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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건설노조 간부, ‘건폭’ 아닌 동료 밥줄 챙긴 “바보 같은 형”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⑬] 빈소 앞에서 만난 고인 동료들 “조합원 위해 헌신한 사람”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④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⑤ 외국인에 밀려난 내국인 건설노동자, 이면엔 건설사 ‘이윤 욕심’
⑥ [현장] “노조에 빌미 잡히지 말자” 불법에 이중 잣대 보인 원희룡의 ‘황당 연설’
⑦ 타워크레인 노동자에 ‘위험한 작업 거부하면 면허정지 시킨다’는 국토부
⑧ ‘건폭’ 핵심 한국노총 출신 건설산업노조, 1년 전 ‘윤석열 지지’ 선언했다
⑨ 건설노조 팀장들 “우리가 가짜 근로자? 업체서 할 일까지 대신 합니다”
⑩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분 주머니’ 없애는 진짜 해법
⑪ ‘건설노조 전임비 비리’ 요란하더니, 민주노총이 아니었다
⑫ 건설노조가 바꾼 현장, 여성 목수가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해 분신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 모 지대장의 빈소 앞.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전날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거 봐봐요, 이래 착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윤석열 정부의 민주노총 건설노조 탄압에 저항하며 분신한 양 모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빈소 앞. 양 지대장과 같은 철근공이자 4지대 부지대장인 홍세호 씨가 휴대전화 속 양 지대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을 요구한 한 집회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노조 조끼를 입고,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채 환하게 웃고 있던 양 지대장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본 홍 씨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양 지대장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조합원들 일자리, 밥줄 챙겨서 먹여 살리려고 엄청 헌신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홍 씨가 기억하는 양 지대장의 마지막 모습은 분신 당일(5월 1일, 노동절) 이른 아침이다. 당시 양 지대장은 오후에 열릴 예정이었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노동절 집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을 배웅했다. 조합원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기 전, 양 지대장은 영동 지역의 철근팀을 함께 담당해 왔던 홍 씨에게 "철근팀들을 잘 이끌어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줄만 알았던 홍 씨는 양 지대장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농담을 주고받은 뒤 함께 웃으며 헤어졌다. 양 지대장이 홍 씨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노 탄압 이후, 노골적인 민주노총 건설노조 채용 배제
본인도 일 못하는 와중에 조합원들 일자리 구해주려 동분서주


조문을 받기 시작한 3일, 양 지대장의 빈소에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날 밤부터 밤을 지새운 이들도 많았다. 양 지대장과 함께 강원에서 서울로, 다시 강원으로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조합원들도 여럿이었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조합원들의 조문은 5~6명씩 차례로 진행됐고 조문을 마친 조합원들도 차마 빈소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양 지대장은 마지막까지 정부 탄압에 내몰린 조합원들을 걱정했다. 빈소 앞에서 만난 여러 동료들은 고인에 대해 "유난히 조합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이 많았던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정부는 양 지대장과 같은 건설노조를 조폭에 비유하며 '건폭'으로 매도했지만, 실상은 자신보다 동료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성실한 건설노동자였다.

고인이 담당했던 강릉, 속초, 고성, 양양 지역에 건설현장이 생길 때마다 고인과 '짝꿍'으로 건설사와 교섭했던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은 고인을 "참 바보 같은 형"이라고 표현했다. 양 지대장은 사측과 교섭할 때도 모진 말 한 번 못 하고 "우리 형들, 우리 조합원들 좀 써달라"고, "일을 잘 한다"고, "지역 주민을 채용해야 하지 않겠냐"고 사정하는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큰 건설 현장이 많이 생기지 않는 지역인데,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시작된 후 현장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대놓고 채용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던 건설사들도 싸늘하게 태도가 바뀌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입니다'라는 인사말이 나오기 무섭게 '야, 가'라는 막말이 돌아왔다. 건설노조가 건설사 협의체와 맺은 단체협약에는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윤석열 정부라는 '뒷배'가 생긴 건설사들은 이 합의를 쉽게 저버렸다. 

힘들게 건설사와 마주 앉더라도 현장에 몇 명을 투입하느냐를 두고 협상이 시작되면, 이 모든 과정이 채용 강요를 하는 공갈범으로 몰리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유서에도 남겼듯 양 지대장은 이러한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교섭이 어려워지자, 현장에서는 수개월째 일을 못 한 채 쉬는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자신도 일을 못 하는 상황에서 양 지대장은 동료들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히 뛰어다녔다. "쉬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그의 동료 중에는 6개월째 일을 못한 건설노동자도, 생계가 어려워 청약 통장까지 해지한 건설노동자도 있었다. 지난달 양 지대장은 1공수(하루 일당)밖에 벌어가지 못했으면서도 "일단 교섭부터 해야죠, 우리 조합원들 일부터 시켜야죠"라고 말했다고 박 조직부장은 전했다. 박 조직부장은 '양 지대장이 사측과 교섭에 성공해 조합원 5명을 현장에 넣어줄 수 있게 된 날,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닭갈비를 사주더라'라는 일화를 웃으면서, 울면서 들려줬다. 정작 그날 역시 양 지대장 본인은 일을 하지 못했다.

양 지대장의 헌신을 곁에서 지켜본 동료들은 하나 같이 "이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냐"고 되물었다. 홍 씨는 "정부도 하지 않는 건설노동자의 일자리를 챙기고, 건설사가 하지 않는 관리자 역할을 도맡으면서 건설노동자의 안전도 챙겨왔는데, 이게 그렇게 죽을 짓이냐"고 울분을 토해냈다.

박 사무국장은 "우리가 이렇게 투쟁하지 않으면 건설사는 불법 인력을 쓰고, 불법 하도급을 하고, 건설노동자가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가는 것을 당연시할 것"이라며 "우리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모 지대장이 노동조합 앞으로 남긴 유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민주노총 건설노조' 자부심 강했던 고인
유서엔 "노동자 주인 되는 세상 만들어 달라" 호소


고인은 일반팀 철근공 팀장으로 일하다, 지난 2019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아닌 일반팀에서는 저가 수주 경쟁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를 착취하는 일이 일상적인데, 양 지대장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 회의를 느껴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조합원으로 노조 활동을 하다가 간부가 된 건 지난해였다.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때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홍 씨는 "노조 탄압이 시작되니까 양 지대장이 정말 자존심 많이 상해했다. 건설사들이 교섭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옆 지대에서도 몇 명 일이 없다고 전화를 하면, 고성이나 속초 현장에 다 전화를 해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고…그렇게 목숨을 걸었던 분이다. 참 한결같았다"고 말했다. 

김광영 강원건설지부 교육지원장은 "지대에 있는 수백 명의 식구를 자기가 다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고,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처럼 지역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양 지대장이 해결해 줘야 하니까 힘든 일인도 힘든 내색을 잘 안 하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양 지대장이 있는 3지대에는 약 180여명의 건설노동자가 속해 있는데, 이들의 삶을 책임져 왔던 건 정부도, 건설사도 아닌 건설노조 지역 간부였던 양 지대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언론에 간절히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언론 보도를 보면,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현장에 가서 조폭처럼 한 것처럼 도배를 하더라. 댓글을 안 보고 있다가 봤다는데 울분이 터졌다"며 "양 지대장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런 왜곡 보도는 사람을 두 번, 세 번 더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 지대장을 지대장으로 추천한 김기형 1지대장은 "간부가 아닐 때도 팀원 한 사람도 안 놀게 하려고, 진짜 최선을 다해서 일했던 팀장이었다.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투쟁했고,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지대장은 "양 지대장은 간부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며 "지대장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었지만, '피 같은 조합원들 돈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느냐'며 사비로 기름값 넣고 밥 사가면서 조합원들 일자리를 창출했던 친구"라고 덧붙였다. 

양 지대장은 '민주노총 건설노조'라는 사명감이 큰 간부였다. 영동 지역엔 유난히 어용 노조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들과 달리 조합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불법이 난무했던 건설현장을 바꿔나간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은 고인의 자부심을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도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양 지대장은 노조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동지분들은 힘들고 가열찬 투쟁을 하시는데 저는 편한 선택을 한 것 같다. 하지만 항상 동지들 옆에서 힘찬 팔뚝질과 강한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며 "꼭 승리해야 한다. 윤석열의 검찰 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야당 앞으로 남긴 유서에선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 독재 정치에 제물이 되어 자기 지지율 숫자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또 죄 없이 구속되어야 한다"며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돼야 하겠느냐. 제발 윤석열 정권 무너트려 달라"고 당부했다.

양 지대장의 유지를 받은 건설노조 대정부 총력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당장 4일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서 전국의 확대 간부들이 모이는 대규모 상경 투쟁을 연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전면 투쟁을 준비 중이다.

긴 대화를 나눈 뒤, 다시 빈소로 돌아가는 박 사무국장도 눈물을 훔치며 투쟁을 다짐하는 말로 끝인사를 나눴다.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어요. 투쟁해야죠. 끝까지 가봅시다."
“ 속초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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