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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요구로 도입된 물가안정목표제,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물가안정목표제가 임금 억압 수단

임수강 금융평론가  |  기사입력 2023.05.04. 06:11:29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4월 14일에 "중앙은행은 고물가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워싱턴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의 중요한 쟁점은 현재 주요 중앙은행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물가상승률 2%가 적정한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토론자로 참여한 올리비에 블랑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물가상승률 목표를 현재의 2%에서 3%로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또 다른 토론자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고피나트 IMF 부총재는 현재로서는 물가목표치를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의 발언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 경제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올해 1월에 열린 전미경제협회(AEA)의 연례총회에서도 미국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 2%를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협회는 경제학 학술 단체 가운데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연례총회 참석자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학 교수는 물가상승률을 2%까지 낮추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집한다면 고용을 포함한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더욱 커진다면서 물가 상승률 목표를 3%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로머 버클리대학 교수도 물가안정 목표를 올리는 데에 동조했다.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학 교수는 물가안정 목표 2%에 빠르게 도달하려는 과정은 가계와 기업에게 심한 횡포라면서 목표를 5% 정도로 유연하게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대가들 사이에서조차 2% 물가상승률 목표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그 2%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정치경제연구소(PERI)의 폴린과 부아자는 물가상승률 목표가 왜 2%여야 하는가를 이론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진지하게 조사한 연구는 지금까지 없다고 얘기한다. 중앙은행들은 2%가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연간 물가상승률 2% 정도가 경제주체들이 물가가 안정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그나마 근거라면 근거라 할 수 있다.

 

물가안정 목표 2%가 적정한지에 대한 논란과 아울러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물가가 과연 잡힐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현재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영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아예 법으로 못 박아서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법으로 못 박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법에 물가안정목표제를 못 박아 놓았다. 한국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물가안정목표제란 통화량과 같은 중간목표를 두지 않고 "물가상승률" 자체를 정책의 최종 목표 삼는 통화정책 운영방식이다. 주요 중앙은행들처럼 한국은행도 2019년부터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기준 2%를 목표로 통화신용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 범위를 위쪽으로 벗어나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중앙은행은 단기의 정책 금리를 올림으로써 시장 전체의 금리 상승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문제는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반드시 물가를 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연준 의장을 지낸 버냉키는 미국 연준의 긴축이 경기침체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만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금리를 올리면 확실히 경기침체가 생기겠지만 물가 상승률이 억제될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물가가 오르는 원인이 다양할 때 그것을 따지지도 않은 채 금리를 올리는 방법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물가가 오르는 데에는 그 이유가 상품의 공급 쪽에 있는 경우와 수요 쪽에 있는 경우가 있다. 금리의 인상은 일반적으로 개인 소비나 기업 투자와 같은 수요 쪽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의 공급 쪽에 문제가 생겨서 물가가 오를 때는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물가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재의 물가 상승은 주로, 에너지, 식량, 원자재를 포함한 국제적인 상품 공급의 부족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주요 나라의 물가 상승은 외부에서 '수입'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현 국면에서 금리 인상이 물가를 잡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물가 상승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이와 나란히 물가안정목표제를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하게 이론적인 관심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논쟁의 배경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독점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생기는 날카로운 이해의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 현 국면에서 물가안정 목표를 2%로 하는가, 아니면 3%로 하는가에 따라 노동자의 이익은 크게 달라진다. 물가를 잡는데 금리 인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도 마찬가지이다.

 

물가안정목표제 자체가 이미 특정한 계층과 부문의 이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중앙은행이 다른 여러 목표를 제쳐두고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삼는 제도이다. 물가안정목표제도를 채택한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유일한, 또는 최우선의 정책과제로 인식한다. 중앙은행들 가운데는 고용이나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도 대체로 물가안정이 일차적인 목표이고 고용이나 경제 성장은 후순위에 머문다.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이러한 물가안정목표제는 얼핏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계층이나 부문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관점을 받아들인 매우 편향적인 제도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바구니 물가가 장기간 고공행진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이마트를 찾은 소비자. ⓒ연합뉴스
 
임금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물가안정목표제

 

지난해 9월 미국 연준 의장인 파월은 보수 성향의 카토연구소가 개최한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질의응답을 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파월은 먼저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곧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릴 때까지 단호하게 정책금리를 올려 나갈 방침을 밝힌다. 그러면서도 그는 금리 인상의 밑에 깔린 진짜 목적이 따로 있음을 발언의 맥락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낸다. 

 

파월은 현재의 미국 노동시장에 대해 노동수요가 매우 강하고 높은 임금의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는 불균형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높은 임금의 일자리 창출을 파월이 왜 불균형이라고 인식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파월의 다른 발언들을 보면 그의 속 뜻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 그는 노동력 부족이 이어진다면 임금상승 압력이 생겨서 기업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곧, 파월은 고임금의 일자리 창출이 기업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불균형이고,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금리를 올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파월이 이해하는 불균형이란 구체적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 힘의 불균형이다. 경제 성장세가 이어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노동의 상대적인 힘이 증가하여 임금이 올라가고 거꾸로 기업들의 이윤 수준은 낮아진다. 기업 쪽에서 보면 실업률이 너무 낮아지면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져서 임금인상 요구가 커질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게 된다. 기업들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파월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연준 정책 개입을 통해 경제 성장세를 떨어트리고 노동시장을 균형수준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폴린과 부아자는 물가안정 정책의 주요 목표가 기업의 수익성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서 물가안정목표제에 바탕을 둔 금리 인상의 목적이 기업의 이윤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설명을 통해서 파월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곧, 파월은 연준의 금리 인상 목적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강조점은 경기 침체를 통한 실업률 상승, 그에 따른 노동조합의 협상력 약화와 임금 인하, 그리고 그 결과 생기는 기업 이윤의 상승에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폴린은 최근의 금리 인상을 노동자들에 대한 연준의 공격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파월은 임금상승률을 물가 목표와 같은 2%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파월은 임금 인상률을 물가 상승률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노동력 부족과 임금 급등이 물가 상승의 중요한 원인이라고도 얘기하는데, 이는 임금 인상이 상품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그 유명한 논리를 파월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자본이 내세우는 전형적인 허위 논리이다. 실제로는 임금이 오르면 일반적으로 이윤이 줄어드는 것이지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임금은 대체로 물가가 오른 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른다. 

 

덧붙이자면, 미국 연준은 물가 안정과 함께 완전고용 책무도 지고 있다. 연준이 물가 안정을 이루기 위해 실업률을 높이는 것은 연준의 목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연준은 물가안정 없이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다는 논리로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을 합리화한다. 연준은 완전고용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물가안정 없이는 장기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없으므로 당장은 물가안정을 위해 실업이라는 고통을 견디자고 얘기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물가안정목표제가 현재처럼 물가가 급등하는 시기에는 임금을 낮추고 실업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거꾸로 물가가 낮았던 시기에는 자산가격을 부양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주요 나라들에서 1990년대에 들어서 도입되기 시작하여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이 제도는 단기금리를 조절함으로써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인데, 거꾸로 물가가 어떤 사정에 의해 안정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는 금융정책 당국이 물가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금리정책과 신용확대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에는 장기간 물가안정 국면이 나타난다. 로버트 브레너는 세계시장 상품가격 안정 현상의 주요한 원인으로 중국의 세계시장 참여에 따라 세계시장 상품 공급량의 증가했다는 점과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져서 생산성 증가만큼의 실질임금을 올리지 못함으로써 가격 상승 압력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든다. 어쨌든 1990년대 이후 세계시장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앙은행들은 자산가격 부양 중심의 금융정책을 펼 수 있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자산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만약 물가를 계산할 때 자산가격을 포함시킨다면 중앙은행들이 자산가격 부양 중심의 금융정책을 계속 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물가를 계산할 때 자산가격을 제외시켰다. 그리하여 상품가격은 안정되어 있지만 자산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함으로써 상품가격과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상품가격과 자산가격이 따로 놀면서 자산가격 쪽에서 거품이 발생했다가 꺼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중앙은행이나 자산계층은 금융 거품이 꺼지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거품 붕괴에 따른 손실을 공적인 자금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안정제는 물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노동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물가가 안정되어 있는 국면에서는 자산가격을 부양하는 수단으로 기능한 셈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물가안정목표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일 인천 연수구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거버너 세미나(Governors' Seminar)'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정의 발을 묶는 물가안정목표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물가안정목표제는 1990년대 들어 주요 나라들에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요구로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IMF는 왜 우리나라에 물가안정목표제의 도입을 요구했을까? IMF가 우리나라를 걱정해서 그랬을까? IMF는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와 동떨어질 수 없는 기구이다. 그런 기구가 우리나라에 물가안정목표제의 도입을 요구했을 때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물가안정목표제가 국제 금융자본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가안정목표제는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트리고 실질임금을 낮은 수준에 묶어 두는데 유리한 제도이다. 이는 이 제도가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데 유리한 제도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 안정국면에서 자산가격을 팽창시키는데 유리한 제도이다. 국제금융자본 쪽에서 보면 자산가격의 상승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다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자산가 계층의 일부도 자산가격 팽창 과정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이익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물가안정목표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윌리암슨이라는 경제학자는 1980년대 말에 동유럽이나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혁을 위한 10가지 처방을 내놓으면서 이것을 '워싱턴 컨센서스'라 이름 붙였다. 윌리엄슨이 제시한 이 처방들은 컨센서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류의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들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는 재정 건전화와 정부 보조금 축소가 포함되어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이러한 처방들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 이념에 어울리는 제도인 셈이다.

 

신자유주의 시기 이전에는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였다. 정부들은 고용안정이나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했는데, 그때는 중앙은행이 그 국채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수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은행이 정부와 서로 협력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협력하여 높은 성장률과 고용 확대, 물가 안정, 대외경제의 균형과 같은 목표들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나 물가안정 기능은 지금보다는 훨씬 덜 강조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리고 특히 1990년대 이후 물가안정목표제가 도입되면서 중앙은행의 재정 지원 기능은 금기처럼 간주되었다. 중앙은행의 목표에서 경제성장이나 고용 확대는 지워지고 오로지 물가안정만이 남았다. 중앙은행의 목표가 좁은 범위로 제한됨에 따라 이에 비례하여 정부재정의 역할도 줄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사회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재정을 늘리려고 할 때 물가안정목표제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제격이었다. 물론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한 재정의 역할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었다. 폴린의 얘기하듯이, 신자유주의는 구제금융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IMF 토론회에서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가 걱정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성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부양이 필요한 정책을 공약(commit)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중앙은행이 재정 확대를 뒷받침하는 데에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통화정책은 구조적 개혁을 지원하도록 특정 부문에 배분할 수 있다"면서도 재정 우위를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도 현재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의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젤탑>을 쓴 아담 레보어는 국제결제은행(BIS)를 중심으로 위계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는 중앙은행들의 이념적 통일성이 매우 강하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이창용 총재의 발언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중앙은행의 목표를 확대해야 한다 

 

가장 널리 읽히는 <화폐금융론> 저자인 미쉬킨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에 물가 안정, 고용 촉진, 실물경기 안정, 경제성장, 금융 안정, 이자율 안정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은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 이외에도 고용 촉진이나 그 밖의 것들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이념은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 안정이라는 좁은 틀에 가둘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안정에 머물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중앙은행의 목표에 당연히 고용 확대를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 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주류의 학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중앙은행의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통화정책이 고용과 같은 실물 변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점, 고용을 늘리겠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과정이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중앙은행 목표 확대를 반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가 화폐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화폐 중립성 이론이나 화폐량이 직접 물가를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과 같은 보수적인 논리(왜 보수적인 논리인지는 나중에 다룰 것이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 쪽에서 보면 중앙은행 목표에 고용 확대를 포함시키는 것이 그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데 유리하다. 

 

스티글리츠는 중앙은행이 불평등 완화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중앙은행은 사회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기여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사회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부의 재정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해야 한다. 중앙은행 목표 확대와 함께 이를 이행할 정책 수단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중앙은행 물가안정목표제는 자산가와 자본가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능하도록 짜인 제도적인 장치이고 신자유주의의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중앙은행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도록 이끌려면 먼저 중앙은행의 목표를 더 넓혀야 한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서 고용 확대, 불평등 완화와 같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참고한 자료> 

 

김성택, "연준의 물가안정목표제 논란 및 평가", 국제금융센터, 2023.4.6. 

한국은행 워싱턴 주재원, "Powell 의장의 CATO Institute 컨퍼런스 주요 질의응답 내용", 한국은행, 2022.9.8.

아담 레보어 저, 임수강 역, <바젤탑>, 더늠, 2022.11. 

Bernanke Ben & Frederic Mishkin, "Inflation Targeting: A New Framework for Monetary Polic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1997. 

Joseph E. Stiglitz, The EURO, 박형준 역, <유로>. 2017. 

Robert Pollin, "The Federal Reserve Attacks American Workers," 2022.9.15. 

Robert Pollin, Hanae Bouazza, "Considerations on Inflation, Economic Growth and the 2 Percent Inflation Target," PERI Working Paper 2022, 12.

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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