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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5시간? '참사 대기 도시' 서울, 수도권이 위험하다

[정희준의 어퍼컷] 서울의 수도권 착취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기사입력 2023.06.07. 08:22:22 최종수정 2023.06.07. 08:26:27

 

2022년 말 벌어진 비극 '10·29참사'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20대 희생자, 특히 여성 희생자가 많았다고 한다. 여성 희생자가 65%고, 20대 희생자가 67%다. 그런데 희생자 159명 중 수도권 거주자가 111명으로 70%이고, 수도권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희생자 26명을 포함하면 137명으로 86%를 넘어선다.

 

결국 서울에서 일어난 10·29참사 최대 희생자는 수도권 사람들이다. 수도권은 과밀화로 이미 초집중상태인데 이들 수도권 거주자들이 다시 또 서울에 초·초집중한 것이다.

 

주중엔 일하러 서울로, 주말엔 즐기러 서울로 

 

수도권은 경제적이나 주거환경 측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지역이라는데 왜 사람들은 서울로 몰릴까? 첫째, 서울이 양질의 일자리를 공유하기를 거부하고 독식하기 때문이다. 넓은 땅이 필요한 생산공장만 오산, 평택에까지 지어졌을 뿐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기업과 재벌의 헤드쿼터는 서울에 몰려 있다. 첨단 IT기업도 강남과 (성남시이지만 서울에 접한) 판교에 몰려 있다. 

 

둘째, 힙하고 트랜드를 앞서가는 문화는 서울에만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신도시엔 호수공원, 치킨집, 카페는 많지만 20·30·40세대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문화공간이 없다. DDP, 코엑스, 미술관, 청담동도 없고, 힙하다는 성수동, 익선동도 없다. 품격 있는 공연·전시, 나이트라이프, 축제는 모조리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다. 결국 주중에 서울로 출퇴근 하더니 주말에도 친구 만나러 서울로 가야 한다. 10·29참사도 결국 토요일, 할로윈 축제 때문이었다.

 

서울의 수도권 착취 

 

30년 전인 1993년 서울시 인구는 1088만명, 경기도 인구는 700만이었다. 지금 서울시 인구는 942만으로 줄었지만, 경기도 인구는 1361만명이다. 서울 아파트 값 폭등으로 서울인구가 경기도로 계속 빠져나가는데 경기도는 지방으로부터의 이주민까지 받아들여 30년 전보다 무려 두 배의 인구를 갖게 됐다. 

 

30여년 전 분당, 일산에서 시작한 신도시 건설은 지금 서울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갔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더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GTX까지 신설해서 서울로 향하는 출퇴근길을 더욱 광역화했다. 이 GTX가 과연 파주, 의왕, 남양주를 위한 것일까? 4개 노선 모두 오직 서울을 위한 것이다. 

 

신도시정책은 사실상 교통정책이고 실제로는 출퇴근대책이다. 지난 5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옥철,' '공중부양'으로 유명한 출근길 지하철 9호선을 탄 후 전동차 증차를 서두르겠다고 급하게 발표한 것도 서울시 교통대책의 제1목표가 결국 수도권 노동인력을 서울에 공급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렇다. 수도권 신도시정책의 목표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양질의 젊은 20·30·40세대의 노동력을 서울에 공급하는 것이다. 

 

출퇴근에 다섯 시간? 

 

이 문제는 당연히 서울의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다. 서울은 가장 좋은 직업도 독점하고 또 그 아래로 내려가는 직업의 먹이사슬을 수도권 인력으로 채우려 한다. 그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와 합작해 국가정책을 주무른다. 한번 생각해보자.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에만 세 시간, 네 시간, 심지어는 다섯 시간을 허비하는가? 

 

그래서 수도권 20·30·40세대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현실에 갇혀 있는 것이다. 참고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민은 대중교통 이용 시 평균 이동시간 33분, 환승 1.2회라고 한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러는 사이 서울이 '위험도시'가 되었다는 점이다. 수도권은 과밀화로 이미 문제가 많다는데 그 수도권 인구가 또 서울로 집중되면서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위험해진 것이다. 서울은 사실상 '참사 대기 도시'다.

 

문제는 서울사람들과 서울을 오가는 수도권사람들은 때로 공포스러운 밀집에 익숙해져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태원 희생자와 부상자들은 그때 자기가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안 했을 것이다. 그냥 참으면서, 덤덤하게, 그 군중 속에 끼어 서 있었을 것이다. 왜? 서울에선 매일 이렇게 사니까! 서울은 이렇게 위험에 무감한 도시가 되었다. 

 

'참사 대기 도시' 서울 

 

따져보자. 의료인프라와 방역시스템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서울이지만 코로나 확진자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당시 사망자도 압도적이어서 수도권 화장장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 지방에선 서울을 가지 않았다.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곳이 서울이다. 그 다음은 당연히 수도권이고. 

 

2022년 여름 서울에서 물난리가 있다. 사망·실종자가 20명 가까이 된다. 남매가 뚜껑 없는 맨홀에 빨려들아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첨단이라는 강남이 상습 침수지역이고 물난리에 가장 취약하다. 

 

수도권은 교통지옥, 미세먼지 외에도 이렇듯 전염병, 물난리에 더해, 압사, 집값 폭등, 그리고 집값 폭등으로 인한 전세 사기 등 온갖 문제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북한 우주발사체로 인한 서울시 오발령 논란이 있었다. 자동차로 피란 갈 생각을 했다는 사람을 봤다. 서울은 그런 도시 아니다. 차 몰고 나가 첫 커브를 도는 순간 엄청난 교통정체에 갇힐 것이다. 그냥 실내나 근처 지하로 대피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참사를 피하는 방법은 분산 

 

10·29참사는 밀집된 군중을 분산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밀집의 결과가 압사다. 서울은 이미 참사 대기 도시다. 서울사람 뿐 아니라 경기도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인구는 분산해야 한다. 

 

그런데 50년 전 이를 예측한 사람이 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계획해서 1979년 마스터플랜까지 완성했다. 수도 이전 법안까지 만들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했다. 그게 어디? 지금의 세종특별시 장군면이다. 그런데 10·26으로 사망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이전하고 권역별로 혁신도시를 추진했다. 헌법재판소의 그 황당한 '관습헌법' 판결 때문에 절반의 성과가 되긴 했지만 공공기관들을 전국 곳곳에 분산 배치한 미래도시 프로젝트였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던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들이다.

 

박정희와 노무현이 일치한, 50년 된 정책 

 

국가균형발전은 사실 서울과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한 정책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들이 거의 50년 전부터 추진한 정책이다. 그런데 아직 완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그래서 더 절실한 정책이 되어버렸다. 

 

지방도 살아야겠지만, 서울도 살고, 무엇보다 안전해져야 한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도 아니고, 두 번 생각할 일도 아니다. 요즘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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