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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사령관, '박정훈 해임' 외압 받았나? 사태 초기엔 "정훈이 진실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8월 2일 통화서 "해병대수사단은 진실되게 했다, 잘못 없어"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09.25. 05:04:49

 

지난 8월 해병대가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을 보직해임 조치한 것과 관련해, 해병대의 자체적 판단이 아닌 외부 압박에 따른 조치였음을 시사하는 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24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박 전 단장의 부하인 해병대 중앙수사대장 사이 8월 2일자 통화내용을 살펴보면, 김 사령관은 당시 중수대장에게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라며 "정훈이가 답답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령관은 "내가 봤을 때는 진정으로 (해병대수사단은) 원칙과, 공정하고 원칙대로 이렇게 다 했으니까 기다려보자고"라며 "어떻게 됐든 간에 이제는,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없이 했으니까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사령관의 이 같은 발언은 고(故)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국방부의 수사이첩 보류 지시를 어기고 사단장 등 8인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박정훈 전 단장의 당시 행위를 긍정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통화가 이뤄진 8월 2일은 박 전 단장이 임성근 해병제1사단장 등 관계자 8인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날이다. 이날 해병대는 박 전 단장의 수사이첩이 '항명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박 전 단장을 수사단장 자리에서 보직해임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박 전 단장을 항명수괴 혐의로 형사입건했다.

 

그러나 통화내용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박 전 단장을 보직해임하면서도 그의 행위엔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8월 2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해병대는 (박 전 단장과) 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라며 "박 단장에게 내려진 보직해임 조치는 사실상 해병대 사령부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통화에서 김 사령관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나도 한 3시간 반, 4시간 가까이 조사받고 왔다"라며 "다음에 적어도 (박 전 단장과 관련해) 인사소청할 수 있는 시간도 있다"라고 당시 해병대를 상대로 이뤄진 국방부 차원의 조사를 부정적으로 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사령관의 말을 들은 중수대장은 "그때 (법무관리관과 박 전 단장의 통화 당시) 옆에서 또 다 들었다. 다 듣고 할 때도 이게 '너무 이렇게 외압이고, 위법한 지시를 하고 있다'라고 다들 이렇게 느꼈다"라며 김 사령관의 말에 호응했다.

해당 통화내용은 수사이첩과 관련해 해병대 '윗선'의 압박이 있었고, 박 전 단장의 수사이첩은 본인의 주장대로 부당한 수사외압에 맞선 행위였다는 점에 해병대 지휘부가 공감하고 있었다는 정황으로 보인다.

 

김 사령관은 이어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국방부가)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박 전 단장에 대한 항명죄 적용은 본인의 뜻이 아니며, 해병대 사령부가 아닌 다른 주체가 '박 전 단장을 지시위반으로 몰 것'이라고 예견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면서 김 사령관은 "벌어진 건 벌어진 것"이라며 "내일 애들 힘내자. 너무 저거 하지 않게"라고 중수대장을 위로했다.

 

8월 2일 통화에서 이 같은 말을 남긴 김 사령관은, 그러나 이후 박 전 단장의 공개적 의혹제기로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본격화되자 '박 전 단장이 해병대사령부의 지시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태도를 바꿨다.

 

김 사령관은 지난 달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는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군의 엄정한 지휘와 명령체계를 위반하는 군 기강 문란 사건까지 있었다"며 박 전 단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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