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건설노조 간부 유가족 “억울함 풀어달라,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

속초에서 서울로 빈소 이동, 눈물의 조문 행렬 이어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마음이 아프다. 남 일 같지 않다. 잘못한 것도 없이 우리는 일만 했을 뿐인데 ‘사회악’인 것처럼 자꾸 일반 시민들에게 여론전을 하고, 그래서 정말 자존심이 많이 상하고...”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양회동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지대장의 빈소를 찾은 대구경북건설지부 김영민 조직부장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강원도 속초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지던 장례가 이날부터 ‘노동조합장’으로 서울에서 이어지고 있다. 당초 유가족은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길 원했으나, 고인이 가족뿐만 아니라 야당과 노조에 각각 별도의 유서를 남긴 것이 확인되면서 노조에 고인의 유지를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노동조합장인 만큼 유가족과 함께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상주를 맡았다.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검은 띠를 머리에 두른 장 위원장이 직접 고인의 영정을 들고 앞장서 빈소를 차렸다. 영장 속 고인은 건설현장에서 노조 활동을 하며 힘차게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억울함 풀어주세요” 유가족의 호소


이날 오후 2시부터 조문이 시작되자,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줄을 지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조합원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김 조직부장의 말처럼, 고인도 생전 ‘건폭’으로 매도돼 모욕을 받았다. 그가 받은 혐의는 ‘공동공갈’이었다. 이에 대해 고인은 너무나 억울해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도 났다.

고인은 야당 앞으로 남긴 별도의 유서에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억울하고 창피하다”고 적었다. 산화하는 순간에도 “억울하다”고 외쳤다고 한다. 정부의 무자비한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과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가 만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유가족이 건설노조의 손을 잡고 서울로 빈소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인마저 ‘건폭’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에서 유가족에겐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고인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한 것 뿐”이라고 호소했고, 유가족은 이를 굳게 믿었다.

이날 아침 속초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끝으로 가족장을 마무리하고 집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있던 유가족이 다시 서울로 올라와 대중 앞에 나선 것도 큰 결심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 등 야당 대표들이 조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상경한 것이었다. 이 역시 야당에 역할을 당부하면서 ‘꼭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주세요’라던 고인의 유지를 따른 결정이었다.

유가족은 빈소에 조문을 온 정의당과 진보당 대표단, 그리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잇따라 간담회를 가졌다. 민주당과는 시간이 엇갈려 만나는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유가족은 간담회 자리에서 ‘지금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유가족은 “각 당 대표에게 드리는 유서를 읽고 저희 가족이 결심을 했다”며 “고인의 뜻을 퇴색시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서를) 한 자, 한 자 써내려 갈 때 비통함, 한맺힘, 그리고 절규를 가족이 막아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사실 사고 당일 아침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휴대폰으로 글을 보냈다. 그땐 휴대폰이 꺼져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 믿어, 아빠 힘내’ 그런 글을 보면 부모로서 (마음이) 돌아설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 글을 보고도 그것(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이 어땠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유가족은 “(고인이) 네 번의 수사를 받고, 사고 당일 구속 기로에 서 있었다”며 “하지만 나는 죄가 없고,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굉장히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은 “아이들에게 고인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절대 그런 일을 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떳떳한 아버지였다”며 “제발 아이들 아빠의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유가족은 아침에 고인을 보내며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왔다면서 “나중에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나서기를 주저했다고 마음을 털어놓은 유가족은 “우리가 앞으로 갈 수는 없다. 저희가 힘이 없고 부족하니까. 하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 저희 가족은 제 자리에 서 있겠다”며 “민주노총 위원장과 조합원들, 모든 분들을 믿고 제가 (여기) 서 있겠다”고 힘줘 말했다. 유가족은 “저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장옥기 위원장은 그런 유가족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유가족을 꼭 끌어안으면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옥기 위원장은 앞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확대간부 상경투쟁 대회에서 “(양 지대장)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우리 아버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진보정당 “고인의 유지 잘 받들겠다”
민주당 “윤 대통령, 꼭 조문하라”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그 믿음 헛되지 않게, 마음 무겁게 받고 정말 열심히 하겠다”며 “무엇보다 양회동 지대장이 남긴 유지를 잘 받들고 억울함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고인이 했던 활동이 정당한 활동이라는 것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고인의 뜻을 우리가 잘 이어가겠다”며 “결국은 건설현장에서 더 이상 이런 억울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고인이 저희에게 준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도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드는 게 진보당의 사명”이라며 “꼭 억울함을 풀고 명예 회복하도록 노력하겠다. 용기내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먼저 조문을 마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국 국가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이 수사에 대해서 방침을 주고, 그 방침 때문에 과잉 수사로 생긴 일이니 대통령께서 꼭 조문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방한 중인 엠벳 유손 국제건설목공노련(BWI) 사무총장 등도 직접 조문을 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의 근조기와 노조의 화환 등이 고인이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빈소를 둘러쌌다. 이날 저녁에는 빈소 앞 마당에서 건설노조 주최로 촛불 추모 집회가 열렸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4일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 지대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민주노총은 이날 밤 중앙집행위 회의를 통해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장 다음주 수요일(10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퇴진 선포 단위노조 대표자 결의대회’가 열리고, 그 다음주 수요일(17일)에는 ‘노조말살-민생파탄 윤석열 정권 퇴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장례를 어떻게 매듭지을지에 대해서는 유가족과 계속 협의해나갈 방침이다.

양경수 위원장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년부터 진행된 건설노조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 토벌대식 탄압이 건설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극단의 상황까지 내몰았다”며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입장 변화는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일 양희동 동지가 분신을 했는데, 2일에도 한 명의 건설노동자가 똑같은 혐의로 구속됐고, 3일에는 경기 지역의 건설노조 사무실과 간부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며 “건설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또는 정권의 자기 지지 기반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건설노동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매도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사의 뜻을 이어서 민주노총이 반드시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투쟁에 나서야 되겠다는 결심을 더 강하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양 위원장은 “무엇보다 정부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의 창구는 노조의 경우 언제나 열려 있다”며 “하지만 정부나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대화를 요구하기는커녕 일방적인 탄압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맞서 싸우는 것밖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빈소에서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