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강제동원) 최종안은 피해자 및 유족과 한국민들에게는 아픔과 분노를 주지만,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영환 충북지사(국민의힘)는 7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며 "나는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장관의 애국심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라고 선언했다. 본인뿐 아니라 윤석열·박진까지 친일파 범주에 끌어넣은 것이다. 그런 뒤 "일본의 사과와 참회를 요구하고 구걸하지 마라!"고 꾸짖었다. 가해자의 사과와 참회를 요구하는 것을 '구걸'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9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는 "한일간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를 넘어서는 굳건한 한미일 안보공조는 전쟁을 막고 충북의 생존을 지키는 현실적이고도 절박한 문제"라며 한·일 군사협력의 당위성까지 역설했다.
박형준 부산광역시장(국민의힘)도 '친일 딱지'를 윤석열 정권에 붙였다. 8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정치적 딱지가 친일이라는 손가락질임을 감안할 때 국익을 위해 독배를 마시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정권을 칭찬하고자 한 말이지만, "가장 무서운 정치적 딱지", "독배를 마시는 용기"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윤 정권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저변에 깔고 있는 셈이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징용 최종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라고 그는 칭송했다.
"윤 대통령과 긴밀하게 도모"
일본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호감어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금후로도 윤 대통령과 의사소통을 긴밀하게 도모하면서 일한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싶다"며 윤 대통령을 함께 일을 도모할 파트너로 상정했다.
정책위원회 의장에 해당하는 자민당의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도 윤 대통령 칭찬 대열에 가담했다. 그는 "깔끔하다", "좋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터넷판 NHK의 6일 자 기사인 "하야시 외상 '일한관계 건전하게 되돌린 것으로 평가한다' 징용 해결책(林外相 日韓関係健全に戻すもの 評価する 徴用 解決策)"에 따르면, 하기우다 정조회장은 "윤 정권이 국내문제로 깔끔하게 자국 안에서 해결한 것은 좋았다"라고 호평했다. 징용 문제를 한·일 문제가 아닌 국내문제로 처리한 것에 대한 흡족함의 표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일정상회담(2022.11.13)을 하기 전인 11월 2일에 대통령실을 방문해 징용 문제에 관한 자민당 입장을 전달하고 돌아간 아소 다로 부총재도 칭찬 대열에 가세했다.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인 <산케이뉴스>의 9일 자 기사 "자민 아소씨 '나는 높이 평가'... 한국의 징용공 해결책(自民・麻生氏 私は高く評価 韓国の徴用工解決策)"에 따르면, 그는 자민당 아소파 모임인 지공회(志公會) 회합에서 "매우 커다란 한걸음"이었다며 "나는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미국 맥그로힐이 1969년 설립한 니혼맥그로힐에 의해 창간된 <니케이 비즈니스>의 3월 9일 자 인터뷰 기사인 '전 징용공 문제에서 한국이 커다란 양보(元徴用工問題で韓国が大きな譲歩)'에 등장한 하타노 스미오 쓰쿠바대학 명예교수도 그 대열에 함께했다. 외무성 일본외교문서편찬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커다란 양보를 결단했다"라고 호평했다.
일본인들은 자국이 징용 피해를 배상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커다란 양보'를 운운하는 하타노 교수의 발언은 '일본이 갚아야 할 배상금이 실제로는 존재하며, 그것을 윤 대통령이 없애줬다'는 인식이 일본인들 내면에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커다란 양보가 한국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번 일로 한·미·일 연계가 강화되면 한국이 중국에 찍힐 위험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확실히 그런 면은 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있을 수도 있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질문을 받은 직후에 가장 먼저 튀어나온 단어는 '확실히'였다.
윤석열 정권 교체될까 걱정하는 일본
▲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징용 최종안을 지지하는 일본인들은 윤 대통령을 환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염려하고 있다. 정권교체로 인해 징용 최종안이 뒤집히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NHK가 운영하는 <NHK 국제뉴스 내비>의 7일 자 기사인 '한국 징용 둘러싼 문제 새로운 해결책이란? 금후의 전망은?(韓国 徴用めぐる問題 新たな解決策とは?今後の見通しは?)에서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기사는 "다시 정권교체가 있을 경우에 한국 측으로부터 문제제기, 이의신청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한 뒤 "앞으로 윤 정권이 국내적인 이해를 얻어내는 작업을 충분히 진행해나갈 수 있다면 이번 해결책을 지속 가능한 것이 되게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보도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우려는 다른 보도에서도 발견된다. 6일 자 <산케이뉴스> '한국 징용공 해결책, 이행에 높은 벽... 정권교체도 리스크(韓国 徴用工 解決策、履行に高い壁 政権交代もリスク)'를 그 일례로 들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본인들이 한국 정권교체를 염려한다는 점은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 협정(통칭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 이후의 상황에서도 확인된다. 박정희 정권이 밀어붙인 1969년 10월 3선 개헌을 일본 지도층도 열렬히 지지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일협정 때 박정희를 반대한 한국 국민들은 3선 개헌도 분명히 반대하고 이에 저항했지만, 3선 개헌안은 그해 10월 17일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계는 박 정권이 국민적 공감을 얻은 결과라며 높이 평가했다. 10월 18일 자 <경향신문> 1면 우하단에 실린 미국 UPI 통신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박 대통령의 3선 개헌과 자신의 정치 운명을 내건 이번 국민투표에서 압승하게 된 것은 그가 과거 밀고온 경제정책과 정치적 안정에 국민들이 크게 공감한 것이라고 이곳 일본 정계에서는 보고 있다.
정치권만 지지를 보낸 게 아니었다. 외무성도 마찬가지였다. 20일 자 <매일경제신문> 1면 우하단에 실린 UPI 통신 기사는 "일본 외무성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출마를 허용하는 개헌안의 국민투표 통과를 18일 환영했다"라며 "17일의 국민투표 결과는 박 대통령이 한국에서 적절한 지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음을 시사"한다는 비공식 논평까지 곁들여 소개했다.
일본 경제에 대한 한국 경제의 예속이 지금보다 훨씬 심할 때였다. 한국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일본이 박정희 장기집권을 지지했다. 한국을 압도할 금권을 가진 당시의 일본이 독재정권을 지지했으니, 이들의 지지가 그냥 말로 응원하는 데 그쳤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일의 강제징용 최종안 발표 뒤로 한국과 일본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크게 고무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에도 결코 좋은 조짐이 아니다.
양국에서 윤 대통령 지지를 주도하는 세력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힘을 갖고 있다. 이런 세력이 지금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지지한 한·일 양국의 박정희 지지 세력이 4년 뒤의 3선 개헌까지 찬동하며 한국 민주주의 압살을 환영했던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주는 선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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