와 간담회를 열었다. 이 이사장은 “저도 이런 일을 처음 겪었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정신을 못 차렸다.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원 등 온갖 곳에서 저희한테 자료를 요청했어요. 게다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이 당내에 TF를 만드는 바람에 국회의원들도 매일 자료를 요청했어요. 그래서 정의연 활동가들이 사무실에서 밤을 새어가면서 대응했습니다. 당시 회계 담당자의 몸무게가 7kg이나 빠질 정도로 정말 힘들었어요.”

윤 의원이 횡령·사기 등의 혐의로 보수단체로부터 첫 고발을 당한 건 5월 10일이었다. 이후 정의연 관계자들과 이사들에 대한 고소·고발도 이어졌다. 검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불과 일주일만인 5월 14일에 서울 서부지검에 사건이 배당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정의연 사무실 앞에서 규탄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다 짜여진 각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의 강제수사도 즉각적이었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5월 20~21일 정의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에게 자료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검찰이 빈 박스를 몇 개만 들고 왔다. 결국 모자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빈 박스도 사용하라고 다 줬다. 컴퓨터를 샅샅이 뒤지고 활동가들이 열심히 정리하고 보관한 자료 10년 치를 거의 다 가지고 갔다”고 밝혔다. 5월 26일부턴 거의 매일 정의연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됐고 엄청난 분량의 서면자료 요청이 쇄도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속하게 수사하고 언론에 제기된 모든 의혹을 규명하라”고 대검찰청 간부들에게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윤 의원이 오랜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은 5월 29일이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는 정의연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업무상 횡령 혐의를 해명하려면 윤 의원 본인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이 이사장은 그보다 앞선 5월 11일 정의연 차원에서 첫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오히려 “패착”이었다고 평가했다. “내용 숙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견 조정을 마치지도 않고 급하게 기자회견을 가졌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정의연을 몰라서 그래, 정의연의 활동을 잘 알리면 이해할 거야’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거죠.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요. 기자회견 이후에 오히려 더 두들겨 맞았어요.”

이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의 죽음이었다. 손 소장은 2004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일을 도맡으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손 소장은 검찰의 마녀사냥식 수사와 언론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고통스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이사장은 충격에 빠졌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사무실에서 매일 밤을 새다시피 일하다가 ‘하루만 좀 쉬자’고 한 날이었다. 그때 손 소장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이사장은 정신없이 손 소장의 집을 찾아갔다.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당시, 이 이사장은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22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촉구하는 1584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자와 다정히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02.22 ⓒ민중의소리

 

정의연 이사장의 숨은 조력, 그리고 연대의 손길


손 소장의 장례가 끝난 뒤에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6월 15일 처음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선일보 등에 대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구하는 조정을 신청하면서 분위기 반전도 꾀했다. 이는 왜곡된 언론보도에 경고장을 날리는 분명한 계기가 됐다. 동시에 이 이사장은 정의연 활동가들이 모두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중 두 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한 명은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할 만큼 건강상태가 극도로 나빴다.

이 이사장도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쉴 틈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특별히 관심을 뒀던 것은 다름 아닌 이용수 할머니였다. 이날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이 이사장의 휴대폰에는 이 할머니의 부재중전화가 두 통이 와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었어요. 기자들이 할머니 입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용수 할머니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윤 의원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드리는 일이 시급했어요. 무엇보다 피해자 지원 단체가 피해자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윤 의원을 비롯한 선배들의 헌신적인 피해자 지원 활동을 훼손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이후로 할머니와 거의 매일 통화를 했습니다. 정의연이나 윤의원 관련 일이 보도될 때마다 기자들이 할머니께 멘트를 따려고 전화를 정말 많이 했는데 한 마디도 안 하셨지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지요. 이번 설에도 할머니를 찾아뵙고 왔어요. 오늘 아침에도 통화를 했고요. 그렇게 해서 지금은 할머니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관계가 되었어요. 저는 ‘어머니’라고 하고 할머니도 ‘우리 딸, 수고한다’라고 하시며 저를 많이 응원해 주십니다.”

이 이사장의 ‘숨은 조력’은 이뿐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는 윤 의원이 국회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했을 때 ‘제명 반대’ 탄원서를 조직하고, 부당함을 직접 호소한 일이었다. 이 이사장은 “1심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지금 제명을 하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역사부정세력에게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1심 선고 직전 ‘선처 호소’ 탄원서 조직이었다. 이 이사장은 5가지 탄원서를 모았다. 정대협·정의연 선배 활동가들, 이용수 할머니를 오랫동안 조력했던 인권변호사, 피해자 지원단체 활동가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이 이사장 본인의 탄원서다. 모두 윤 의원과 기소된 활동가의 헌신적인 활동을 증언하면서 판사에게 선처를 구했다. 이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비판 여론과 함께 따라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이후 상당수가 가졌을 수 있는 오해를 풀고 신뢰를 회복하며 정의연과 계속 연대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설득했다. 탄원서는 그 노력이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이사장은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지와 응원이 있어서 큰 힘이 됐다”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24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24 ⓒ민중의소리

정의연의 쇄신, 그리고 정의연의 연대


이 이사장은 1심 선고 소식을 재판정이 아닌 사무실에서 들었다. 이 이사장은 “한편으론 안도하고, 한편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날 밤부터는 2년 반이 넘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서 마음이 힘들었다. 며칠 동안 안도감과 기쁨의 이면에 삭히고 있던 울분이 올라와 잠을 잘 못잤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동안 휘몰아친 소용돌이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이사장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한국의 극우세력과 정치권의 문제도 당연히 한 축을 이루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사태의 원인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더해 그동안 감춰져있던 많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불협화음을 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 이렇게 결론을 냈어요. 모든 일은 우연적이다, 다만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의연에 대한 비판 논리 중 하나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일제에 짓밟힌 피해자상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이 이사장의 반박은 날카로웠다. 민족주의의 다양성,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를 무시한 비판이며 운동단체의 활동에 무지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어떤 집단이 특정한 민족에 속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착취의 대상이 된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질문하면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냉전 분단 체제라는 독특한 모순 속에 있다. 이 모순을 민족이라는 개념을 빼고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느냐”며 “한국 최고의 페미니스트인 이효재 선생님도 이 문제는 민족의 문제, 여성의 문제, 노동자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사람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1980년대에 가졌던 인식을 2023년에 똑같이 가지고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성장해온 건 시민들의 비판적 자기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라며 “우리를 민족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낡은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이사장은 그동안 억울한 감정을 애써 삼켜왔다. 1심 선고 후에야 그간 겪었던 고통을 그나마 담담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세를 낮췄다. 이 이사장은 수요시위에서 “지난 시련과 위기를 결코 잊지 않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사려 깊지만 굳건하게, 분골쇄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실제 정의연은 2020년 8월 외부 인사들로 ‘성찰과비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내부 성찰을 바탕으로 조직 개혁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정의연은 ‘정의연 회계 관리체계 개선과 혁신’, ‘정의연의 조직·기능 및 사업의 개선과 혁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미래지향적 비전과 개혁안 마련’, ‘정기회원 중심의 튼튼한 조직과 시민 소통’ 등 4가지 제안을 받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이사회로 새로 구성하고, 규정이나 체계도 정비했다. 효율적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홍보·교육·장학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의연의 활동 범위가 최근 들어 넓어진 것도 눈에 띄는 지점이다. 전통적인 진보단체의 활동은 물론이고, 미군기지촌 위안부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성착취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도 지키고, 추모 집회도 참여했다. 이 이사장은 “핵심적인 연대체만 10군데가 넘다보니 우리 활동가들이 너무 바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저희 수요시위에 다른 단체들이 와서 연대를 해줬지, 우리가 다른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준 적은 실제로 많지 않았다”며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도 관심이 적었다”고 성찰했다.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위안부 문제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어요. 젠더 이슈이자 인종 이슈이고, 민족 이슈이자 계급 이슈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중첩적으로 얽혀 있지요. 여기에 식민지, 제국주의, 분단체제, 냉전체제, 전쟁 이런 것들이 이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게다가 국내외 정치적 상황이 계속 바뀌면서 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기도 했고요. 우리가 위안부 문제는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다들 잘 못해요. 사실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 복잡한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다양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각 단체 혹은 시민들이 자기 문제로 연결 지을 때 비로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대라는 것은 상호적이고 쌍방향적이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연대의 중요함을 더 절실히 깨닫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기본적으로 지향점이 같다면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우리에게 그런 점이 부족했다고 보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연대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고 밝혔다. “사실 옛날에는 다른 단체에서 뭘 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다른 단체가 하는 얘기를 듣고, 헌신적이고 훌륭한 활동가들과 같이 활동하다보니 굉장히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연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나의 입장이 다 옳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올바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선은 아닐 수 있다, 다중적 위기에 대응할 더 너른 시야와 실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등이었어요. 연대란 그런 거죠. 서로가 서로를 갉아 먹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성장시켜주는 그런 연대를 하고 싶어요. 저를 연구실에서 텍스트에만 갇히지 않게 해 준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기적처럼 저희를 일으켜 주신 많은 후원회원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정의연은 3월 1일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도 공동주관한다. 이 이사장도 이 대회 준비로 한창 바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의 모순 혹은 대한민국의 위기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리들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착취하거나 수탈하는 그 힘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세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시민단체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대회를 주최하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에 수백 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노동자, 환경, 여성 등 다양한 단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범국민대회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22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촉구하는 1584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3.02.22 ⓒ민중의소리

 

정의연의 핵심 키워드, 기억과 기록


현재 정의연이 진행하고 있는 핵심 사업은 ‘기억과 기록’에 관한 것이다. 이 이사장은 취임 이후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에 열중하며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정의연은 이를 위해 기록연구사와 뉴미디어 활동가를 새롭게 채용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자료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보존하고 공유하기 위한 사업이에요. 기록을 창고에 넣어두면 100년 뒤에 누군가 보겠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보는 겁니다.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디지털 아카이브 밖에 없어요. 이건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자료를 쉽게 찾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그걸 저희가 전문가들과 함께 3년째 하고 있어요.”

첫 결과물은 3월 말경 나올 예정이다. 1992년부터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함께 진행한 아시아연대회의 관련 자료를 정리해 공개하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인력과 재정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향후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사실 지원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저희는 정부의 돈은 받지 않기로 했어요. 만약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거든요.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자료 공개 범위 등이 좌지우지되기도 하고요. 물론 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단단한 시민사회가 없으면 기록이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그동안 역사적으로 경험해봤잖아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억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저희가 아카이브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고요, 자료 기증도 부탁드립니다.”

이는 생존 피해자가 얼마 남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 미래지향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은 “그간 사람들이 수요시위 현장에서 피해생존자들을 만나 감동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행동을 위한 자기 결심도 했는데, 생존자들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며 “결국은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밖에 남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란 건 없는 것 같다”며 결국은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되느냐의 문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문제에서 가해자인 독일 정부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죄하고 배상한다고 해서 홀로코스트가 해결됐다고 하나요? 우리는 왜 계속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역사적 사실을 감춘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나요? 사라지지 않아요. 한국 정부도 너무 한심하지요. 정부 간 야합으로 해결되었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역사가 지워지나요? 우리가 홀로코스트 문제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실천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그리고 유사한 일이 지구촌에서 발생했을 때 관심을 가지며 피해자의 상황에 공감하고요. 이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실천으로 이어나가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한편 이 이사장이 정의연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여성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미국 기지촌 문제에 관한 논문을 쓸 때였다. 연구를 위해 한국에 왔다가 당시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사무차장이던 윤 의원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이사장은 중앙대 교수가 된 이후에도 학생들과 수요시위에 참여하며 활동가들을 응원했다. 그러다가 정대협 20주년을 맞아 선배들로부터 위안부 운동사 연구를 제안 받아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어 2015년 굴욕적인 한일합의에 대응하는 과정에 설립된 정의기억재단 이사로 들어가면서 단체 운영에도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정의연은 훗날 정대협과 정의기억재단이 통합하면서 출범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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