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반전은 '읽기' 운동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나 습관, 문화가 늘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엘리트층이야 문자문화가 자리 잡은 이후 줄곧 책을 읽어왔다. 그러나 대중은 사정이 달랐다. 이른바 계몽의 시대가 시작되고 근대의 여명이 밝아온 뒤에도 대중이 책을 찾아 읽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토대나 자원, 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도 대중이, 과거보다 더 많은 대중이 책 읽기에 몰두하려면 상당한 의식적 기획과 집단적 시도가 개입되어야 했다.
말하자면 '읽기' 운동이 있어야 했다. 한국사만 놓고 봐도 그렇다. 19세기 말, 한반도가 언제 열강의 식민지가 될지 알 수 없던 무렵, 왕조는 더 이상 민중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고 그럴 의지 역시 없었던 때에 '읽기' 운동이 벌어졌다. <독립신문>이니 애국계몽운동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은 다 '읽기' 운동이었다. 처음으로 한문이 아닌 한글로 신문과 책자를 내기 시작했고, 근대 문어로 막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한글을 처음 학습한 대중이 이런 텍스트들의 독자가 되었다. 이런 일이 국내에서 10년 넘게 지속되고 난 뒤에 국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서는 3.1운동이 그토록 일찍, 거대하게 터져 나온 까닭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일제 치하에서도 치열한 '읽기' 운동이 있었다. 3.1운동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들은 다시 신문을 만들고 잡지를 냈다. 소설을 쓰고 번역에 나섰다. 한 세대 전에 지역마다 '학회'를 결성하고 개신교 교회나 천도교 교당을 활용했듯이, 이번에는 학교마다 독서회를 조직하고 이를 공장 노동자 모임이나 농촌 청년 모임으로 넓히려 했다. 이때 책 읽던 이들의 눈길이 주로 '좌파' 성향(사회주의든 아나키즘이든)의 민족해방운동에 쏠려 있었기에 역사책에서 이런 움직임은 대개 이 표제 아래 소개된다. 하지만 그 또 다른 이름은 '읽기' 운동이었다. 이러한 대중적 읽기의 성과만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새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 한계만큼 하나의,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는 데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가까운 과거인 1980년대에도 '읽기' 운동이 있었다. 군부독재가 절정을 구가할 무렵, 체제가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 낯선 텍스트들을 찾아 읽으려는 젊은 세대의 치열한 노력이 펼쳐졌다. 이들은 한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첫 세대 교사, 교수에게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다. 드디어 온전한 근대적 언어-문자 역량을 갖춘 이 세대는 당대 세계의 보편적 이념과 지식체계 가운데 분단-전쟁 이후 국내에 금지돼온 '반쪽'을 빠르게 (재)흡수하기 위해 '읽기'에 열중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읽을거리가 한 쪽(현실사회주의권 저작물)에 너무 쏠리기는 했지만, 이런 집단적인 '읽기' 체험이 이후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어정쩡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력이 뒷받침되었기에 한국 시민사회는 적어도 결정적 퇴행만은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듯 근대가 시작된 이후 줄곧, 이 땅에 사는 이들은 가장 절망적인 난국을 다름 아닌 대중적인 '읽기'를 통해 돌파해왔다. '읽기' 운동을 시작으로 역사의 반전을 성사시켰고, '읽기' 운동을 발판으로 미지의 다음 시대를 살아낼 힘을 미리 다졌다. 이런 대중적 운동은 대학과 같은 제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활발하게 펼쳐졌고, 심지어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제도가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던 1980년대에도 공식 고등교육 내용이나 통로와는 상관없이(대학의 공식 개설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의 모임을 통해) 자생적으로 전개됐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2024년의 세계를 살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아니 전례 없는 난국의 한 가운데에 있고, 다른 어느 때보다 이런 시기에 제 역할을 해야 할 대학이나 언론, 종교기관이나 출판계조차 그들 자신 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이런 때야말로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읽기' 운동이다. 우리 시대의 대중적인 '읽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려는 기획과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